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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담하는 쏘쏘엄마 Oct 01. 2021

나와 아이를 성장시키는 (+대상관계이론)

대상관계이론_최적의 좌절

나는 최적의 좌절이라는 단어가 참 좋다.

최적의 좌절은 나에게 그 단어 자체로 위안을 준다. 위로가 된다.


좌절이면 좌절이지 최적의 좌절은 뭘까?



자기 심리학자 코헛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아이가 겪을 수 있는 좌절을 분류했다.

 <1>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좌절

 <2> 아이가 감당할 수 있는 좌절


 <1>과 같이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좌절은 아이에게 심리적 상처를 남기지만 <2>와 같이 감당할 수 있는 좌절은 아이에게 상처로 남지 않는다. 코헛은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좌절을 '최적의 좌절'(optimal frustration)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최적의 좌절은 견뎌내 볼 만한 좌절인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처음으로 받아쓰기 평가를 받아왔다.

집에선 곧잘 했는데 학교에선 긴장이 되었는지 10개 중에 2개를 맞췄다. 20점..  이 처참한 점수에 아이는 시무룩해진다. '내가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구나.' 하는 좌절을 겪는다.


근데 이때 엄마의 태도에 따라 아이의 좌절은

"견뎌낼 만한 성장을 불러일으키는 최적의 좌절"이 될 수 있고 또는 "상처만 남는 견딜 수 없는 좌절"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서, 엄마가 엄마도 좌절되는 마음에 

"야!! 넌 이것도 못해? 내가 너한테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어떻게 20점을 맞아? 돌대가리야? 돌대가리도 너보단 낫겠다!"라고 한다면... 아이에게는 20점을 맞았던 이 경험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심할 경우엔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나는 받아쓰기도 못하는 인간이 되어버릴 것이다. 머리로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몸이 기억해서 한참이나 지난 어느 시점에 크고 작은 시험을 치를 때마다 불안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만약 엄마도 좌절이 되었지만, 스스로를 다독인 후에 아이를 공감해주고 격려한다면?

"아고, 우리 아들 속상했겠다. 엄마랑 연습했을 땐 잘했었는데. 많이 긴장됐었어? 처음엔 그럴 수 있어. 엄마도 어릴 때 학교에서 처음 시험을 쳤던 날 너무 긴장돼서 아는 것도 틀린 적이 있어. 괜찮아. 너무 기죽을 거 없어. 연습하면 되지. 그리고 학교에서도 받아쓰기 계속하다 보면 편안해질 거야. 또 좀 뭐 틀리면 어때? 우리 아들은 말을 이렇게 잘하잖아?"


엄마의 공감과 격려 속에서 아이는 위안을 얻을 것이다. 최소한 받아쓰기 점수를 나라는 사람의 점수로 받아들이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번엔 조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받아쓰기를 더 연습할 수도 있다. 좌절을 겪어도 잘 이겨내 봤으니 다음번에 조금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과도하게 비난하거나 너무 기죽지 않을 것이다.


견뎌내 볼 만한 좌절 속에서 아이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지 않는다.

그래서 최적의 좌절은 아이의 성장을 불러일으킨다.




최적의 좌절이란 부모의 태도가 비록 좌절을 주지만,
아이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최적의 좌절 상황에서, 유아는 자신을 진정시키고 안정시켜주는 부모와
그 태도를 내재화하는 과정을 통하여 점진적인 중성화를 진행해 나간다.
즉, 유아의 건강한 심리구조가 형성되기 위해선
상처를 주지 않는 적절한 부모의 양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뜻이다.

'쉽게 쓴 자기 심리학' 中




코헛은 말한다.

아이에게 건강한 심리구조가 형성되려면 완벽히 잘 해내는 부모의 양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는 적절한 부모의 양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가 처음 어린이집 갔던 때를 기억한다.


적응 시간을 가지려 일주일을 함께 들어갔는데 12월생에다가, 기질적으로도 수줍음이 상당히 많던 우리 아이는 쉽사리 끼지 못하고 그 상황들을 상당히 불편해했다. 저기 멀리 구석에서 바라만 보는 그 모습을 엄마로서 지켜봐 주는 게 사실 쉽지 않았다. 당장 개입해서 놀게 해주고 싶고, 혹여나 소외감은 느끼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엄마와 적응 시간이 끝난 후에도 어린이집 갈 때마다 서럽게 우는 아이를 보며, "꼭 보내야 되나, 애가 이렇게 힘들어하는데"하며 얼마나 마음이 오락가락했는지 모른다. 내 마음도 괜찮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아이에게 괜찮다고 겨우겨우 달래며 억지로 등을 떠밀었을 때.. 울며 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한참을 어린이집 주변을 서성거렸다.


엄마로서 아이의 좌절을 지켜본다는 건, 내가 좌절을 느낄 때 보다 더 힘들다.

좌절되는 상황은 다 치워주고 싶고, 다 도와주고 싶다.

내가 희생하더라도 내 아이 앞에는 꽃길만, 행복한 길만 깔아놔주고 싶다.

좌절 없이 의기양양하게 당차게 자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지만 정말 현실은 녹록지 않다.

우리네 인생은 좌절을 경험하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좌절 없는 관계도 없고, 좌절 없는 인생도 없다.


하물며 갓 100일이 넘긴 애도 뒤집으려고 온갖 애를 써도 뒤집지 못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좌절을 경험하는데..


