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더불어 살아가기
강아지와 함께 살면서 양면성의 모순에 줄곧 부딪히게 된다. 예를 들어 현대 사회의 모든 견주는 공격성이 없는 강아지를 원할 것이다. 레체는 천성이 쫄보라 외부인이 우리 집에 침입한다고 느끼기 전까지는 짖지도 않는 아주 조용한 강아지이다. 반면 이런 면 때문에 애견운동장에서 활발히 뛰노는 레트리버나 보더콜리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레체는 보호자바라기라 낯선 개들 보다는 우리와 같이 있는 것을 선호한다.
한편 레체 친구 A를 보면 매우 차분하고 사람에게 절대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이는 심지어 주인에게도 마찬가지여서 A는 보호자님에게도 애교가 많이 없다고 한다. 레체도 차분한 편이지만 스킨십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강아지가 나에게까지 너무 데면데면하면 조금 서운할 것 같다. 또 평소에 재택을 할 때 얌전히 자고 생떼 부리는 법 하나 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가 정말 너무 지루하면 가만히 손으로 톡톡 치는 레체가 너무 고맙지만 가끔 밥도 잘 안 먹고 무기력하게 있는 모습을 보면 밥그릇을 내려놓기만 해도 우걱우걱 잘 비우는 활기찬 강아지들이 부럽기도 하다.
불과 몇십 년 전을 생각해 보자. 시골에서 키우는 ‘똘똘이’들은 주로 바깥 개집 옆에 묶인 채로 키워졌고 집을 지키라는 특명이 주어졌다. ‘개조심’이라고 문에 써붙여져 있는 일이 비일비재했으며 이는 견주 입장에서는 조금 자랑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즉 과거에는 외부인에게 공격적이고 짖는 강아지가 인기가 많았다면 현재는 손님이 와도 짖지 않는 강아지가 인기다.
이런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가치의 충돌 때문에 때로는 강아지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피로감이 만연한 것은 아닐까. 레체에게 기대는 삼가고 이중잣대는 줄여야겠다. 반려문화 성장을 위해 더욱더 다양한 고찰과 활발한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