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그림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어딘가 너무 익숙했다. 우리 딸이 나한테 자주 하는 말이라서.
딸과 함께 앉아 그림책을 폈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바빠 보이는 엄마와
느긋한 아이가 대조적으로 등장한다.
궁금하다.
상황이 급한 걸까, 엄마가 급한 걸까..
핸드폰을 손에 쥐고 "빨리 가자니까!"라고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내 모습이 보이는 거 같아 기분이 묘해진다.
저기 복댕이만 안고 있으면 완전 난데..
머쓱하게 "엄마랑 닮은 거 같아"라고 했더니 그림책을 함께 보는 행복이가 깔깔대며 웃는다.
핸드폰을 들고 가는 게 엄마 같단다.
너 예리해..
조급한 엄마는 앞만 보고 빨리빨리 나간다.
아이는 이런 엄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엄마, 잠깐만!"을 외친다.
아이의 두 눈에 담기는 풍경은 어떨까,
아이는 두 손으로 뭐가 그렇게 만져보고 싶었을까,
아이의 작은 입으로 엄마랑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뭐였을까.
3인칭 시점인 나는 이게 궁금한데 그림책의 엄마는 일단 그냥 바쁘다.
아이를 챙기고 갈 길을 가는데 더 급하다. 어쩐지 엄마의 마음에 공감이 많이 간다.
막상 우리 아이와 함께일 땐 나도 이 엄마와 같으니까.
갑자기.. 비가 온다.
지하철을 타러 가야 되나 보다.
시간 맞춰 어디를 가야 되는구나.
딸과 함께 그림책을 보며 속으로 중얼댔다.
아고 급한데 또 비까지 오네, 이 엄마의 아침이 얼마나 바빴을까.. 비옷과 우산까지 챙기느라 고생이 많았겠다... 급하게 가야 되는데 애가 자꾸 딴청 부려서 너무 답답했겠다.
"엄마 마음이, 발걸음이 급하게 움직일만했네"라며 엄마 마음을 이해하는데 어딘가 자꾸 마음 한구석이 찝찝하다. 그러는데 딸이 말한다.
"엄마도 빨리빨리 하는데 똑같다!"
.... 뜨끔하다. 넌 역시 예리하구나.
요즘 들어 딸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엄마는 왜 나를 안 기다려줘요?"
종종걸음으로 어린이집으로 가는 길,
분명 내 손을 잡고 있던 딸이 사라진다. 깜짝 놀라 뒤를 보면 저기 멀찍이에서 억새풀을 만지고 있다. 부드럽다면서.... 그리고 나를 보고 말한다. "엄마 기다려 달라고 했잖아요!"
하원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길,
얼른 신발 벗고 들어가 손을 씻으려 화장실로 가면, 딸이 소리를 지른다.
"엄마가 그냥 또 갔어!! 어린이집 갔다 와서 신발 벗을 때 엄마가 빨리 들어가는 게 싫어요. 기다려주세요. 그냥 가면 속상하단 말이야!!"
아.. 매번 "기다릴게" 해놓고 또 깜박했다.
엄마인 난 바쁘다
엄마로서 할게 너무 많다.
아침은 말할 것도 없고, 집에 와서도 빨리 씻기고, 밥 해먹이고, 치우고.. 할 게 태산이다.
그런데 이건 내 입장이다.
아이의 입장에서 엄마는 혼자 바삐 움직이는, 아이를 지나치고 기다려주지 않는 엄마다.
아직 엄마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니까, 마냥 속상하고 서운하겠지.
나도 그림책의 엄마처럼 매일매일을 이렇게 서두른다.
우리 아이가 보고 있는 세상을 함께 보지 못하고,
우리 아이가 경험하는 것을 함께 나누지 못하고,
해야 할 것들에 초점을 두고 앞서 나가고 있다.
나는 어른이라서 그래, 엄마라서 그래, 어쩔 수 없잖아? 그럴듯한 핑계를 댈 수도 있지만.. 딸과 함께 그림책을 보는데 그러고 싶지 않다. 내가 하루 동안 부지런히 움직이며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좀 더 딸의 시선과 속도에 맞춰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너와 함께 한 48개월이 이렇게 쏜살같이 지나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니까.
최소한 엄마 잠깐만!이라고 하면 바로 딱 멈춰 설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
"엄마 기다려줘요!"라고 하면 핑계대기보다는 일단은 "그래" 하고 기다려주는 엄마이고 싶다.
그러면 네 눈에 담아지는 그 풍경이 엄마의 눈에도 담기겠지?
네 마음속에 일어나는 경험이 엄마의 마음에도 닿아오겠지? 그럼 함께 나눌 수 있을 거야.
어쩌면 오늘 하루 엄마가 해야 할 모든 미션을 완수하는 것보다, 너와 함께 경험하고 나누는 게 더 중요할 수 있겠다. 너에게 세상은 모든 게 궁금하고, 새롭고, 신기할 테니까.
그리고.. 이 시간이 겹겹이 쌓여가다 보면 엄마의 상황과 마음도 넉넉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훌쩍 자란 너를 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