우리는 좌절 없이 성장할 수가 없다.

어느 정도의 고난과 좌절이 있어야, 우리는 그것을 이겨내 보려는 노력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한다.  

아기가 좌절을 겪더라도 계속 시도해보면서 마침내 뒤집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와 함께하는 순간마다 양육자이자 엄마인 내가 해야 할 역할은 좌절을 다 막아주거나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좌절이 견딜만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걸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 아이가 성장하고 있다는 걸 믿기 때문에.

내가 속상하다고 순간을 못 참고 다 나서서 해주는 것이 결과적으로 아이의 성장을 막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러기에 아이가 스스로 좌절을 이겨내 볼 수 있는 안전한 장을 열어주는 것이 참 중요하다.

옷을 스스로 입기 위해서도 수많은 실패를 뚫고 연습해야 하듯이,  

수많은 견딜만한 좌절 속에서 아이는 그 좌절을 극복해내며 성장해 나간다.

이때, 안전한 장이란 엄마가 구박하거나 소리 지르고 윽박 하지 않고 혼자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다.



1년이 다 와가도록 어린이집에 가기 싫다고 울거나, 화내거나, 버티는 아이 앞에서

"넌 왜 아직도 적응을 못하니!"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내 마음을 꾹 누르고 눌렀다.

내가 이 말을 하는 순간, 아이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의 좌절을 겪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이집도 못 가는 한심한 아이가 되는 것이니까.


대신 낯설고 어려운 너의 첫 사회생활.

이 속에서 겪는 좌절을 견딜 수 있을 만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어린이집을 좋아할 수 있도록 엄마 나름의 최선을 다 해 보았다. 친구들과 나눠 먹을 수 있는 간식을 함께 만들어 본다거나, 집에 어린이집 친구들을 초대한다. 어린이집에 잘 다녀오는 날은 정말 폭풍 칭찬의 날이다.


사소하지만 이 모든 애쓰는 엄마의 노력들이 아이의 좌절을 견딜 수 있게끔 만들어 준다.

그리고 엄마만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없는 어렵고 불편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적응해보려고 아이의 애씀과 노력은 아이가 한층 성장하도록 해준다.



마침내 아침에 일어나 즐겁게 어린이집에 가는 널 보며,

너의 성장을 새삼스레 다시 느낀다.



무엇보다 엄마가 엄마의 좌절을 겪어내는 모습을 보며 아이는 배워갈 것이다.

엄마가 좌절이 다가올 때 무너지고 흐느껴 울고 힘든 모습만을 보인다면 그렇게 배울 것이고,

화를 내고 남을 탓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렇게 배울 테고,

좌절되는 상황에서 힘들고 어려워도 스스로를 위로하며 괜찮다고 다독이고 극복해보려고 애쓰는 모습 속에서 아이는 그 태도를 배울 것이다.  







그리고 나도 아이에게서 배운다.


유독 너무 피곤하고 지치는 날, 그게 어제였다.


둘째 수면교육도 그렇고 평소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행복타임도 짧게 가질 수밖에 없었다.

첫째가 유난히 잠들기 전에 말이 많고 쉽게 잠들지 않아 "이제 그만 말하고 자자!" 하니 화가 났는지 애가 크게 우는 소리를 냈다.

겨우 재운 둘째가 깰 거 같아서 불안하고, 나도 내 하루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좀 그만해!"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놀랐고 애도 놀랐다. 당연히 첫째는 더 울었고 둘째도 깼다.

너무너무 화가 났지만 어찌어찌 정리가 되어 다 잠든 후  

흐느끼고 울다 잠든 첫째를 보면서 너무나도 미안해져 한참 머리를 매만져 주었다.

나 자신이 한심했다. "아니 애가 엄마랑 오늘 시간을 많이 못 보내서 더 얘기하고 놀고 싶었던 건데."

머리가 아팠고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난 왜 이렇게 엉망일까. 너무 좌절됐다.


그런데 오늘 일어나자마자 내 옆에 와서 "엄마, 엄마 많이 사랑해"라며 꼭 안아주는 널 보면서

아이에게 화내서, 미안하고, 한심하고, 상처 받고, 좌절스러웠던 내 모든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내 생각보다, 내 생각 이상으로 관대한 마음으로 날 사랑해주는 너를 보면서

엄마로서 겪는 이 정도 좌절은 견딜만하다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미안해하지도 말고, 너무 자책하지 말고 오늘은 더 고마움을 표현해주자라는 마음이 들었다.

화가 나도 한 번 더 참아보자 하고 다짐하게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내가 엄청 좋은 엄마가 아니라도, 이렇게 날 사랑해주는 네가 있으니까.

그래도 내가 너에겐 이만하면 괜찮은 엄마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너를 이렇게 사랑해줘야지.

정말 관대한 엄마가 되어주고 싶다.

네가 커가면서 마주할 수많은 어려움과 좌절 속에서도 정말 진심으로

"괜찮아, 이만하면 넌 정말 잘하고 있어. 넌 충분히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그래서 너의 좌절이 견딜만한 것이 되도록 돕고 싶다.



아이는 아이대로, 나는 나대로

우리를 둘 다 매일의 삶 속에서 크고 작은 좌절을 겪어내고 있지만, 함께 "견딜 수 있는" 최적의 좌절로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엄마인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힘 있게 성장해 나가고 있을 것임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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