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루는 새 도화지에
"아빠, 나 왜 자고 일어나니까 옷이 바뀌었지?"
"너 자다가 오줌 싸서 옷 갈아입은 거 기억 안 나?"
밤 사이 오줌 때문에 엄청난 전쟁을 치렀음에도 새 하루가 시작되면 빛이의 기억은 초기화된다.
"너 어제 오줌 쌌는데 아빠랑 안 씻겠다고 그렇게 울면서 난리 쳐 놓고, 진짜 기억 안 나?"
"아, 이제 쪼끔 기억나. 근데 오늘 어디 가기로 했지?"
진짜로 기억이 나는 건지, 몰아세우는 아빠에 못 이긴 척 대답해 주는 건지. 어쨌든 나만 뭔가 억울하다.
아이들은 눈을 뜨면, 지난 기억보다는 오늘 펼쳐질 하루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것 같다. 지나간 어제에 얽매이지 않고, 새 하루를 새 도화지에 그리는 법을 배운다.
며칠이 지났다. 오늘 새벽도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빛이야, 정신 차리고! 거의 다 왔어! 쫌만 더 참아!"
이런. 실패다. 빛이를 화장실로 열심히 끌고 갔지만, 변기에 앉기 직전 빛이의 바지가 젖어드는 모습을 확인했다.
며칠 전, 이와 똑같은 상황에서 울고불고 난리 쳤던 빛이의 모습을 떠올리니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으나, 밀려오는 아쉬움과 허탈함을 뒤로하고 마음을 다잡는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진 않았다. 끓어오르는 짜증과 화를 누르고, 잠들어 있던 텐션을 끌어올린다. 꿈나라에 있던 에너지까지 끌어모아 빛이를 다독여 본다.
"빛이야, 괜찮아. 괜찮아. 진짜 다행이야~ 이불에 쌌으면 이불 다 빨아야 하는데, 자다가 오줌 마려우니까 빛이 혼자 스스로 일어났구나? 이야~ 고마워. 아빠 일이 확 줄었네! 얼른 씻고 들어가서 빨리 또 잘까?"
본인의 실수나 잘못이 아님을 느끼고 편안해진 걸까, 아니면 아빠가 울 틈을 안 주고 끊임없이 말을 해서일까. 아이는 아무 소리 없이 순순히 씻고 옷을 갈아입는다.
억지로 끌어올린 마음이었지만, 빛이에게 '괜찮아.', '다행이야.', '고마워.'라고 말하는 동안 마치 내가 나 자신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새 마음에 평화가 찾아왔다.
부모의 감정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더니. 아이를 보며 그 말을 실감한다. 화가 화로 불붙고, 평안이 평안으로 물든다. 아이는 내 상태를 볼 수 있는 정확한 지표다.
아이가 평안히 잠든다.
'오늘의 빛이를 보니, 나 역시 평안하구나. '
새 아침이 밝았다.
"아빠, 나 어제 오줌 쌌지?"
"어떻게 알았어? 오늘은 기억나?"
저번에 그렇게 울면서 소리 지를 땐 기억 못 하더니, 조용히 넘어간 어제를 기억하는 게 왠지 모르게 반갑다. 하지만 그 반가움도 2초.
"아니이. 어제 입고 잔 옷이 저기 걸려 있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