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보다 중요한 대답
“비는 왜 내리는 거야?”
차를 타고 가는 길,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뒷좌석에 앉은 빛이가 묻는다. 이맘때쯤 흔히 찾아온다는 ‘왜병’에 걸린 아이는 늘 궁금한 게 많다.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난 대학원에서 수자원공학을 전공한 전문가답게 비가 만들어지는 원리, 즉, 물의 순환과정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멋지게 설명할 준비를 마쳤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입을 떼려는 찰나, 옆에 있던 아내가 대답을 가로챈다.
“저기 밖에 나무들이 많지? 나무들은 물을 먹고 자라는데, 우리가 저 많은 나무들한테 하나씩 다 물을 줄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하늘에서 물을 뿌려주는 거야.”
빛이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머릿속이 이미 정답으로 가득 찬 나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다. 엄마의 대답이 1초만 늦었더라면, 5살 아이는 5분 동안 지루한 ‘물의 순환과정’을 들을 뻔했다.
그리고, 다시는 비가 왜 내리는지 궁금해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항상 '정답'을 이야기해주고 싶어 하지만, 아이들은 '이야기'가 듣고 싶다.
사실 정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꼭 정답을 말했다고 해서 상대가 수긍하는 것도 아니고, 설득을 잘한다고 상대의 마음을 얻는 것도 아니다.
아이의 질문에도, 아이가 실수할 때도, 혹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논리적으로 옳은 완벽한 설명은 아이들의 마음을 떠나게 할 뿐이다.
예전에 유명 TV프로그램에서 유재석 씨가 지나가던 한 초등학생에게 잔소리와 충고의 차이를 물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아이의 대답이 기가 막혀 혼자 박수를 쳤다.
"잔소리는 왠지 모르게 기분 나쁜데, 충고는 더 기분 나빠요."
차가 신호에 걸려 대기 중이다. 창밖으로 전깃줄에 나란히 앉아 있는 새들이 보인다. 역시나 빛이는 그냥 넘기지 않는다.
"아빠, 새들이 왜 다 저기에 앉아 있어?"
"글쎄, 새들이 날다가 힘들어서 좀 쉬려고 그러나?"
나름대로 조금 전의 깨달음을 얻고 공감의 대화를 시도해 본다. 스스로의 대답에 만족하기가 무섭게 빛이가 받아친다.
"저건 새 그네야."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자기가 매일 그네를 타니까 새들마저 그네를 타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근데, 이미 마음속에 답이 있으면서 아빠한텐 왜 물어보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