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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l 16. 2024

돈이 똑 떨어졌다

2024년 ‘푸른 용의 해’ 갑진년이 찾아왔습니다. 복직을 미루면서 심적인 부담감은 꽤나 덜어냈고 가벼운 마음으로 새 출발을 할 계기도 마련됐습니다. 일단 아이와 더욱더 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기뻤고 이와 함께 아내와 함께 육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기대감도 더해졌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는 손에 무르익은 육아였으니까요.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운데 한 가지 걸리는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역시나 ‘돈’입니다. 그놈의 돈. 2023년 9월을 기점으로 아내는 월급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고, 제 경우 2023년 12월까지만 월급이 나오는 상황이어서 향후 복직 전까지 6개월 간의 수입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처음 육아휴직을 계획했을 때의 대전제 역시 ‘1년만 육아휴직 한다’라는 생각으로 휴직에 임했기에 이후 연장한 육아휴직에 대한 계획은 일절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습니다. 충동적인 선택이었을까요? 저의 오판이었을까요?



어찌 됐건 가계를 책임지는 살림꾼이다 보니 당장 어떤 돈을 가용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들어갔습니다. 일단 쥐꼬리만 한 기본급으로 알뜰살뜰 살아오면서 그래도 나름 모아둔 푼돈과 보유한 주식 일부를 매도하면 가계 운영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실제로 매도는 많이 안 했습니.) 육아휴직을 연장하게 된 건 저 혼자만의 갑작스러운 선택이었기에 그냥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고 정 안되면 복직하자 이런 심산도 당연히 있었고요. 일단 “못 먹어도 고” 한번 외쳐본 거죠.



고민에 고민을 더하다 보니 최후의 보루로 한동안 손대지 않았던 '마이너스 통장'까지 다시 손댈 수도 있다는 부분까지 염두에 두게 됩니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요.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고 개략적인 계획을 세웠습니다. ‘뭐든지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라는 말 있죠. 역시나 진짜였습니다. 짠돌이 짠순이인 저희가 더 알뜰하게 살아가려고 하니까 그게 또 아껴졌습니다. 막 촛불 켜놓고 생활하는 그런 건 아니고, 불필요한 지출 최대한 지양하고 꼭 필요한 것들만 사는 것으로 생활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의 경우 기존에 사용하던 알뜰폰에서 더 좋은 조건의 알뜰폰 요금제를 찾아서 바꾸기도 하고요, 저 같은 경우 집에 꽂혀있는 책이나 물건들을 중고플랫폼에 직접 판매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방법을 많이 시도해 봤습니다. (혼자서 돈 벌기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자영업자 분들 정말 대단합니다.) 장모님과 어머니께서 주시는 반찬도 알뜰살뜰 챙겨 먹었습니다. 이따금 필요한 거 없는지 물어보시면 저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장조림, 달걀 이런 것도 철판 깔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잊어버릴까 봐 저는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해두기도 했어요. 결론적으로 보너스 육아휴직 기간은 정말 타이트하게 가계를 운영했습니다.



다행히도 아기 물품 구입비 그리고 식비 외에는 따로 지출할 거리가 크게 많이 생기진 않았습니다. 출근할 일이 없으니 옷을 새로 구입할 일도 없었고, 집은 밥에서 해 먹으면 되고 교통비 같은 것도 걱정할 필요 없었으니까요. 이런 부분만 줄여도 어느 정도 유지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실제로 유지는 안 됐지만요.) 아이를 위한 지원은 아끼지 않는 선에서 저희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아끼면서 생활한 거죠. 사람 사는 거 사실 별 거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비교만 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진정한 행복이니까요.



돈이 똑 떨어졌던 2024년 1월이 저는 오히려 행복했습니다. 월급과 육아휴직을 맞바꾼 격인데 후회는 제 가슴에 손을 얹고 단 한 번도 한적 없습니다. 6개월 정도는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근자감도 있었고 저는 퇴사를 한 것도 아니고 단지 휴직을 연장했을 뿐이니까요. 6년 아니고 길어봤자 6개월이었는데요 뭐. 이 정도의 시간은 돈과 충분히 맞바꿀 수 있다고 정신 승리를 이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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