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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l 17. 2024

아이가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2022년 말 아이의 '구순열 수술' 이후 큰 병원에 드나드는 일은 한동안 없었습니다. 수술도 무사히 마쳤고 회복도 원만히 이루어지는 상황이었으며 보통의 아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잔병치레도 덜한 편이어서 이제 건강하게 자라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술 이후 딸아이가 더욱 강해진 건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씩씩하게 자라줬습니다. 지난 일 년 간 검진을 위한 병원 방문을 제외하고 소아과도 한두 번 간 게 전부였던 아이였으니 ‘우리 아이 정말 건강하구나’ 싶었습니다.



종일 아이의 회복에 집중하던 아내도 조금씩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가고 있었습니다. 단지 내 또래 엄마를 만나 수다도 떨고 가끔씩 외출도 하면서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내가 일정이 있어 아이와 단둘이 함께 있는 날이었습니다. 이제 혼자서도 아이를 어느 정도 돌볼 수 있는 시기여서 크게 불안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떻게 놀아줄까?' 이런 생각을 했을 뿐이죠.



아이와 저녁도 맛있게 먹고 신나게 놀아주고 목욕도 말끔히 시키면서 함께 잠자리에 누웠습니다. 조금 뒤척이다가 아이가 이내 잠들면서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적인 하루 이렇게 무사히 끝나는구나 했습니다. 아이가 깊은 잠에 들 때즈음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광색 식탁 조명 아래 오늘은 어떤 하루 보냈는지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하고 있을 찰나 방에서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들어가 보니 아이가 먹었던 것을 다 이불에 게워내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일단 놀랐을 아이가 걱정돼 괜찮다고 다독여주며 진정시켰습니다. 바로 몸도 씻기고 이부자리도 갈아줬습니다. 평소에 가끔은 이랬던 적이 있긴 했으니까요. 얼마가 지났을까요. 뒤척이던 아이가 다시 구토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게워내고 또 게워내고 그렇게 밤새 댓 번 넘게 게워낸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중에는 아이 입에서 게워낼 것이 없어서 신물 같은 게 나오더라고요. 마셨던 물도 토하는 상황이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난생처음 겪어보는 상황이어서 저희 모두 굉장히 놀라고 당황했습니다. 말도 안 통하니 어디가 아픈지 바로 알아주지 못해 미안했고 바로 응급실에 데려가지 못한 미흡한 결정에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다가 저희 부부는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아이를 소아과로 데려가게 됐습니다. 요새 아이 소아과 데리고 가면 대기시간 엄청나잖아요. 그렇게 긴 시간 기다림 끝에 의사 선생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진찰하시고는 저희 아이가 ‘장염’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른에게는 어찌 보면 이따금 찾아오는 장염이라는 것이 아이에게는 정말 치명적인 질환일 수 있다는 걸 저는 이날 처음 알았습니다. 3세 이하의 아이는 아직 충분한 면역력이 형성되지 않아 모든 면에서 취약하니까요. 물도 구토를 하더라도 계속 마시게 했어야 탈수 증세가 없었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완벽한 오판이었습니다.



탈수 증세가 심한 상황이어서 수액을 맞기 위해 수액실로 이동했습니다. 이 녀석은 목을 가눌 힘도 없어 보였습니다. 혈관에 주사 바늘을 꽂으려고 하니 아이가 밤새 구토를 한 탓에 몸에 수분이 없어 혈관 잘 보이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네댓 번 찔러도 쉽게 혈관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 아이는 계속되는 주삿바늘에 울어대고 지쳐가고요. 탈수 증세는 더 심해졌었겠죠. 완전 패닉 상태였습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큰 병원으로 이동해야겠다는 정말 늦은 결정을 내렸습니다. 혈관이 잡힐 때까지 계속 있을 수도 없고 지쳐 보이는 아이를 얼른 살려야겠다는 의지만 남았습니다. (아내의 결단이 없었다면 아이에게 더 힘든 상황이 찾아왔을 겁니다.) 의사 선생님 진단서를 받아서 급하게 부천에 있는 순천향대병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가는 내내 아이는 힘이 없어서 축 처져 있고 비가 몹시 세차게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응급실을 생애 두 번째로 방문하게 됐습니다. 매번 와도 달갑지 않은 곳입니다. 아이는 바로 아내와 소아병동 응급실로 이동해 혈관을 찾아 수액을 맞을 수 있었습니다. (큰 병원은 아기 환자를 대상으로 혈관을 잡기 위해 '미세 바늘 주사'라는 걸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진작에 왔어야 했습니다. 많은 시간 동안 아이의 고통과 아픔을 방관한 것 같아서 정말 미안했습니다. 말도 못 하는 딸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아이는 거의 3~4일 정도 입원해서 치료받았습니다. 면회 갈 때마다 점차 회복되는 딸을 보니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졌습니다. 이렇게 아이는 태어난 지 2년이 채 안된 시점에 두 번이나 큰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 이력을 갖게 됐습니다. 제가 조금 더 빠른 결정을 내렸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시기에 저희 모두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두어 달 지난 어느 날에는 열이나 병원을 찾았더니 '중이염' 정도가 심하다고 해서 추가로 한번 더 동네 병원에 입원을 하기도 했네요. 정말 종 잡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저희 부부 모두 회사에 복직하게 됐을 때 이런 일이 당연히 생기겠죠? 그래도 경험한 바가 있고 배운 게 있으니 조금 더 빠른 결정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꼭 경험하고 나서야 세상은 저희에게 정답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미리 알려주면 더 좋았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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