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망치는 것 같아요.
내가 미래 내 자신에게 베풀 수 있는 친절, 나 자신만이 베풀 수 있는 친절 그런 거를 잘 베풀면서 살았으면 좋겠다…사회에서 서로에게 친절하라는 말은 어렸을 때 많이 들어도 이게 본인에게 친절하는 법은 잘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같아요. 근데 생각해 보면 본인에게 가장 큰 친절을 베풀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잖아요…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망치는 것 같아요. 좀 순수한 마음으로 시행착오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 시행착오가 사실은 정말 중요한 한 단계였는지 내가 여기를 가는데 실제로 불필요한 과정이었는지를 그 당시에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섣부른 일이거든요. 지금 겪고 계시는 시행착오가 사실은 시행착오가 아니라 나중에 굉장히 멋진 곳에 가기 위한 중요한 단계일 수도 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허준이, <유 퀴즈 온 더 블럭, 249화> -
누구나 인생에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래도 버텨야 될 때 인간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가 헛고생, 시행착오였다는 과거에 대한 후회가 우울을 낳고 앞으로 잘 못 되면 어쩌지라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불안을 낳는다. 이럴 때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의 시행착오라는 판단은 아직 섣부르다는 말은 조금 위안이 된다.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모든 것을 망친다고 단언해야 나의 오래된 관성과 잘못된 습관을 깨닫게 된다. 허교수가 서울대 졸업식 축사로 한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않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게 되길 바랍니다.”라는 명문도 오래 기억에 남았었다. 인생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 인생을 오히려 더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음을, 순간순간을 온전히 사는 것 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임을 깨달은 현자의 느낌이 물씬 풍겼달까.
나 자신에게 친절하라는 말 역시 흔하게 들을 수 있지만 더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처럼 어린 나이에 위대한 성과를 달성한 사람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겸허한 고백 탓일 것이다. 힘들지만 잘 버티고 있다고 나를 다독여주고 이해해주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은 여전히 비교의 늪에 빠져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 이에 허교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이야기한다. 근거 있는 자신감은 쉽게 무너지니 보다 본질적인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라고. 희화화를 위해 주로 쓰이던 ‘근자감’이라는 단어가 나를 지키는 방패로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어느 순간부터 자기 계발서와 성공한 이들의 어록이 희망고문을 하는 것 같아 예전처럼 와닿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사회구조적 문제를 제쳐두고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개인에게서 찾게 되면 이는 힘든 이를 더 큰 수렁에 빠뜨릴 수 있다. 다만 그런 쉽게 바뀌지 않는 현실에 나마저 스스로를 괴롭히면 정말 더욱 괴롭기에 무조건적인 ‘힘을 내라’는 식의 응원이 아닌 좀 더 자기 마음을 돌보고 어루만질 수 있는 명언들은 여전히 찾게 되는 것 같다. 그래, 나한테 가장 친절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이니까 조금 더 친절하게 해 주자. 마음속 어떤 저항감이 불쑥불쑥 올라와도 꿋꿋이 나를 돌봐주자. 도망치고 싶은 나에게 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