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결
인턴이 끝나던 날, 우진은 미경을 둘이 자주 가는 카페로 불렀다. 사장님께 부탁해 나름의 이벤트를 준비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더 화려하게 하고 싶었으나 너무 바쁜 나머지 초라한 프러포즈가 되어 버려 속상했다. 날짜를 미루고 싶지는 않았다. 촌스럽지만, 고전적으로 진심을 담았다. 꽃길을 깔고, 초를 밝혔다. 함께 한 시간은 그들에게 꺼진 양초 같기도, 시들어 버린 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다가올 시간 속에서는 서로 불 밝혀 주고, 시들지 않는 꽃이 되게 지켜줄 것이다. 우진은 그동안 둘이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려 보았다. 편의점에서부터 시작된 그녀와의 시간. 그는 그녀를 통해서 엄마 김미경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녀 덕분에 엄마를 사랑하는 방법을 깨달았다. 모든 게 어설프고 뒤죽박죽이었던 그의 이십 대를 지금의 우진으로 이끌어 준 사람.
저 멀리 그녀가 온다. 구름 이불이고, 꺼지지 않는 불빛이며 그의 전부인 그녀. 두근대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준비한 반지를 들고 무릎을 꿇었다. 질끈 눈을 감고 그녀가 감격하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우진의 기대와 사뭇 달랐다. 순간, 그는 생각지도 못한 현실에 잠시 혼란스러웠다. 당연히 기뻐할 줄 알았다. 거절당하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바쁘다는 이유로 그녀를 혼자 둔 시간이 많았던 게 생각났다. 최근에는 얼굴 보는 것도 힘들었다. ‘다른 사람 생긴 거 아니겠지? 설마, 안돼. 아닐 거야.’ 하지만, 그녀는 한참을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찰나의 불안이 현실이 되려던 그때, 그녀가 특유의 장난스러운 말투로 그의 걱정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야, 명색이 프러포즈라면서 반지가 이게 뭐야? 좀 더 큰걸 박아야지. 하나하나 다 가르쳐 줘야 해. 이러니, 내가 데리고 살아야지. 별 수 있어!”
이런 여자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진은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자, 이제 내 차례네.”
좀 전까지의 장난기 가득한 미경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눈물범벅이 된 그녀는 우진이 했던 것처럼 무릎을 꿇으며 반지를 내밀었다.
“우진아~ 나 사랑해 줄래? 지금처럼!”
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울었다. 이벤트를 준비한 사장님도 이런 프러포즈는 처음 본다며 함께 눈물 바람이었다.
“이게 뭐야. 엉망진창이야.”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며 미경을 끌어안고 있던 우진은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둘 다 서로의 얼굴만 마주 보고 있었다. 웃었다 울었다 한바탕 소동이 진정되었다. 우진은 내친김에 그녀에게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최대한 빨리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 이제 이 여자는 내 여자다 세상에 떳떳하게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려 미칠 지경이었다. 우진이 한참 달력을 보며 이 날은 어때? 라며 미경에게 물어 올 동안 미경은 우진의 팔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한쪽 눈썹을 추켜올리며 우진에게 신기하다는 듯 말을 내뱉었다.
“어? 너 팔목에 흔적, 없어졌다. 아주 깨끗한데? 언제 없어진 거지?”
우진은 그녀의 말에 오른쪽 팔목을 유심히 보았다. 어제까지도 있었다. 분명히.
이제 영원한 서로의 파트너를 찾아서일까? 가장 힘들 때 나타나 가장 행복할 때 떠나간 녀석. 우진은 미경에게 키스했다. 민석이가 스쳐 가고,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사랑으로 키워준 아빠도. 후회했다는 친아빠도 지나갔다. 그리고, 그의 유일한 형제인 현호도. 더 이상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열심히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인생은 그녀와의 시간으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마음껏 사랑하면서…. 둘만 아는 그들의 친구가 사라지고, 찬란할 앞날이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서로의 구름 이불로서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