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일본에서 뭘 했냐고 물어봤을 때 뭔갈 딱히 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여행을 했다. 숙소에 누워있다 숙소가 있는 동네를 걷고, 근처에 다른 동네가 있으면 거기 가서 걷고, 걷다 괜찮아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밥 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누워있는 여행을 했다.
한 번 가면 뽕을 뽑고 와야 한다는 생각의 사람들이 들으면 기겁할만한 여행이다.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 돈이 아깝지 않느냐. 너네 돈 많냐.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는 월급 2~300 받던 직장인이었다.
우리는 예전부터 동네를 걸어 다니는 여행을 좋아했다. 어디 유명한 관광지만 투어식으로 돌아다니는 것보단 관광지 조금방문 후 숙소 근처를 배회하며 동네구경하다 숙소에 들어가 맥주 한잔하고 자는 여행이 우리에겐 맞았다. 숙소도 보통 옮기지 않아 집에 돌아갈 때 즈음엔 지도가 필요 없어질 정도가 됐었다.
이번에 방문한 사와라는 관광할 게 거의 없었다. 덕분에 대부분의 시간을 산책에 썼는데 오히려 관광할게 없다 생각해 산책시간을 늘려 피곤해질 지경까지 산책만 했다.
지붕에 기와를 올리고 깔끔하게 디자인된 일본 가옥들 사이로 난 새 지저귀는 소리와 우리 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거리를 걷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염없이 걷게 된다. 신기하게도 가끔가다 마주치는 사람들 역시 분위기를 깨지 않게 하려는지 작은 목소리로 대화하는 모습이 보여 우리 역시 자연스레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대화하게 됐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의 실내공간 분위기가 야외에서도 자연스레 형성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함을 느낄 수 있는 산책길이었다.
옆동네에 있는 온통 푸른 풀밭뿐인 공원길도 걸어보고, 아무도 걸어 다니진 않는 해안도로를 따라 세찬 파도소리만 들으며 지칠 때까지 걸어보기도 했다.아주 천천히 바뀌다 어느새 정신 차려보면 아예 다른 공간에 들어와 있는 경험 속에 우리는 각자 정신없는 일상 속에 하지 못했던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채 걷다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잠시 하고 있던 생각을 제쳐두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눈다.
비행기값과 숙소값을 내고 아무것도 안 하고 걷다만 오는데 돈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엔 자신 있게 전혀 아깝지 않다는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진정한 여행의 의미가 무엇인지, 내가 무엇을 하며 행복한지이것저것 경험해 보며잘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