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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Dec 23. 2021

참.. 엄마가 뭔지 (+분석심리학)

분석심리학_집단무의식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박사과정 입학을 앞두고 있는 나.

내년 3월에 복댕이도 어린이집에 가기로 했다.

행복이는 두 돌까지 끼고 키웠는데 복댕이는 9개월도 되지 않아서 어린이집을 보내야 한다는 게 내심 불편하다.

일을 해야 하고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하며 마음은 편했을지도 모르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엄마인 나의 편의다.
솔직히 공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건데 하는 걸 선택한 거니까.

남편이 휴직을 하기로 했지만 그렇게 되면 가정의 경제적인 상황이 너무 좋지 않을 거 같고,
친정이나 시댁에 부탁하기에도 두 곳 모두 저 먼 경상남도에 위치해 있다.
어쩔 수 없이 어린이집의 도움이 필요하다.



누나를 닮아 엄청난 엄마 껌딱지인 복댕이.
완모를 하는 아가라 하루 종일 "옴마"하며 젖을 찾는 아이.
굉장한 등 센서를 보유하고 있어서 안아야 겨우 자는 아들.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소리소리를 지르는 까다로운 내 아가.

어린이집 입소까지 2개월을 남겨두고

어린이집에 들어가기 전에 단유는 어떻게 할 것이며, 도대체 이 아이는 가서 무엇을 하겠는가, 제 성격에 소리 지르고 울다가 힘들진 않을까 밤마다 미리 걱정되고 속상한 마음이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을 번복하지는 않는다. 이 사실이.. 나는 더 불편하다.


여러 감정이 올라오는 마음의 결을 타고 들어가다 보면 어느 한 지점에서 딱 멈춰 서게 된다.

"아이를 위해 엄마인 내가 더 희생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아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엄마인 나를 위한 선택을 했다는 찝찝함.

도대체 이 죄책감은 뭔데 자꾸 내 마음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건지,
누가 엄마는 희생해야 한다고 정해놓은 것도 아닌데 왜 자꾸 그렇게 생각이 흘러가는지 답답하다.




융의 분석심리학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과 같이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한다. 정신분석과 같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지라도 무의식이 우리의 삶에 아주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분석심리학은 정신분석이론과 달리 개인의 무의식뿐 아니라 집단 무의식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집단 무의식이란 인류의 역사를 통해 발달해 온 정신과 한 개인이 소속한 문화적 영향을 바탕으로 형성된 타고난 정신적인 원리이다. 집단 무의식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개념이라서 이해하기 어렵다. 쉽게 말하자면 집단 무의식은 인류에게 유전되는 보편적인 사고와 생각이다.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유전처럼 자연스럽게 알고 나눌 수 있는 것.

예를 들어서, "엄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인류 보편적으로 "자식을 사랑해야 하는 사람, 또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이것이 원형이고 집단 무의식이다. 하지만 그 정도와 방식, 기대하는 바 등은 나라 또는 가정의 문화, 개인이 처한 환경마다 다르다.

그리고 한국에서 엄마로 산다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기대와 시선을 받아내는 거 같다.
꼭 타인의 어떠함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에게도..

그 어떤 나라보다 아기를 끼고 키우는 대한민국.
부부 중심의 서양문화와는 달리 유독 자식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가정 문화.

자연스럽게 "엄마" 하면 "희생"이 연관되어 떠오른다.
희생해야 할 것 같고 희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니 당연히 지금의 내 결정이 아주 상당히 불편하다. 그 누구나 하는 당연한 희생을 하지 않는 거 같아서. 물론 하고는 있지만 덜 하는 거 같아서.

뭐야.. 왜 이렇게 자연스럽게 죄책감이 드는 거지 했더니 내 안에 있는 무의식의 영향도 있었구나



분석 심리학의 상담은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정신 원리를 의식화해서 개성화(나다움)를 이루는 것이 목표다. 개성화를 위해서는 나의 모든 측면들이 통합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을 강조한다. 개성화를 통해 진짜 자기를 발견해 나갈 수 있다고 본다.


"나"다움은 어떤 걸까.


이제 엄마라는 이름과 나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나는 이제 나이기도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다.
엄마와 내가 잘 통합되고 조화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종종 내가 되고 싶은 나와 엄마로서 요구되는 나는 어느 정도 충돌하기에 타협이 필요하다.

진짜 나를 유지할 수 있으면서도 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엄마의 역할.

타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쓴 그런 엄마 말고
그냥 나다운 엄마는 어떤 엄마일까.

아직 잘 모르겠지만.. [나는 나와 타인의 성장에 대한 엄청난 갈망이 있고, 그것을 에너지로 표현해 내는 사람, 배우고 가르치며 외부적인 어떤 활동을 할 때 행복한 사람, 이 과정에서 무언가를 성취해 내는 것이 중요한 사람]이 나라는 건 알겠다.

그래서 집에서 육아만 한다는 것이.. 내게는 참 더 어렵다는 걸 어렵지만 인정해 본다.

나도 아이들도 성장하지만, 이 과정에서 외부적인 어떤 활동을 하긴커녕 나로서 무언가를 성취해 내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래서 어렵다. 이게 얼마나 이기적으로 들리고 보이는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욕심쟁이 같았다.

하지만 그냥 나라는 사람이 이렇다는 걸

이기적이라고 비난하지 않고,
엄마는 당연히 이래야지! 하는 집단 무의식에 빗대어 좌절하지 않고,
주변의 시선에 너무 의식하지 않고

인정하며 나아가 본다.

나는 또 전형적이거나 전통적이지는 않더라도 나이기에 잘하는 엄마의 모습들이 많다는 것도 알아준다. 그렇게 부족하지만 스스로 통합시켜본다.

아마.. 모든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 앞에 놓일 때마다 엄마로서, 나로서 계속될 숙제일 거 같다.

조금은 이기적이라도 그럴 때마다
내가 생각하기에 바람직한 엄마상만을 선택하기보다
어느 정도 나다움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것이 결국엔 나와 아이들을 위한 최선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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