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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올가미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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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Jul 25. 2021

나는 나르시시스트의 딸이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나의 가까운 지인,

심지어 아이아빠의 지인들 조차 내게 묻는다.

저런사람과 어떻게 연애하고,

긴 기간을 결혼해서 살아왔는지.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


그것에 대한 해답은,

내가 이혼 후 받은 장기간의 심리상담 중

상담사 선생님께 듣게 되었다.

<엄마같은 사람을 버틸 수 있었기에,

아이아빠나 시부모같은 사람도 버틸 수 있었다>고.


나르시시스트란 단어는 근래들어 알게되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희생자들을 만들어 본인의 뜻대로 조종하는 인간의 상이다.

나의 엄마는,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본인을 힘들게했고

본인이 나때문에 엄청난 희생을 했음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강조한다.

나 때문에 아빠와의 원치않던 결혼생활을 유지했고, 나 때문에 모든 인생이 흔들렸다고 한다.

현재는 이혼한 딸인 나 때문에 본인이 모임도 못 나가고 우울감에 빠졌다고 탓을 한다.

나는 정말 나 때문인줄 알았다.

엄마의 인생이 힘들게 된 것이, 다 나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학 입학을 한 후,

정신없이 과외알바를 하며 돈을 벌어 엄마를 드렸고 효도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엄마의 요구는 끝이 없었다.

엄마의 끝없는 요구를 들어드리는 것에 깔려있던 나의 마음 속 깊이는 엄마의 인생을 망가뜨린 죄책감이라는 것이 자리했다.

연애 또한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남자들에게 쉽게 보이면 안된다는 것을 세뇌시켰고, 아빠같은 남자를 만나면 안된다고 항상 강조했다. 쉽게보이지 않으려면 혼전순결을 지켜야 하고, 결혼전제로 연애를 해야했다.

엄마는

아빠가 얼굴이 잘 생겨서 얼굴 값 하며 산 것이 힘들었고,

아빠처럼 능력없는 부모가 있다면 이를 부양하기 위해 엄마만 고생이기만 했다.

아빠처럼 다정히 말하는 사람은 말만 번지르르한 허풍만 있는 사람이었고,

아빠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은 세상의 죄악을 저지르는 나쁜 사람이었다.

어린 내 시각에서, 엄마는 아빠에 의한 피해자였다.

아빠는 철저히 엄마를 괴롭히고 자기 인생만 사는 이기적인 아버지였다.

엄마처럼 살지 않고 싶어

아빠와 모든 조건이 반대인 남자를 찾고 엄마의 허락을 받았다.

못생기고 뚱뚱해서 어떤 여자도 좋아하지 않을 외모, 부모의 기반이 튼튼해서 부양은 물론 우리의 미래도 책임질 수 있는 재력, 본인이 전문직이어서 경제적으로도 향후 걱정이 안되는 사람, 술은 입에도 못대는 사람, 집안이 엄해 연애를 결혼 전제로 하려는 사람.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어렸다.

결혼상대를 그렇게 선택했으면 안됐다.

배우자에 대한 부모의 시각을 존중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 엄마는 현명한 부모가 아니었다.

엄마에겐,

딸의 행복보다 사위와 사위 집안이 가진 조건이 중요했다.

그런 집안에 시집을 보낸 것이 엄마에겐 자랑스러울 뿐이었다.

아무리 내가 힘들다고, 울부짖어도 들어주지 않고

되려 내 단점들만 강조하며 그들을 치켜세웠다.

친척들을 만나면 사위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자랑하기에 바빴다.

결혼 후 어두워지는 내 표정따윈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내가 그 집안에서 나오지 않기를 바랬다.

내가 강남의 좋은 아파트에서, 법조인 시부모를 모시고, 전문직 남편에게 생활비 받으며 그냥 살길 바랬다.

행복하지 않아도, 다들 그렇게 산다고.

엄마도 행복하지 않게 평생 살았으니

너도 그렇게 살라고 강조했다.


내가 집을 나오자,

엄마는 되려 나와 연을 끊었다.

본인이 하라는대로 그 집에 붙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나를 너무 미워했다.

내가 죽을것 같다는 말도, 전혀 듣지 않고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가 실려간 병원에서 연락을 받고서야 내가 진짜 죽을 뻔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미안함도 잠시,

엄마는 아이 아빠와 만나고 따로 연락하며

어떻게 다시 우리 둘을 붙일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나에게는 제일 약한 부분인 내 아이를 들먹이며,

아이를 위해서 꼭 아이 아빠와 재결합하라고 지속적으로 강요했다.

