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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남이 Jul 19. 2024

복직원 내던 날

봄을 알리는 3월을 시작으로 벚꽃이 만개하는 4월을 지나 가정의 달 5월까지 보내고 나니 어느새 진한 연둣빛 잎사귀들이 손을 흔들어대는 6월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속도감 있는 계절의 변화만큼 굳건했던 저희 가정의 일상에도 이제 변화가 생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부부 모두가 복직할 시기가 코앞 다가왔거든요.



이 시기에 맞추어 6월의 어느 날 회사에서는 칼 같이 ‘복직 희망자 수요 조사 안내’ 관련 메시지가 날아왔습니다.(역시나 공무원스럽습니다.) 드디어 올게 왔습니다. 더 이상 휴직 기간을 미루기 힘든 상황이었고 부부 각자가 가진 남은 육아휴직의 경우 향후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즈음 사용할 예정이어서 미련 없이 부부 모두 복직하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때마침 돈도 다 떨어지기도 했어서 큰 감흥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부부 모두 복직원을 제출하고 나니 육아휴직 전의 제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긴장되고 두려웠다.’라는 한 문장으로 귀결이 나더라고요.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라고 생각했었고 색안경을 끼고 비관적으로 바라봤으니까요. 그렇게 고리타분한 저도 육아휴직의 필요성에 대해 예찬론자로 변모해 갔습니다. 아이와 아내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본인에게도 엄청난 효과가 있었으니까요.   



먼저 1년 6개월이라는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와 말도 안 되게 엄청난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수술 후 아이의 회복의 과정에 함께 참여했고 어느새 자랐는지도 모를 만큼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하루 종일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걷게 된 순간, 아빠라고 말을 해준 순간 그리고 아이가 어린이집이라는 사회에 참여하는 일련의 과정을 빠짐없이 보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만으로도 이번 육아휴직 시즌 1은 성공한 셈입니다.



한편으로 아내와는 공동 육아를 통해 끈끈한 전우애(?)를 형성했습니다.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웃기도 많이 웃으면서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엄마로서의 아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고, 배우자에게 대해 신뢰 덕분에 무탈히 육아휴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조금 더 성숙한 부부의 생활력(?)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염려하던 ‘돈’ 문제도 큰 무리없이 잘 헤쳐 나온 걸 보면 ‘인간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끼는 계기였기도 합니다. 무일푼 거지가 된다고 해도 언제든 다시금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라고나 할까요? 어떻게든 살면 다 살아지는 게 인생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오히려 더 행복했으니까요.



아이에게 추억을 선사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제 자신의 추억을 남기고 싶었던 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아내, 딸아이 그리고 저까지 우리 가족에게 분명히 괜찮았던 시간으로 기억되리라는 점입니다. 육아휴직을 기점으로 인생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꼬깃꼬깃 마음 한 구석에 접어놓았던 꿈을 그려보는 시간도 가졌고 아이와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알게 됐습니다. 저희는 정말 최선을 다했고 이것으로 충분히 만족합니다. 후회는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인생에 멋진 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 같아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복직 이후 오랜만에 만나게 될 업무에 삐걱거리기도 할 것이고 모니터 앞에 하루 종일 앉아 타이핑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리기도 합니다. 육아휴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회사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육아휴직으로 충분한 재충전을 해냈고 아쉽지만 이제 다시 회사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다시 돌아올 육아휴직 시즌2를 기다리며 치열하게 일에 전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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