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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l 14. 2024

나를 아빠라고 처음 부른 날

옹알이만 해대던 아이가 생후 5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엄마”라는 단어를 내뱉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는 “음마”라고 말했었어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맘마/까까/응/네"와 같은 단어들도 어디서 들었는지 하나씩 말하는 아이가 정말 신기하고 대견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내뱉는 수많은 단어 중에도 정작 제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단어는 쉽게 들리지 않았더라고요. 세상의 모든 아빠가 아이에게 듣고 싶어 하는 말. '아빠'라는 단어 말입니다.



제 아무리 신나게 놀아줘도 제 입으로 아무리 '아. 빠.'라고 수백 번 말해줘도 아이는 쉽게 그 단어를 입 밖으로 내지 않았습니다. 해줄 것 같다가도 "아니야" 하기 일쑤였거든요. 저와 신나게 놀다가 “엄마”하면서 아내에게 달려가 안길 때는 어찌나 부럽던지 아빠이기 전에 저도 사람인지라 내심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아빠라고 한번 불러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까?’ 하면서 그 언젠가를 꿈꾸며 하루이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 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이가 실컷 혼자 놀다가 “아파”라고 말하더라고요. 워낙 호기심이 많아 집 안 이곳저곳을 탐색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라 종종 팔다리 같은 곳에 멍이 들곤 했는데, 이번에도 어디 부딪혔나 보다 하면서 봤더니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였습니다.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아서 괜찮은가 보다 그러려니 했습니다.     



“우리 딸, 어디가 아파?”라고 물어봤더니 다시 “아파, 아파” 합니다. 어디가 아픈 거지 하면서 이리저리 다시 둘러봐도 괜찮아 보이더라고요. 그 순간에 머릿속을 스쳐간 한 단어. 맞아요. 저희 딸아이가 제게 처음으로 ‘아빠’라고 불러준 겁니다. 우문현답으로 어디가 아픈지 물어만 봤던 제가 바보천치죠. 그때의 느낌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요?



중고등학교 시절 문학 시간에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 접해본 적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조금 오버하면 아이가 제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저는 꽃이 되었습니다. 절로 함박웃음이 피어나더라고요. 일전에 아내가 아이가 “아빠”라고 말하기 시작했다고 하긴 했었는데 정작 아이의 음성으로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기도 했습니다. 저희 아이는 한번 익힌 말은 한동안 계속하는 습관이 있어요. 그날 이후로 골백번이 넘게 아빠라는 말을 쉴 새 없이 들었네요.



어떤 날은 엄마보다 아빠를 더 많이 불러주는 날도 있었는데, 그런 날은 뭔가 어깨도 으쓱해졌습니다. 이제 아내가 주말에 외출을 나가도 사실 엄마를 엄청나게 찾지는 않아요. 딸아이가 제 마음을 알아줬는지 아빠와 다이내믹하게 노는 게 신나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분명한 것은 아이와 제가 더욱더 깊은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육아휴직을 해서 더 빠르게 아빠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이런 소리는 하려는 건 아니고, 바쁜 아침과 늦은 저녁이 아닌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시며 여유 있는 오후의 어느 날에 듣게 되는 "아빠"라는 소리와 어린이집이 마치는 시간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아빠"하면서 달려오는 아이의 활기찬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도 꽤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는 아마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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