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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l 08. 2024

자연스레 정해진 역할

출산 후 지난 3달간 아이를 혼자 돌보다시피 한 아내는 이미 아이와 충분한 교감이 형성 돼있었습니다. 아이 기분 변화에 세밀한 부분까지 캐치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같이 있었으면 그럴 만도 했습니다. 이런 아내가 참 대단해 보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습니다. '엄마'로써의 소임을 벌써 충실히 해내고 있었거든요.



반면에 저는 어땠을까요? 미숙한 점이 너무 많아 일단 아내에게 아이 돌보는 방법을 다시 배워나갔습니다. '각자의 양육 스타일이 있는 거야'라는 거지 같은 주장 하에 제 마음대로 아이를 돌봤던 방법들을 하나씩 고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편안하게 안아주는 방법, 목욕시키는 방법, 분유를 얼마나 타는지 어떻게 먹이는지 사소한 것부터 디테일한 것까지 조언을 받다 보니 제게 미숙한 부분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었습니다. 사실 디테일한 부분은 아직도 긴가민가할 때가 있습니다.



아이를 돌보며 제가 가장 크게 놓쳤던 부분은 '아이의 감정을 살피는 육아'를 진작부터 행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눈앞에 놓인 당장의 일들에 대해서만 집중했지 정작 아이 감정을 살피는 일에는 큰 관심이 없었거든요. 육아를 하게 되면 할 일이 평소보다 엄청 많아집니다. ‘청소하고 다음에 빨래 돌려야 돼’ 이런 류의 압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는 아이는 저와 있을 때 그렇게 칭얼대고 울어댔습니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스케줄에 따라 일처리 하는 걸 좋아하는 성향이나 그건 어디까지나 제 스타일이지 양육과는 전혀 별개인 상황이었습니다. 육아는 계획대로 되는 법이 정말 하나도 없습니다. 변수가 너무 많아서 항상 계획은 그저 계획에 불과한 날이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계획은 항상 거창하게 세웠지만요.) 이 부분에 스트레스도 은근히 무시할 수는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조금 더 계획적이고 효율적으로 육아하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고민해 봤습니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육아 외 다른 일에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집안 청소나, 요리, 빨래라던지 기타 등등이요. 육아를 하면서 여러 일을 동시에 해내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이 부분에 집중해서 아이 양육에는 조금 서투르지만 다른 면에서 양육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제 결론은 ‘역할 분담’이었어요.



아이 다루는데 저보다 훨씬 능숙한 아내가 주로 양육을 담당하게 되고 저는 그 외의 것들에 집중하는 것으로 역할이 자연스레 정해졌습니다. (물론 아내가 많은 배려를 해준 덕분입니다.) 예를 들어 집안 청소, 장보기, 식사 준비, 세탁 등을 도맡아서 양육을 지원하는 형태 말입니다. 상대적으로 쉬워 보이시나요? 저는 해보니까 하루 후딱 가더라고요. 블로그에 나오는 요리 레시피 훑어보면서 음식을 만들어주거나 유튜브에서 청소하는 방법 영상을 보고 과탄산, 베이킹 소다 구입해서 화장실, 창틀도 닦아보기도 하면서 집 안을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한두 번 하는 건 좋은 경험인데 매일 매주 하니까 집안일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제가 진짜 가정주부가 된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침 먹고 나면 점심은 어찌나 그렇게 빨리 돌아오는지 말입니다. 장보기도 주로 제가 하다 보니 시장 물가에 민감한 저를 발견하곤 했습니다. ‘오늘은 애호박이 이천 원이나 하네, 여기는 청양고추가 왜 이렇게 비싸냐’ 하면서 툴툴대던가 세일로 딸기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한 날은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던지 하는 식으로요.



시간이 흐르면서 저희는 각자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아내는 아이 돌보는 것을 저보다 훨씬 잘하는 사람이었고, 저는 아내보다 요리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뛰어난 부분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잖아요. 부부의 역할 또한 이와 같다고 봅니다. 아빠가 엄마보다 오히려 아이를 더 섬세하게 돌볼 수도 있고, 엄마도 아빠 못지않게 몸을 부딪히며 신나게 놀아줄 수 있어요. 각자 달란트가 있는 부분을 찾아보고 역할을 나누어 육아에 임해 보세요. 시간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습니다. 물론 그전에 부부간의 합의가 선행되어야 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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