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김치찌개

먹기만 해도 누군가 떠오르는 음식

by 조세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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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소중한 김치찌개가 하나 있다. 아직도 레시피를 정말 알고 싶지만 알 수 없는 어떤 김치찌개가 있다. 바로 우리 외할머니의 김치찌개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할머니 집에 놀러 갈 때면 김치찌개를 가끔 끓여 주셨다. 아주 국물이 진한 김치찌개였는데,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먹어본 김치찌개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혀끝에 맛이 살짝 맴도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나는 부모님께서 맞벌이를 하셔서 외할머니 집에서 주로 밤늦게까지 있었다. 학교를 다녀와서도 곧바로 할머니 집에 가서 숙제를 하거나 TV를 보면서 부모님께서 데리러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집에 오면 뭐라도 먹이려고 노력하셨고, 나는 할머니의 밥이 입맛에 잘 맞아 아주 잘 먹었다.


어느 날엔가는 할머니께서 나를 학원까지 데리러 오셨는데, 집으로 가는 길에 정육점에 들르자고 하셨다. 나는 또 어떤 맛있는 것을 해주시려나 싶어 벌써부터 설렜다. 할머니는 알고 지내는 정육점에 들러 삼겹살과 목살을 섞어 돼지고기를 사셨다. 아저씨는 고기를 자르며 손녀딸이냐고 물어 보셨고 할머니께서는 웃으면서 말 잘 듣는 손녀 딸이라고 나를 쓰다듬어 주셨다.


TV를 보고 있으면, 할머니께서는 항상 한 상을 차려 오셨다. 그 크고 동그란 나무 밥상, 항상 거기서 밥을 먹었고, TV는 정신 없다며 항상 끄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김치찌개가 밥상에 등장하자 TV고 뭐고 중요하지 않았다. 할머니께서 해주신 음식들은 모두 맛있었지만 난 그 중에서도 김치찌개가 가장 좋았다. 김장 김치를 장독에서 꺼내서 한 뭉텅이를 넣고, 아까 정육점에서 사온 돼지고기를 또 한 뭉텅이 넣고 푹 끓여 내는 것이다. 레시피가 그렇게 특별해보이지 않았는데도 맛있었다. 특히 그 국물이 달랐는데, 마치 토마토 소스처럼 진했다. 나는 그 김치찌개를 따로도 먹고, 밥에도 비벼 먹고 아주 요란하게 즐겼다.


시간이 흘러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고, 회사를 그만뒀을 무렵, 나는 할머니 집에 다시 자주 가게 됐다. 할머니께서 몸이 안 좋으셨기도 하시고, 나도 할머니를 자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모들이 회사에서 늦게 올 때면 내가 일부러 같이 밥을 먹기도 하고, 맛있는 걸 사서 할머니랑 먹고 TV를 보다가 집에 가기도 했다. 할머니와 TV를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재미있었는지,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한동안 그랬었다. 할머니께서는 내게 또 김치찌개를 끓여 주셨는데, 여전히 너무나 맛있었다. 나는 할머니께 만드는 법 좀 알려달라고, 나도 집에 가서 해 먹고 싶다고 했다. 할머니께서는 다음에 또 할머니 집에 와서 먹으라며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결국 나는 김치찌개 레시피를 알아내지 못했고, 할머니표 김치찌개는 다시는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되어 버렸다.


그런 음식이 있다. 먹기만 해도 누군가 떠오르는 음식. 내게는 김치찌개가 그렇다. 다시는 먹을 수 없는 할머니표 김치찌개는 날 가끔 슬프게 만든다. 이번 생에선 못 먹겠지, 다음 생에는 먹을 수 있을지 확실하지도 않다. 그런 생각을 하면 세상의 많은 고민거리들이 사라진다. 삶, 죽음, 음식, 사람들, 산 사람들, 세상에 없는 사람들, 아주 작은 막으로 나뉘어져 있는 세상이고, 누구라도 그 막을 빼버리면 세상에 없을 수도 있다. 그런 찰나인 것이다. 음식엔 기쁨도 슬픔도 함께한다. 그래서 맛있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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