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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병

방법이 없어

by 윤슬기

신나는 주말을 보낸 후의 월요일 아침, 아이들도 나도 몸이 무겁다. 저 멀리 들리는 알람 소리가 야속하다.


월요일엔 빛이가 유치원에서 한 주간 쓸 수건 5장을 준비해야 한다. 다른 날보다 일이 겨우 하나 더 추가되는 건데 그게 왜 그리 귀찮은지 모르겠다.


"하아. 일어나기 싫타아. 수건도 챙겨야 되네.."


그렇게 혼자 중얼대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는데 자는 줄 알았던 빛이가 옆에서 눈을 반쯤 뜨고 묻는다.


"아빠는 왜 맨날 혼자 일찍 일어나?"


일어나기 싫은 마음을 '툭' 건드린 빛이에게 난 괜히 심술 맞은 장난을 쏟아낸다.


"생각해 봐. 아빠는 빛이가 유치원에서 쓸 수건도 챙겨야 되지? 물통에 물도 담아서 챙겨야 되지? 양치컵이랑 칫솔, 치약도 챙겨야 되지? 그리고 너네 먹을 아침밥도 준비해야 되잖아. 그럼 일찍 일어나야 되겠어, 안 되겠어?"


약간 미안한 표정으로 '내가 도와줄게.' 하며 따라나서는 빛이의 모습을 잠시 상상했으나, 이 아이는 미동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그럼 엄마한테 해달라 해."


그럼 그렇지. 내가 별걸 기대했다.


"엄마도 피곤해. 일어나시면 하루종일 할 일이 많아."


내심 무슨 말이 나올까 기대된다. '이젠 따라나서서 도와주려나?' 하는 생각은 조금 전에 이미 접었다. 잠깐 얼굴을 찌푸리며 고민하던 빛이는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 준다.


"그럼 방법이 없어. 일어나."


열받긴 한데 참 이상하게도, '방법이 없다'라는 말에 뭔가 힘이 난다. 지금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이외의 다른 모든 생각들이 단순하게 정리되는 느낌이다. 다른 요령을 부리지 않게 지정해 주니 상황을 좀 더 쉽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고 보면, 우린 '해야 할 일' 이외의 잡스런 생각에 은근 많은 에너지를 쏟고 살아가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를 진짜 지치게 하는 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그 일을 둘러싼 불필요한 생각들인지도 모른다.




중학교 2학년 때의 급훈이 떠오른다. 초중고 12년간 가장 길었으면서도 유일하게 기억하는 급훈이다.


누가 해도 할 일이면 내가 하고,

언제 해도 할 일이면 지금 하며,

지금 내가 할 일이면 더 잘하자.




마음을 단순하게 정리하는 연습이야말로 오늘을 조금 더 가볍게 살아가는 첫걸음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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