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텐텐 1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세핀 Oct 18. 2023

드라마큐라





 이 이야기는 한 평범한 흡혈귀에 관한 이야기다. '평범한'이라는 단어에 놀라셨다면, 이는 여러분이 흡혈귀를 떠올리면 바로 머리에 떠오르는 방금! 그! 이미지에 관한 것이고, 그게 맞다는 것이니 놀라지 마시기를 바란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어슬렁어슬렁 다니며 피 빨아먹을 사람이 어디 없나 살피던 초창기 흡혈귀와 달리 요즘 흡혈귀는 돈 주고 피를 사거나 아예 바이오산업에 투자해 유전자 조작으로 피를 만들어 내고 그걸 섭취하기도 한다. 영양제 하나로 하루 세끼를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흡혈귀의 주요 에너지원인 혈액이라고 그럴 일이 없을 리가 있을까. 그러니까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흡혈귀들도 많이 진화를 했다는 이야기다.

 이번에 만나는 이 흡혈귀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이 한반도에 똬리를 틀고 산지는 287년 정도 되었다. 그러니까 조선 정도 때부터 살았다는 말이다. 그때도 이 흡혈귀는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는 어슬렁어슬렁 다니면서 삶을 이어나갔다. 그때는 산짐승처럼 살았다더라. 사실 뭐... 식사라는 부분에서 크게 다를 건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는 흡혈귀로 변모하기 전 어엿한 인간이었다. 지금의 그는 '이도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살고 있다. 낮에는 자고 밤에는 야간 편의점 알바를 하면서.

 흡혈귀가 무슨 편의점 알바냐고? 그렇다. 2백 년이 넘게 살았는데 모은 돈이 없을까, 도대체 어디다가 다 쓴 것이야?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 그는 친한 흡혈귀에게 사기를 당해서 모은 돈을 모두 날리고 집 한 채만 남았다. 그렇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에서 집이 있다는 것은 잘 산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는 정말 집만 있다. 먹고 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오늘도 그는 야간에 편의점 알바를 한다. 그 친구를 찾아보는 건 어떻냐고 물으신다면, 그 친구는 아는 흡혈귀들의 돈을 들고 바닷가에 호텔을 짓겠다고 설쳤다가, 그 호텔을 짓기 위해 첫 삽을 뜨는 날 재가 되었다고 말씀드리겠다. 한 마디로 사라졌다.


 "우리 도윤 씨는 참 얼굴이 잘생겼긴 했어."


 항상 오는 사모님이 흡혈귀 이도윤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그가 돈이 없긴 하지만 그도 흡혈귀다. 사람을 꾀기 위한 기본적인 비주얼은 소유하고 있다. 때문에 이 편의점은 주간보다 야간에 손님이 더 많기로 유명한 편의점이다. 근처에 학원이 있는데 학원이 끝나면 모든 소녀들 그리고 때로는 소년들이 그의 얼굴을 보러 이 편의점에 꼭 들른다. 도윤은 그들의 관심이 싫지는 않았지만 사실 그 관심이 돈을 벌어주는 것은 아니니까라면서 가끔은 한숨을 쉬었다.

 스스로 햇빛으로 걸어 나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없는 존재이기에 쳇바퀴 도는 삶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는 꿈이라는 것이 생겼다. 바로 '드라마 작가'다. 야간 업무를 가기 전 그는 매일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보곤 한다. 예전에는 그 드라마에 나오는 사람들의 감정이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는데, 사극은 달랐다. 그는 사극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자신이 살던 시대를 추억하게 해주는 그 드라마를 보며 심지어 눈물도 흘렸다. 처음으로 사극을 본 날 그는 꿈에서 자신이 처음으로 사랑했던 여자까지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정해졌다. 그의 287년 인생의 꿈이.

 

 "드라마 작가요?"

 "어어."

 "갑자기 왜요?"

 "야. 옷소매 붉은 끝동 봤냐?"

 "... 아뇨."

 "야... 꼭 봐."

 

 야간 알바가 없는 날 후배가 도윤의 집으로 놀러 왔다. 도윤은 조심스럽게 그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드라마 작가 어떻게 되는 건데요?"

 "몰라. 공모전에 당선되어야 한다고 그러는 사람도 있고... 보조작가부터 시작하라는 사람도 있고."

 "동지들 중에 베스트셀러 소설가는 있었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얼굴 없는 작가로요."

 "그래에?"

 "한 번 써보세요. 뭐 겪은 일도 많으니까 형님은."

