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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l 13. 2024

어쩌다, 미니멀리스트

2023년 3분기가 되자 가계의 수입에 변화가 생길 조짐이 보였습니다. 저보다 먼저 육아휴직에 들어온 아내의 급여가 9월부터는 중지될 예정이었거든요. 참고로 공무원은 육아휴직 기간 중 딱 1년 간만 급여를 지급합니다. 어찌 됐건 휴직 중 가계 수입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수입원 하나가 사라지면서 가계 재정에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육아휴직 중 저희에게는 어떤 수입원들이 있었을까요? 회사에게 지급되는 기본급에 정부에서 주는 육아수당(부모급여+아동수당) 그리고 육아 대비 적금 이렇게 3개의 수입으로 가계를 꾸려왔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기본급 255만 원(127만 5천 원*2명)에 양육비 80만 원(부모급여 70만 원과 아동수당 10만 원) 마지막으로 잔고가 바닥을 보이는 적금 나머지 얼마 정도가 수입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중 기본급이 절반만 나오는 상황이 닥쳐온 겁니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이렇게 피부로 와닿으니 솔직히 걱정은 됐습니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저희는 어떤 해결 방안을 찾아봤을까요? 남편의 복직? 아내의 복직? 은 전혀 아니고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습니다. 일단 집안에 있는 물건들을 하나둘씩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훑어보니 사용은 안 하는데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이 꽤나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이런 쓸만한 물건을 되팔아 가계 수입에 보탰습니다. 플스도 팔고요, 카메라도 팔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죄다 갖다 팔았습니다.



판매는 중고 플랫폼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모두가 아시는 그 당근마켓을 활용해서요. 이 과정에서 구매 유도를 위한 몇 가지 팁도 몇 가지 터득하게 되더라고요. 그중 하나는 ‘보기 좋은 것이 먹기에도 좋다’라는 말 있죠. 똑같은 물건을 팔아도 어떻게 사진을 찍느냐에 따라서 수요가 달랐습니다. 구도를 정해서 제대로 촬영하고 올리니 막 찍어서 올리는 것보다 판매가 잘 됐습니다. 어떤 시간에 물건을 올려야 찜도 많이 받고 판매도 잘되는지 조금씩 알겠더라고요. 예를 들어 유아용품의 경우 제 경험 상 엄마가 아이를 재우고 난 시점 21~2시 사이에 올리면 판매가 곧 잘 되곤 했습니다.



구매자와 대화를 하면서 판매 수완도 조금씩 늘어났습니다. 질문이 많은 사람은 구매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고 어떤 때 네고를 하는지 끼워 팔 기는 어떻게 하는지 그렇게 하나씩 팔다 보니 제가 살짝 장사꾼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돈이 들어오니까 재미도 붙었습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은 다시 아이에게 필요한 육아용품을 구입하고 나눔도 받는 형식으로 중고 플랫폼을 정말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육아용품이 저렴하게 나오면 낮밤 가릴 거 없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그렇게 득템 한 날에는 별거 아닌데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특히 기저귀 싸게 샀을 때 기분 최고였습니다.)



물건을 팔고 구입하고 나눔 받고를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만렙을 찍었습니다. 맞아요. 당근 매너온도 99도를 찍게 됩니다. 컴퓨터 게임을 할 때도 만렙 찍은 적 한 번도 없는데 먹고살려고 하다 보니 중고플랫폼에서 만렙을 달성하게 됐습니다. 웃프죠? 이렇게 자잘하게 현금화시킨 얼마 되지 않은 금액들이 당시에는 저희 부부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됐습니다.



한편, 냉장고 안도 미니멀하게 꾸몄습니다. 냉장고를 정말 열심히 파먹었어요. 집안에 있는 재료 하나가 보이면 이걸로 어떤 요리를 할 수 있을지 블로그 찾아보고 요리를 만들어 식사를 해결했습니다. 덕분에 하나의 재료를 가지고 여러 가지로 응용할 수 있는 방법도 알게 됐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돼지고기 목살을 엊저녁에 구워 먹었다고 가정해 볼게요. 둘이 먹기에는 양이 조금 많아서 몇 덩이가 남았습니다. 그럼 다음 날에는 남은 고기를 활용해서 김치찌개를 만듭니다. 이런 방식으로 한 끼 한 끼 해 먹었습니다.(사골곰탕 팩은 정말 활용도가 최강입니다.)



육아휴직을 하면서 저희 부부는 ‘미니멀 리스트’가 됐습니다. 필요한 물건이 있다면 중고마켓에는 없는지 확인하고 새 제품을 구입할 때는 장바구니에 담아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고민하고 장을 볼 때는 구입품목을 미리 스마트폰 메모장에 적어 정해진 재료만 가진 한도 내에서 구입을 합니다. 필요 없는 물건은 중고플랫폼을 이용해 재판매하는 습관도 생겼습니다. 더 알뜰살뜰 해졌다고나 할까요. '수입원이 없는데 어떻게 해?'라고 푸념하기보다 방법을 찾아가면서 성장한 느낌도 들고요. '방법이 없네, 어쩌지?'라고 무심코 내뱉은 말 주변에는 늘 해결방안이 "여기 보세요." 하면서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못 보고 지나칠 뿐이죠.



육아휴직으로 얻을 수 있는 건 정말 무궁무진합니다. 여러분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뿐만아니라, 부모가 아닌 '나'로써의 재능을 발굴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되기도 하니까요.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많은데 잠시 쉬어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돈에 너무 얽매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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