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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정 Dec 21. 2021

동지의 뒷모습

한때 난임으로 고생했던 동지들이 몇 있습니다. 고향 친구도 있고, 전 직장의 동기도 있습니다. 맥주캔처럼 찌그러진 마음을 서로 위로하곤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하나둘씩 아이를 갖고 부모가 됩니다. 소식이 들릴 때마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축복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차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




가장 최근까지 고생한 녀석은 전 직장 동기 A입니다. A는 좀 수다스럽지만 선한 마음씨를 가진, 내가 많이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어쩌다 보니 아내와도 몇 다리 건너 아는 사이입니다.


아내의 친구 B가 집에 놀러와 우리 결혼 사진을 보다가, "어? 여기 A가 왜 있어? 아는 사이야?" 하고 깜짝 놀랍니다. 알고 보니 B의 남편과 A가 오랜 친구 사이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우리 부부와 A네 부부, B네 부부가 같이 식사도 하고 놀러 가기도 했습니다.




A네 부부도 오랜 기간 마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해 드디어 임신에 성공했고, 올해 초쯤 부모가 되었습니다.


A는 한때의 난임 동지였던 내 마음을 잘 아는지라 임신 소식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고생 끝의 임신이라 불길한 일이 생길까 여기저기 말하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것까지 숨기지는 못해, 출산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A는 조심스러웠고 미안할 일이 아닌데 미안해했습니다. 서로 잘 아는지라 달리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동안 부모가 되어 떠나간 난임 동지들의 뒷모습을 수도 없이 보아 왔습니다. 하지만 A의 뒷모습은 사뭇 달리 보입니다. A를 정말 좋아하고 진심으로 축하하면서도, 우리가 마지막이 된 것이 A의 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A의 뒷모습은 우리가 마지막이라는 확인 도장과도 같습니다.


이런 느낌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A의 출산 소식을 전하자 아내는 잘됐다는 말 한 마디를 끝내기 무섭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아내도 A의 아내와 연락하는 사이고 둘이 생일도 같아서 친하게 지냈고, 남자들처럼 아내들도 아픔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내 역시 아는 사람 중에선 A 부부가 마지막 동지였습니다.




연말입니다. 해가 바뀌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A네 귀한 아이가 돌을 맞습니다. 또 '진심으로 축하하지만 마음은 쓸쓸할' 날이 다가옵니다.


동지들의 뒷모습은 이제 볼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해가 다르게 변해가는 많은 이들의 앞모습을 계속 보아야 합니다. 단 한 명도 미워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데, 그들의 행복도 불행도 우리에겐 아쉬움이 됩니다.


아쉬움이 깃털처럼 가벼워지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요. 아쉬움의 무게가 좀 줄어들었나 싶으면 크기가 커져 있습니다. 아직은 다루기가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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