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난 어떤 표정으로 기억될까
집 앞 놀이터 한가운데는 작은 모래밭이 있다.
아주 작지만 빛이와 하늘이가 놀이터에서 가장 좋아하는 자리다. 그 좁은 공간에서도 모래만 있으면 아이들은 몇 시간이고 신나게 놀 수 있다. 모래가 주는 신비한 마법이다.
아이들이 잘 노는 것도 좋고, 나 역시 육체적으로 비교적 편하게 놀아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그럼에도 모래밭에 쉽게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일단 그곳에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들여보내는 건 쉽지만 안 나오려는 아이들을 끌어내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
어렵게 끌어낸 후에도 신발, 양말부터 온몸에 들어간 모래를 제거하는 노력이 뒤따른다. 게다가 집에 들어갈 땐 아이들을 조심조심 들고 화장실로 직행해야 한다.
몸 여기저기 달라붙어 반짝거리는 이물질들과, 두피 사이에서 써걱대는 모래까지 평소보다 훨씬 더 깨끗이 씻겨야 함은 물론, 아이들이 입었던 옷들을 세탁기에 넣기 전에 잘 털어야 하는 수고는 덤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빛이는 괜찮은데 2살 하늘이가 한창 뭐든 입으로 들어가는 시기다. 모래맛을 보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아이를 막느라 신경이 곤두선다.
그래서 놀이터에 있는 다른 모든 놀이기구는 다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지만, 모래밭만큼은 아빠의 허락이 떨어져야 들어가는 신성한 곳이다. 잠깐 놀다 나올 거면 억울해서 아예 들어가지도 않는다.
"아빠, 나 그네 한 번만 밀어줘."
"우주까지 올라갈 거니까 잘 잡아!"
빛이의 그네를 밀어주는 잠깐 사이, 하늘이가 사라졌다. 역시나 모래밭 한가운데 쏙 들어가 있다. 이왕 들어갔으니 충분히 놀다 가야겠다.
"아빠, 나 봐봐! 그네 잘 타지?"
"어. 혼자서도 잘하네!"
빛이가 또 부른다. 멀리서도 이렇게 한 번씩 반응해 줘야 한다.
"아아아악!!! 하느라아아아!!!"
망했다. 잠시 빛이에게 반응하는 사이, 하늘이 손에 있던 작은 삽이 모래와 함께 입으로 들어갔다.
"빛이야! 빨리 따라 들어와!"
하늘이를 들쳐업고, 빛이와 함께 집으로 달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건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퉤해! 빨리 뱉어! 아빠 손 물지 말고오!"
대화도 안 통하는 2살 아이와 화장실에서 씨름 중이다. 손가락으로 하늘이 입 속을 후비며 열심히 모래를 빼내고 있다. 정신없이 모래 빼내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빛이가 다가와 조용히 한마디 던진다.
"아빠, 얼굴에 화가 잔뜩 나 있다?"
순간 너무 깜짝 놀랐다. 거울을 안 봤는데도 신기할 만큼 내 얼굴이 정확히 보인다. 부끄럽고 충격이다. 순간 정신을 차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부드럽게 되묻는다.
"아빠가 왜 화가 잔뜩 났을까?"
"하늘이랑 빛이랑 말을 안 들어서."
막상 빛이가 저렇게 말하니 뭔가 미안하다.
누군가 한 사람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표정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그 표정은 굳어져 인상이 된다. 그래서 링컨 대통령도 '나이가 마흔이 되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나 보다.
아이들에게 난 어떤 표정으로 기억될까. 부디 환하게 웃는 얼굴을 유산으로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