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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까지 참아야 할까?

인내력 테스트

by 윤슬기

5살 하늘이가 언니에게 묻는다.


"하늘이가 한 살이면 언니는 몇 살이야?"

"네 살."


다시 묻는 하늘이.


"하늘이가 두 살이면 언니는 몇 살이야?"

"다섯 살."


또 묻는다.


"하늘이가 세 살이면 언니는 몇 살이야?"


8살 언니가 눈을 치켜뜬다. 양쪽 눈썹이 올라간 첫째 빛이의 표정을 보니 살짝 불안하다. 입을 앙다문 언니는 한숨을 한 번 크게 쉬며 스스로 위기를 넘긴다.


"여섯.. 살."


하지만 눈치 없는 5살 동생은 이 상황을 전혀 감지할 리 없다.


"하늘이가 네 살이면 언니는 몇 살이야?"


터지겠군. 지켜보던 난 '으이그. 망했다.' 라는 생각과 함께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3.. 2.. 1..'


"야!"


역시. 경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아빠의 예측은 AI보다 정확하다. 앞서 세 번이나 잘 대답해 준 빛이의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하늘이가 다섯 살이니까 두 번만 더 대답해 줬으면 끝났을지도 모르는데 그걸 못 참냐?' 하며 속으로 비웃는다.


아이들이 흔히 '왜병'이라 부르는 질병에 걸리는 때가 있다. 이 시기엔 어떤 말에든 "왜?"라 대답하기 시작한다. 질문의 늪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병에 걸린 아이들은 괜찮은데 질문에 걸려든 부모가 아픈 괴이한 병이다.


빛이도 그 병을 진작 겪었고, 나도 그 병을 고스란히 받아냈기에, 하늘이가 빛이에게 질문할 때마다 실 조금 통쾌하기도 하다. 그런 마음으로 빛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넘기나 지켜보다가, 이어지는 빛이의 대답에 혀를 내두른다.


"니가 한번 생각을 해 봐! 생각을 하면! 기억력이 좋아져."


아. 나도 저렇게 할걸.




"아, 아빠! 쉬마려! 아아, 빨리! 쉬마려어!"


하굣길에 자전거 뒤에 탄 빛이가 화장실이 급하다며 짜증을 낸다. 가다가 싸버릴까 봐 뒷목이 뻣뻣해진다. 급한 마음에 짜증으로 맞받아쳤다.


"빛이야, 화장실 가고 싶으면 미리 다녀오라고 아빠가 몇 번을 말했어!"


뒤에 앉아 있던 빛이가 조용해진다. 그리고 가만히 묻는다.


"아빠가 몇 번을 말했는데?"


그러게. 몇 번을 말했더라. 정작 세어보니까 또 그렇게 많지도 않네.


문득 성경에 나오는 제자 베드로의 질문이 떠오른다.

"주님, 내 형제가 나에게 자꾸 죄를 지으면, 내가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여야 합니까?"


이 질문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신다.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을 일곱 번이라도 하여야 한다."


난 죄를 용서해 주는 것도 아니고, 고작 이야기 몇 번 반복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저만큼 용서하다간 용서 횟수를 채우기 전에 병으로 생을 마감할 듯하다. 저 정도면 용서가 삶이 되어야 한다는 뜻 아닐까. 그럼 그건 또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 끝에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


'늘 상대를 귀하게 여기면 어떨까?'


그래. 누군가를 진심으로 귀히 여기고, 나보다 낫게 여기면, 내가 상대를 용서할 만한 권한조차 가지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겠지. 그러면서 현실의 소리를 듣는다.


"아빠, 급해!"


오늘도 난 죽어라 페달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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