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lancing act

반려동물을 위해 무엇까지 할 수 있으신가요

by 푸르름


회사사람들과 이야기하다가 지인의 고양이 이야기가 나왔다. 그 회사동료의 지인은 좀 통통한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탈이 나 병원에 갔더니 수술을 해야 해서 급히 했는데 병원비가 500만 원이 나왔다는 내용. 그걸 듣고 있던 회사분이 깜짝 놀라며 한국엔 유기묘 보호소 없냐고, 차라리 그런데 가서 무료로 분양받는 게 낫겠다고 하시는 거다. 농담이시겠거니. 하하하 앞에서는 웃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위해 우리는 어디까지 감당해야 하는 걸까?


아직 체계도 없고 동물권조차 때로는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사람과 비등한 의료비를 쓰는 것은 이해받거나 용인되기 힘든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만큼 보호받기 힘든 사회적 약자를 보호자 개개인이 능력이 되는 만큼 최대한 보호하는 것이 유난이라거나 잘못되었다고 하기도 어렵다.


‘집사는 집사 하느라 집못사‘라는 펫페어 카피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편으로는 반려동물을 끔찍이 아끼는 나머지 최고급 사료, 유치원, 장난감, 여가활동 등 돈과 시간을 아끼지 않고 정말 자식과 가족처럼 베푸는(반려동물은 주로 수명이 짧은 편이니 투자라는 말은 적절치 않겠다) 경우도 많다.


더 좋은 사료 더 좋은 운동기구 더 좋은 장난감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야 보호자라면 누구나 들 수 있지만 다 본인의 경제상황과 우선순위에 맞게 어느 정도는 균형을 맞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어디까지가 적정선인가 어느 정도까지 사회적으로 장려할 수 있을까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레체가 처음 왔을 때는 외출만 하면 무언가 장난감을 사주기 일쑤였다. 쇼핑을 하다가도 예전엔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집을 떠나도 집에 있는 레체 생각에 빈손으로 들어가기가 미안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한 손 가득 귀가하면 문에서부터 서서 온몸으로 나를 반겨주는 레체(aka 리액션 장인) 때문에 내 소비가치는 몇 배의 만족도로 돌아왔다. 하지만 이는 결국 주체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몇 년 후 대부분이 버려지거나 유기견 보호소에 보내졌다. 참다못한 동거인이 이제 장난감 구매는 금지라고 못 박고 나서야 나의 중독은 멈출 수 있었고 사실 아직까지도 그 금단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c)Leche@holaleche


반려견을 위해 한 달에 얼마를 쓸 수 있나? 어쩌면 우리가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반려견과 나의 조화로운 삶을 위해 어떤 원칙들을 세워야 할까? 인지도 모른다. 강아지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 오류가 거의 없는 동물언어번역기가 발명될 때까지 정확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알아내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우리의 반려생활이 좀 더 균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c)Leche@holale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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