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과 관계
다섯 살 빛이의 첫 설거지 도전.
싱크대 앞에 발판을 가져와 올라선 빛이는, 손에 맞지도 않는 고무장갑을 끼고 처음 해보는 거품놀이에 신났다.
'그냥 내가 할걸.'
속으로 수없이 외친다. 그릇을 씻는 일보다 여기저기 밖으로 튀는 물을 닦아내는 수고가 훨씬 더 크다.
"아빠, 나 잘해?"
딸은 거짓말하기 싫은 아빠에게 피해 갈 수 없는 거짓말을 요구한다.
"와, 잘하네. 빛이가 하니까 그릇이 더 깨끗해지네? 근데 물이 밖으로 안 튀면 더 잘하는 거야."
내가 말하는 핵심은 뒤에 있지만, 아이는 앞의 말만 듣고 더 신나게 그릇을 닦는다. 갑자기 두 살 동생 하늘이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끄아아아아앙!"
싱크대 아래로 튄 거품이 기어가던 아이의 눈에 들어간 것이다. 하늘이 눈이 땡땡 부어오르며 설거지도 종료.
"아빠가 밥 차리는 동안 달걀 좀 저어줄 사람?"
빛이가 손을 번쩍 든다. 요리할 때 달걀을 젓는 일은 늘 빛이 몫이다. 처음엔 다 젓고 나면 달걀물이 반만 남았었는데 이젠 흘리지 않고 제법 잘 젓는다.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빛이 스스로 뿌듯함을 느끼게 하는 것과, 내가 요리하는 동안 뜨거운 불 옆에 오는 걸 막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밥통에 남은 밥을 소분하여 냉동실에 보관할 때도 항상 빛이가 뚜껑을 닫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지만 실제로는 같이 할수록 일이 더 커지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같이 하는 이유?
빛이는 자신이 무언가를 돕고 있다는 생각에 굉장히 뿌듯해한다. 스스로 존재의 가치를 충분히 느끼는 게 눈에 보인다.
인간관계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데일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보면, 그 핵심은 '상대가 중요한 사람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설거지와 요리, 청소 등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비효율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빛이가 스스로 중요한 사람임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다. 결국 목적은 일의 완성이 아닌, '관계'다.
"빛이야, 이거 빛이가 깨끗이 씻은 그릇에, 빛이가 담아서 얼려뒀던 밥에, 빛이가 달걀 저어서 만든 요리라 더 맛있네?"
"맞아."
결과적으로 빛이는 밥을 너무나 잘 먹는다. 이토록 맛있는 밥이 있을까. 자신의 정성과 노력이 가득 담긴 밥이다. 본인이 만든 요리를 부정할 수 없기에 무조건 맛있을 수밖에.
'밥투정, 반찬투정, 그게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