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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올가미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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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지아 Aug 17. 2021

(전) 남편과의 첫 만남

둘 다 순수했고, 어렸다.


남편은 나의 첫 사랑이었다.

교복을 입던 나의 학창시절은 내내 공부만 강요받으며 이성관계의 타의적 단절을 겪었고,

대학에 진학한 나는 햇병아리같던 미숙한 성인이었다.


순정만화와 당시 유행하던 인터넷 소설을 보며

첫사랑과 결혼하고 싶다는 막연한 로망이 있었고,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하나님이 내게 주실 배우자에 대한 믿음과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어려 내가 어떤 남자를 만나고 싶은  기준 조차 없었다.

단지, 결혼할 상대와 연애를 하고 싶었다.

엄마가 얘기하는 조건들을 갖춘 남자와

첫 연애와 결혼을 다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맞다고, 그게 아름다울거라고 생각했다.

성경적으로도 그것이 맞았다.

내 배우자에게 나의 순결을 줘야한다고,

그렇게 내 몸과 마음을 첫 배우자를 위한 것으로 아껴두는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당시 나는 소개팅에서 만난 어떤 분과 소위말해 썸을 타고 있었고,

우리는 한달정도 데이트를 하며 종종 만나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그 썸남이 친구와 함께 나온 자리가 있었다.

그때 썸남 옆의 그 친구를 본 순간, 내 머릿속에는 너무나 강렬하게

<저 사람과 결혼할 것 같다> 는 확신이 그 친구를 향하였다.


사실, 그때의 기억은 남편과 헤어진 지금도 선명하다.

초라했던 행색의 그사람에게 순간적으로 비친 후광과, 하나님이 계시처럼 주시는 강렬했던 음성.

너무나 뜬금없이 갑자기 들려온,

저 사람과 결혼할 것이라는 강한 음성.

너무나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하지만 내가 잘 되가던 썸남도 아닌, 썸남 친구에게 그런 기분이 든 것이 내 스스로 너무나 불쾌했다.

그 경험과 기분을 부정하고 싶었다.

또한,  친구의 외형도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다.

내가 썸을 타던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남자로서도 전혀 멋있지 않던 사람이었다.


인연이라는것이 참 재밌게 이어진다.

나는 결국 그 친구분과 결혼을 했으니 말이다.

그 친구가 나의 (전)남편이 되었다.


나와 당시 썸을 타던 사람은 내게 종종

"넌 나보다 xx(전남편의 이름) 이랑 더 잘 어울릴것 같아"

라는 말을 해왔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의아했다.

그렇게 만나오던 중, 그분과는 인연이 잘 되지 않았고,

그 이후부터 남편이 계속 연락을 해 왔다.

혹시 남자 둘이 날 갖고 장난을 하는건가 해서

남편에게

"혹시 날 갖고 노는거라면, 인생 그렇게 살지말라"

며 따끔한 욕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것은 오해였고,

오해를 풀고자 몇달만에 만난 자리에서

나와 남편은 서로 첫눈에 반했던 것 같다.

그날부터 매일 연락하고 매일 만났으니까.

부정하고 싶지만,

그때의 감정에는 그것이 사랑이었다.


내 나이 21살, 남편의 나이 24살이었다.


첫 연애가 부모님의 반대로 끝나게 된 남편은

부모님이 좋아하실 만한 여자와,

결혼할 조건을 가진 여자와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고

내가 가진 학벌, 집안 등 여러 조건들과 신앙심까지도 하나하나 다 따졌다.

나는 그런 그에게 본인이 찾던 여자였던 것 같다.

그 또한 부모님이 원하는 여자를 찾던, 본인이 원하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 지 모르는 햇병아리였다.


나 또한, 결혼하고 싶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고,

부모님이 얘기하신 조건들을 갖춘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우리 부모님이 좋아하실 완벽한 조건이었다.


인연이라고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를 너무나 찾던,

바로 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던 상대였다.


24살의 남편은 내게 긴 기간의 데이트 후

"결혼 전제로 우리 사귈래?"

라며 고백했고,

나는 그런 그에게 승락했다.



우리는 둘 다 미숙했다.

둘 다 부모에게 독립되지 않은 채로,

서로가 서로의 부모를 만족시킬 상대를 찾았고,

양가 부모의 허락 아래서 결혼 전제로 연애하는 것이 편했던, 어린아이들이었다.

 

하지만 난 내 아이에게 확실히 얘기해줄 수 있다.

어떠한 형태든,

어떤 시작이었든,

엄마 아빠는 서로 사랑했다고.

그것은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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