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게 미안하다는 감정, 죄책감이구나. 비누 아가씨가 책을 훔치고 죄책감을 품고 살아온 것처럼 나도 이 감정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그래도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애초에 인간의 말은 못 하지만 말할 수 있더라도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말해버리면 비누 아가씨를 영원히 잃어버리니까.
- 오야마 준코, <마음을 맡기는 보관가게> -
최근 죄책감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소심한 아이였던 나는 사실 작은 상황에도 어렸을 때부터 죄책감을 꽤 자주 느꼈던 것 같다. 최애 인형을 집에 외롭게 놔둔다든지 누군가에게 나의 의도와 다르게 말이 전달된다든지 하는 사소한 것들이 은근히 마음에 남는 극F의 삶을 살아왔다.
반면 <마음을 맡기는 보관가게>에는 위와 같이 절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사장님’이라는 고양이가 등장한다. 자기를 구하다 사고를 당한 비누아가씨에게 죄책감을 가지지 않으려는 이유가 영원히 그녀를 잃지 않기 위함이라니 자기 합리화 같으면서도 묘하게 설득이 된다. 내가 어떤 상황에도 우아하고 당당한 고양이의 삶을 동경하는 이유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불필요한 죄책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다. 남에게 직접 해를 가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도 뭉근하게 올라오는 죄책감은 때로는 삶을 갉아먹는다. 어디까지 내 책임이고 언제까지 내가 괴로워야 하는지 모른 채로 감정에 휩쓸려 자책하기도 한다. 오롯이 내 삶의 방향을 선택해서 책임을 지는데도 가끔은 남에게 미안해지는 것은 왜일까.
불안을 부추기는 관계에서 멀어지고 싶은데 제일 어려울 때는 바로 나 스스로가 그 장본인일 때다. 그래서 소위 멘탈 갑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웬만한 상황에서 자기 탓을 하지 않나 보다. 소심이에게 쓸모 있는 죄책감이란 거의 없음을 깨달았으면 이제 그만 나 자신을 괴롭혀도 되지 않을까. 나의 선택으로 인해 파생되는 모든 나비효과까지 내가 책임질 수는 없다면, 뒤늦은 마음의 부채감으로 달라지는 게 없다면, 미안함을 품고 살지 말자. 지나간 것에 매달려 있기보다 내가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보자고 오늘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