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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l 15. 2024

회사로 돌아갈 시간

2023년 1월 당차게 시작한 아내와의 공동 육아휴직도 어느덧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회사에는 육아휴직을 1년 간 사용하는 것으로 신청했기 때문에 다음 해 2024년 1월이면 복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사실 월급도 딱 1년만 나오기 때문에 이 기간만 딱 채우고 복직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내의 경우에는 다소 긴 기간 육아휴직을 사용했지만 그럼에도 복직은 조금 더 무리해서 6개월 연장하는 것으로 내부 결정을 내렸습니다. 다음 해에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할 예정이어서 적응 기간 동안은 부모가 아이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살피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거든요. 혹시나 아이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지 못했을 경우의 수가 생길 수 있었으니까요.



그간 아내와 함께 육아를 하면서 수술 이후 딸아이의 원활한 회복을 지원했고 아이와 친밀도도 꽤 높였으며 요리라는 새로운 재능도 발견했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인생 계획도 다시 한번 설계해 보며 기념비적인 추억도 많이 쌓았습니다. 늦가을이 찾아오고 슬슬 찬 공기가 불어대기 시작하니 이런 시간도 머지않았구나 싶었습니다. 사실 뚜렷한 성과를 냈다거나 한건 없었는데 시간은 속절없이 쏜살같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직장인들 왜 주중에 회사에 있는 시간은 그렇게 안 가다가도 주말만 되면 순식간에 시간이 흘러가잖아요. 표현하자면 마치 저런 기분이었습니다. 2023년의 늦가을은 뿌듯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밀려오는 시기였어요. (아쉬운 면이 사실 더 컸습니다.) 인생을 이렇게 마음대로 살아본 적은 대학 입학 전 그리고 공무원 합격 이후 주어진 얼마의 시간 정도가 전부였는데 이렇게 세 번째 자유로운 시간도 내 인생에서 지나가는구나 싶었습니다.



번외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회사에서는 정기적으로 휴직 중인 직원들에게 몇몇 안내사항을 문자 메시지로 전달합니다. 예를 들면 휴직자 복무점검을 하기도 하고요 복직 관련 수요 조사를 하기도 합니다. 저도 언제쯤 복직 관련 내용이 전달될까 궁금했지만 따로 회사에 물어보진 않았습니다. 굳이 연락하고 싶진 않으니까요.


    

2023년 11월의 어느 날, 문자 메시지 한통이 도착했습니다. 제목이 아마 ‘정기인사 복직 안내’ 이런 거였을 거예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며칠의 시간을 줄게. 복직할 건지 안 할 건지 알려줘’ (이런 젠장.)  문자를 받자마자 제일 먼저든 생각은 복직에 대한 두려움 이상으로 아쉬움이 컸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없었다는 건 당연히 거짓말입니다. 사람인데 왜 안 두렵겠어요.)



핸드폰 사진첩을 보니 아이와 이것저것 많이 한 것 같기는 한데 제 기준에 또렷이 남는 뭔가가 없었습니다. 만족이 안 되더라고요. 이에 더해서 사실 저도 딸아이가 어린이집 등원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습니다. 사회라는 곳에 새롭게 발 디딜 아이의 모습이 너무 궁금했고 적응하는지 옆에서 지켜보고 싶었습니다. 기왕 아이가 제게 선사한 소중한 시간 조금 더 연장해 보면 어떨까 혼자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휴직 연장하고 싶다고 하면 아내는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정말 궁금했습니다.


     

혹시 ‘행동 경제학’이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인간이 언제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선택을 한다는 경제학의 이론과는 다르게 실제로 인간은 심리, 사회, 감정을 담아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는 의미의 '행동 경제학' 말입니다. 부합하지는 않으나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에 끼워 맞춰보자면 합리적으로 회사에 복직해서 다시 가계의 수입에 보탬이 되는 게 이상적인 선택이었겠지만 저는 위에서 말한 행동 경제학과 같이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그래서 휴직을 연장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내는 어떤 반응이었을까요? 솔직히 좀 긴장됐습니다. 버럭 화를 낼 수도 있고, 가정에 책임감 없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일단 칼은 뽑았으니 무라도 베어봅니다. "여보, 나 육아휴직 6개월만 더 하면 안 될까?" 아내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라며 쿨하게 괜찮다고 말해줬습니다. 결재권자의 승인이 정말 쉽게 떨어지는 순간입니다.



묻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과연 어떤 마음이었는지. 그런 결정을 어떻게 쉽게 내릴 수 있었는지 말입니다. '남편에 대한 신뢰' 였을까요? 아니면 복직을 앞두고 흔들리는 제 눈동자를 보았기 때문일까요? 아직까지 그 부분에 대해 아내와 깊게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습니다. 서로를 믿어주는 눈빛 어느 행동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전달이 되니까요. 먼 훗날 시간이 흐른 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어찌 됐건 육아를 함께해서 좋은 건지 저를 믿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로부터 문자를 받은 지 며칠 뒤 회사로 회신을 보냈습니다. ‘둘 다 복직 안 함.’으로요. 그렇게 저희 부부는 대단한 결정(?)을 내리며 또다시 함께 6개월의 시간을 함께 하며 아이와 함께 할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연말이 다가오면서 아이와 크리스마스트리를 함께 꾸몄습니다. 트리에 밝게 빛나는 전구처럼 부부의 마음도 밝게 빛났고 아이도 저희의 결정을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밝은 웃음을 지어줬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합니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보너스 공동 육아가 추가로 주어졌습니다. 이래서 인생이 재밌는 건가 봅니다.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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