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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l 10. 2024

난생 처음 아내에게 소리 질렀다

이 정도 읽어 내려가셨으면 부부가 함께 육아휴직하는 상상 한번쯤은 해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떨 것 같으세요? ‘아무래도 사람이 둘이나 있으니까 육아의 강도는 조금 덜하지 않을까? 혼자 독박육아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지? 나름 즐거운 추억 많이 쌓고 있겠다.’ 이런 생각들 하시는 분 계실 것 같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답변도 공무원스럽죠.



일단 양육에 대해 아빠와 엄마의 가치관이 다를 수 있어 하루 종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서 다툼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합니다. 뭐 치고받고 싸운다는 건 아니고 언쟁의 정도가 굉장히 빈번해진다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24시간 붙어있으니까요. 말도 안 되는 정말 사소한 걸로도 싸웁니다. 화해 속도도 그만큼 빠르긴 하지만요.



아이 없이 부부가 회사를 다니며 맞벌이하던 시기엔 싸울 일 자체가 전혀 없었습니다. 신혼이기도 했고 종일 회사에 있다 보니 아침과 늦은 밤에 보는 정도가 전부여서 실질적으로 함께하는 시간 자체가 적기도 했고요, 신혼인데 싸울 시간이 뭐 어딨겠습니까. 서로 간에 배려도 많이 해줘서 웬만해서는 싸울 일 자체가 거의 없었습니다. (방귀도 베란다 가서 뀌는 아내였으니 말 다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부부 모두 육아휴직을 하면서 상황이 180도 변했습니다. 24시간을 함께하면서 말싸움을 할 확률 또한 당연히 높아졌습니다. 보통 저희가 의견이 부딪히는 경우 일정 시간은 서로 시간을 두고 생각을 정리한 후 화해하는 흐름이 있었는데,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거운 공기가 집안 전체에 내려앉은 분위기에서 육아하는 겁니다. 진짜 불편하고 어렵습니다.



종종 말다툼을 하기도 했지만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화해하면서 그렇게 하루씩 흘러가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육아는 아이템 빨’이라는 말 어디서 들어본 적 있으시죠? 갖고 있는 육아템이 많을수록 육아는 훨씬 더 수월해집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필요한 육아용품들이 추가로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분유나 기저귀를 제외한 그 외의 것들 말입니다. 육아용품을 구입할 때는 아이에게는 미안하지만 한 두 번의 고민은 꼭 하고 사주는 편이었습니다. 휴직 중이어서 돈이 빠듯하기도 했고 쥐똥만 한 이 돈 가지고 무턱대고 사제 끼다간 잔고가 바닥을 보일 게 뻔했으니까요.



어느 날이었을까요. 아이가 코감기에 걸려서 코막힘으로 잠을 제대로 못 이루는 날이 이어졌습니다. 이런 경우 아이도 힘들고 부모도 힘듭니다. 밤새 모두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최악의 상황이 다가오거든요. 부모는 코를 혼자서 풀지 못하는 아이를 대신해 콧물을 제거해 주는 등의 노력을 다하는데 여기서 사건의 발단이 시작됐습니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그 유명한 ‘콧물흡입기’ 제품 당연히 알고 계실 거예요. 모르셔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구비해 놓으면 좋았을 법한 제품을 저희는 초기부터 구비를 해놓지는 않았습니다. 시중에서 10만 원 대 후반 정도에 불과한 제품이었는데도요. 그냥 제가 구입을 원하지 않았어요. 고정된 수입 안에서는 큰 지출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다른 물건도 살 게 많으니 차일피일 미뤄뒀습니다.



아내는 진작부터 미리 구입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는데 제가 못 들은 척 넘어가기 일쑤였습니다. 그래서 항상 면봉을 이용해서 콧물을 제거해 주는 방법을 사용하곤 했어요. 여하튼 그날은 아이의 코막힘이 너무 심해 다음 날 아침까지도 모두가 힘들었습니다. 특히 아내가 더 힘들었고요.     



말싸움의 시작은 누군가 던진 별거 아닌 한마디에 불이 붙게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진작에 사자고 했잖아.” 별 것도 아닌 이 말에 저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진짜 고래고래 아내에게 소리 질렀습니다. 아내 앞에서는 맹세코 난생처음입니다. “나도 사주고 싶다고! 돈이 없는데 어떻게 해?!” 라면서 노발대발했습니다. 소리치는 제 자신에게 놀랐습니다.



돈에 대한 압박 때문일까요? 아니면 돈에 대한 압박 때문이었을까요? 네. 정답입니다. 제품에 돈을 쓰는 게 아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정부에서는 아이 잘 양육하라고 일정 기간 수당을 지원해 줍니다. “내가 준 돈으로 아이 열심히 보살펴” 이런 취지로요. 근데 돈 아깝다고 안 사주겠다던 제 심보가 참 놀부 심보였더라고요.   



그다음에 어떻게 됐을까요? 아내는 저와 싸웠건 말건 해당 제품 그냥 사버렸습니다. 결국엔 좋은 결정이었어요. 아이 콧물도 손쉽게 제거할 수 있었고, 부부는 그 이후 편안하게 잠도 청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도 어쭙잖은 사과를 당연히 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래서 아내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건지 싶었습니다. 당시 구입한 콧물흡입기는 지금까지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아이 콧물흡입기로 제 콧물을 제거하기도 하니까요. (그냥 코가 뻥 뚫리던데요.)



부부가 육아휴직을 하며 24시간 함께 있다 보면 좋기도 하지만 반대로 마찰이 생길 확률도 꽤 높아집니다. 감정이 있는 동물인데 당연하죠. 육아휴직을 통해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왜 이럴까?' 라기보다 '그래 이 사람은 원래 그런가 보다' 하는 게 마음이 더 편안해지기도 합니다.



서로에게 아쉬움이 있는 날은 커피 한잔 마시라고 강제로 내보내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친구 만나고 오라고  제안하기도 하고요. 아이와 잠시 떨어져 있어도 걱정 없습니다. 다른 양육자인 배우자가 아이 옆에 딱 붙어있잖아요. 뭐든 괜찮습니다. 서로 간에 신뢰 없이 해내기 어려운 것이 바로 육아입니다. 서로를 많이 배려하고 깊이 이해하는 만큼 육아휴직은 더욱더 빛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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