만약 아이 아빠와 재결합하지 않을거라면,

너는 평생 혼자살며 아이를 위한 죄책감을 갖고 살라고 저주를 퍼붓는다.



다행히도,

나는 엄마의 잘못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엄마가 잘못 생각하고,

엄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조종하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엄마가 얘기하는 나의 행복한 미래는

절대 나를 위한 행복이 아닌  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서도

재결합이라는 희생을 택하면 안된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엄마에 대한 의구심이 시작된 것은 내 아이를 낳고난 후였다.

엄마는 항상 나를 낳고

내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내가 얼마나 힘들게 밤마다 울어댔는지,

내가 커가면서 엄마를 항상 속상하게만 했는지를 얘기했다.


나는 엄마의 말처럼 내 아이가 밉고 힘들까봐

아이를 갖는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막상 내 아이를 낳아보니 전혀 달랐다.

내 아이는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2.3kg의 핏덩이로 태어난 내 아들은

태어난 순간부터 너무나 아름다운 존재였다.

밤에 많이 울고 힘들게 했지만 아이가 한번 웃어주면 그 모든 것이 씻겨 내려갔다.

이유식을 던지고 온 집안에 이유식을 칠해도,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아이가 큰 지금까지도,

나는 내 아이가 매 순간 너무 예쁘고 귀엽다.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사랑하지만, 더 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다.

옛시간을 되돌아보더라도,

엄마가 나의 어릴때를 비난하던 것과는 달리

난 내 아이가 예뻤던 것만 생각났다.

엄마도 힘들었으니 자식인 나도 힘들어도 된다는 마음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겪는 아픔이나 고통은 내 아들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 아들은 힘들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모든 엄마가 엄마같은게 아니구나,

우리 엄마가 이상하구나.

우리 엄마가 하는 건 올바른 사랑이 아니구나.

우리 엄마가 문제가 있구나.

우리 엄마가 나를 가스라이팅 하는것이구나.



이후 나는 심리학 공부를 시작했고,

나르시시스트라는 단어를 알게되었다.

나르시시스트에 해당하는 모든 점을 우리 엄마가 갖고계셨다.

알고 나니 명확해졌다.

엄마와 분리되어야 함을.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다 분리되어야 함을.

그것이 내가 살 길임을.


체력적으로 회복되고 난 후

바로 독립을 했다.

내 정신을 차려야 했다.

또다시 엄마의 기준에 맞게 살며

인생을 후회하고 살 수는 없다.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내 선택에 책임을 지며 살아야 했다.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하며 살기로 했다.

더이상은 엄마의 가스라이팅에 흔들리지 않기로 결심했다.



엄마는 지금도,

내가 본인의 계획 아래에 있길 바라고

내가 본인 계획에서 벗어날까봐 두려워한다.

감사하게도 나는 정신적으로 많이 독립했고

엄마에 대한 정신적 분리가 이루어졌다.

재결합 얘기를 하는 엄마에게,

"그렇게 좋은 사람이면 엄마 아들로 데리고 살아요"

하고 말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생각해보면,

엄마에 비하면 아이 아빠는 순한 맛 이었다.

매일 비난만 하던 엄마에 비해

사랑을 주던 연애때의 아이 아빠는 내게 가뭄에 내린 단비와도 같았다.

결혼 후,

시어머니의 온갖 가스라이팅과 이간질, 비난은

어찌보면 익숙한 패턴이었다.

참고 버티는 건 내게 익숙했다.

그러나 달랐던 것은,

시어머니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 당시에 SKY 신문방송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할만큼 지능적으로 똑똑한 분이셔서,

이간질과 거짓말을 너무나 지능적으로 하시니 도저히 버텨낼 수가 없었다.

우리 엄마보다 훨씬 더한 강적이었다.

동서가 6개월 버텼던 사람을,

나는 7년을 버텼다.


이것에서 느껴진다.

나의 버티기 능력이 어느정도 선이었는지.

얼마나 자기파괴적이었는지.




이제는 나도 행복하고 싶다.

엄마는, 내가 행복할 자격이 없다고 한다.

아이아빠와 재결합 하는게 아니라면

행복해서도 안된다고 계속 얘기한다.

하지만,

나는 행복하고 싶다.

사랑도 새로 하고 싶고 사랑도 받고 싶다.

내가 행복한 모습을 보여야

내 아들과 내 주변사람들에게도 행복감을 전달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는가?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나도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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