 "내 얘기를? 아휴 아냐. 내 얘기를 누가 보겠어."

 "혹시 모르죠."

 "그런가... 사실... 공모전 도전한 지는 꽤 됐거든."

 "그래요? 말씀도 안 하시니까 몰랐죠, 저는."

 "사실 5년 정도 됐는데에... 번번이 공모전에 떨어지니까 쪽팔려서 말을 못 했다."

 "5년이요? 에이 흡혈귀는 영생이잖아요. 더 해보세요."

 "그래야겠지...?"


 흡혈귀는 영생. 그의 지루한 287년의 삶. 이제야 조금 하고 싶은 것을 찾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빨리 이루고 싶었다. 자신의 드라마가 TV에, OTT에 나오는 것을 본다면 그 자리에서 가루가 되어 사라진 대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는 그만큼 간절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제작사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작품을 봤는데, 좋았다고 혹시 이번에 들어가는 사극 드라마의 보조작가로 일해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그는 앞뒤 생각도 하지 않고 좋다고 답했다. 여기서 앞뒤란 밤낮이다. 그에게는 낮이 없는데.

 그가 맡은 작품은 조선 정조 때의 나전칠기 장인에 관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길을 따르고 싶지 않아 고뇌하는 주인공 청년과 그의 앞에 나타난 앞 못 보는 나전칠기 신동에 관한 드라마였다. 가상의 인물이었지만 그가 살던 시대의 인물이라 그는 한없는 친밀감을 느꼈다.

 

 메인 작가도 야행성이라 주로 밤에만 일해서 좋기는 했는데, 가끔 낮에 일할 때도 있었다. 그는 매번 그때마다 양해를 구하고 방에 암막 커튼을 치고 재택근무를 했다. 그런 그가 고까울 법도 했지만 그 시대에 대해서 그처럼 생생하게 알고 있는 이가 없어 다들 기묘하게 생각했지만 용납해 주었다. 그러나 그도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때 후배가 솔깃한 아이템을 제안했다.

 후배는 목걸이 하나를 내밀었다. 홍콩에 있는 골동품 상점에서 목걸이를 구했다며 이 목걸이가 있으면 해가 난 대낮에도 걸어 다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윤은 의문스러웠지만 후배가 보여준 사진을 보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 목걸이를 한 후배가 휴양지의 한 바닷가에서 수영복을 입고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도윤은 한사코 거절했지만 후배는 괜찮다고 했다. 목숨을 구해준 은인에게 이 정도는 해줄 수 있다며. 다음 날부터 도윤은 목걸이를 걸고 햇빛을 만끽하며 출근했다. 같이 일하는 작가들이 이를 또 이상하게 여겼다.


 드라마 보조작가 일은 지금까지 그가 했던 그 어떤 일보다도 고됐다. 아침저녁 없이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으며, 별 것 아닌 것을 시키듯이 그에게 고된 일을 시키는 메인 작가는 드라마에 나오는 전형적인 유형과 똑같았다. 역시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의 꿈은 그에게서 잠을 빼앗아갔다. 가끔 같이 일하는 보조작가인 수영과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일이 그에게는 유일한 낙이었다.


 "배우를 해보실 생각은 없으셨어요? “

 도윤의 뛰어난 비주얼을 보고 수영이 말했다.

 “제가 쓴 드라마를 직접 보고 싶었거든요.”

 “아아...”

 “수영 씨는 왜...?”

 “저는 우리 할머니 때문에요.”

 “할머니...”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드라마 보는 걸 진짜 좋아하셨거든요. 세상의 모든 할머니들을 위해서 뭔가를 쓰고 싶어요.”

 

 수영의 포부에 도윤은 속으로 놀랐다. 그녀의 따뜻하고도 진지한 생각에 자신의 마음 가짐이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수영이 헤실하고 웃었다. 작업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표정이었다. 도윤도 후후하고 웃었다. 훈훈한 순간이 지나고 곧바로 그들은 메인 작가에 대한 욕을 시작했다.


