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밖에 없나?
"오, 대박이다!"
빛이가 하는 이야기에 반사적으로 힘차게 영혼 없는 맞장구를 쳤다.
"아빠아아, 그거 안 좋은 말이야!"
기껏 격하게 리액션하고 되돌아온 건 초등학생의 잔소리뿐.
'왜 안 좋은 말이지?'
이상하다. 분명 좋을 때 쓰는 말인데. '안 좋은 말'이란 생각을 못 해본 것 같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안 좋은 말 맞다. 다른 말들을 다 잡아먹으니까.
좋으면 "대박!"
어이없거나 놀라면 전부 "헐."
놀랄 만큼 좋으면 "헐. 대박!"
우리의 다양한 감탄사가 위협받는다. 언젠가부터 이 두 단어가 우리의 아름답고 섬세한 표현들을 다 삼켜버렸다.
비슷한 표현이라도 각 단어마다 주는 고유의 감정이 있다. 사용하는 단어가 다양해지는 만큼 우리의 감정도 풍성해진다.
안 쓰던 단어들 좀 꺼내봐야겠다.
"헐!"
놀이터에서 나와 함께 놀던 하늘이가 뭘 보고 놀랐는지 소리친다. 다섯 살짜리가 벌써 '헐'이라니. 아내도 나도 집에서 '헐'이란 표현은 잘 안 썼던 것 같은데. 나도 모르게 썼나. 어디서 배워왔는지 뭔가 좀 씁쓸하다.
"하늘아, 헐이라는 말은 좋은 말이 아니야. 그럴 땐 대신에..."
놀랐던 하늘이의 표정이 답답함과 분노로 바뀐다. 그리고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더 크게 소리지른다.
"아니이! 아빠! 벌 있다고오~ 벌!"
단어에 예민해진 아빠가 혼자 찔려서 주절대다가 벌한테 찔려서 벌 받을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