 “그래도 얼마 안 남았어요. 온에어까지. 좀만 버텨 봐요. 수영 씨. “

 “그래요. 좀만... 우리 다 끝나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고기 먹어야지. “


 고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도윤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방송 날짜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그날 밤도 꼬박 새우고 다음 회차 대본을 위해 달리고 있었다. 메인 작가는 새벽 3시쯤에 들어가서 자고, 도윤과 수영이 남아 대본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8시에 일어날 메인 작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대본을 만들어야 했다. 벌써 사흘 째 잠을 자지 못했다. 도윤은 몰래 챙겨 온 혈액까지 모두 마셔 배까지 고팠다. 수영은 자신의 분량을 마치고 잠깐 눈을 붙이러 갔고, 도윤이 혼자 남아눈을 부릅뜨고 대본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그도 전자기기가 꺼지듯이 컴퓨터 앞에 쓰러졌다.


 꿈에서 그는 허기로 인해 극도로 예민해진 후각을 이용해 먹이를 찾고 있었다. 이리저리 숲을 헤매다가 도시를 헤매고 과거에 살던 곳까지 뛰어다녔지만 어떠한 생명체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이곳에 없었다. 그는 주린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컴퓨터 앞에서 잠들었다가 깬 그의 눈앞에 수영의 목덜미가 보였다.



 그리고

 눈 깜짝할 새에

 콱.



 수영이 악 소리를 냈다. 다행히 세게 물기 전에 정신을 차린 도윤이 이빨을 숨겼고, 수영이 그제야 모든 게

이해된다는 듯 눈이 동그래져서 그를 보았다. 도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지금까지 어떤 도망보다도 온 힘을 다해서 그는 달리고 있었다. 후배가 준 목걸이는 낮에 해를 볼 수는 있게 해 줬지만 흡혈귀의 본능은 잠재울 수 없었나 보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자기 자신이 저지른 짓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었다. 그 자리에서 목걸이를 빼버리고도 싶었지만, 주위에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그는 집으로 숨어 들어갔다. 자신의 관으로 들어간 그는 계속 후회했다. 꿈같은 건 가지지 말 걸. 괜히 꿈같은 걸 가져서 평범한 삶을 꿈꾸었다. 그리고 결국 누군가를 상처 주었다는 생각에 자면서도 몸을 계속 뒤척였다.

 제작사 측에는 이민을 가게 되었다고 말을 얼버무리고 그는 집에 갇혀 있었다. 야간 알바도 그만둔 판이니 밖에 나갈 일은 전혀 없었다. 그는 미리 쌓아둔 피들로 연명하다가 죽기로 결심했다. 마지막으로 사람을 문지 250년이 훨씬 지났는데, 자꾸 어제의 생각이 났다. 사실 누군가를 물 때는 묘한 쾌감이 있다. 다른 사람이 알면 징그럽고 불쾌해서 말은 안 하지만 자꾸 생각나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를 물까 겁났다. 그래서 약 보름 후에, 그는 죽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죽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그가 수영을 문지 벌써 사흘이 지났다. 누군가 도윤의 집 문을 두드렸다. 올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현관문을 확인한 도윤은 놀랐다. 수영이었다. 


 "수영 씨?"

 "문 열어 봐요."

 "안 돼요."

 "잠깐이면 돼요."


 그녀의 말에 그가 마스크를 끼고 문을 열었다. 그녀가 별꼴이라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도윤은 수영을 집 안으로 들일 생각이 없었다. 


 "여기서 말씀하시죠."

 "하... 근데요. 사과가 먼저 아닌가? 도망을 가요?"

 "죄송합니다..."


 수영의 호통에 기가 죽은 도윤이 눈을 질끈 감고 사과했다. 


 "할 말이 있어서 왔어요."

 "뭔데요? 저 이제 안 해요. 드라마 작가 같은 거..."

 "저랑 같이 써요."


 여전히 어정쩡하게 현관문을 지탱하고 서 있는 도윤의 눈이 커졌다.


 "내가 뭔지 몰라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게 왜 안 중요해요?"

 "나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도윤 씨, 써보자고요! 당신 얘기. 얼마나 재밌겠어요.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은 드라큘라. 드라마큐라!"

 "당신 미쳤어요?"

 "생각 좀 해 봐요. 나는 재밌을 거 같아."

 "나 누군지 알잖아요. 내가 어떤... 아니 나는 당신을 물었다고."

 "우리 집 개도 매일 나를 물어요."

 "아니 그런 게 아니잖아요..."

 "당신 얘기될 것 같아요. 좋은 드라마가. 같이 써봐요."

 "왜 그래요? 진짜?"

 "나도 데뷔하고 싶으니까!! 나도 이제 저 마귀할멈 밑에서 일 못하겠으니까!!"


 놀란 드라마큐라 도윤의 표정에서. (끝)




이전 14화 초능력 뽑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