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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Sep 12. 2024

사고뭉치 아빠와 해결사 엄마

문디 나그네 이제 제발 그만!!!!!

 딸은 엄마의 삶을 따라간다고 했던가? 내가 애 셋에 남편하나를 키우고 있다면, 우리 엄마는 나보다 먼저 애 셋에 남편 하나를 키운 원조다. 나는 원조 집안의 2대인 셈이다. 심지어 소띠 남편까지... 엄마도 기가 찬다고 했다. 나이 차이가 여섯 살이나 되는 형제 많은 집 고집불통 막내, 하지만 핸섬했던 아빠에게 홀랑 까지는 아니지만 여하튼 넘어간 엄마는 50년 가까운 세월을 그의 뒤치다꺼리하느라 동분서주했다. 산골 축사이야기와 구둣발 남자들 이야기는 그저 그런 에피소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한밤중 아빠가 갑자기 배가 아파서 뒹굴뒹굴 굴렀다. 내가 고3 때다. 엄마가 병원 응급실로 급히 데리고 갔고, 병명은 민물생선 기생충인 간흡충인가 뭔가가 장기를 후비고 다니고 있다나 뭐라나. 일주일 전에 친구분이랑 낚시 다녀온다고 하셨던 게 민물 낚시였나보다. 매운탕이나 끓여 잡술 일이지 그걸 뭐 하러 날 걸로 잡수셨는지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그의 취향. 급하게 개복수술로 기생충을 꺼냈다. 기다란 실지렁이같이 생긴 아주 기분나쁜 모양새의 기생충이었다. 머리로 올라갔음 어쩔 뻔했냐며 엄마는 이만하길 다행이라고 괜찮다고 했다. 물론 그딴 일로 무안해할 아빠도 아니지만, 그런 것까지 배려하여 말했다는 건 아빠 말고는 다 안다. 밤엔 엄마가 간호하고 출근하는 엄마 대신 내가 학교 마치면 버스 타고 잔심부름을 해야 했는데 친구들이 어디 가냐고 묻는 말에 대충 둘러댔던 기억이 있다.

"응, 아빠가 민물생선 드시고 기생충에 감염되셔서 말이지."

이렇게 얘기하기엔 참 부끄러웠던 것이다.


 그뿐이랴? 내가 회사에 처음 입사해서 얼마 안 되던 때였다. 그때 나는 최신형 애니콜 듀얼폰을 쓰고 있었다(사춘기 중이었음을 얘기하는 것이다). 근무 중에 전화가 오는데 낯선 지역번호에 놀라 전화를 받았다. 그때만해도 보이스피싱이 흔하지 않던 때였다.

"여기 병원인데요. ***님 따님 되시죠?"

"네."

"어머님이 연락이 안 되셔서요. 잠시만요, 아버님 바꿔드릴게요."

"어버버버.. 어버버버"

"아빠, 똑바로 말해봐. 무슨 일인데?"

잠시 후 간호사가 다시 받더니,

"독버섯을 드신 거 같아요. 생명엔 지장이 없을 것 같고, 호전되고 있는 중이신데 보호자가 오실건지 좋아지시면 자가퇴원도 가능하실 거 같아서요. 일단 알려는 드립니다."

나는 가지 않았다. 회사에 얘기하고 갔어도 될 일이다. 하지만, 미소냉전시대보다 차갑던 부녀 사이가 아니었던가? 엄마가 마칠 시간에 엄마에게 알렸다. 엄마는 일이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갔다. 나중에 들은 말로는 같이 일하던 분이랑 일하던 중에 짬이 생겨 잠시 산에 올랐고, 그 짧은 시간에 버섯을 발견하고 드셨다고 했다. 버섯을 굉장히 좋아하는 양반이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식용인지 독버섯인지도 모르고 먹는 게 말이 되냔 말이다. 자기가 버섯을 얼마나 잘 아는데, 독버섯이 아니었다고 지금도 고집하고 있다. 병원에서 독버섯이라고 얘기했고, 마비증상까지 있었음에도 아직 인정하지 않는다. 하......다행히 엄마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쯤은 독이 다 풀렸는지 바로 집으로 오셨다.


 또 있다. 추석 연휴 마지막날이었다. 전날 친정에서 하룻밤 자고 와서 집에서 다 쉬고 있던 저녁 무렵이었다. 엄마에게 온 전화라 잘 쉬고 있냐는 내용일 줄 알고 장난스럽게 받았다. 그런데, 엄마 목소리가 너무 떨렸다. 응급실에서 전화가 왔는데 아빠가 산에서 추락을 해서 119에 실려 오셨고, 응급 수술이 필요할지도 모르니 당장 보호자가 와야 할 것 같다고. 일단 엄마를 진정시키고 남편이랑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엄마도 그 사이  병원에 도착했다. 연휴 마지막 날, 나름 무료하셨는지 혼자 등산을 가셨다. 거기까진 괜찮다. 그런데,  산에서 막걸리 한 병을 드셨고, 내려오다가 하산 거의 끝무렵에 굴러 떨어진 모양이었다. 앞으로 고꾸라져 갈비뼈 여덟 개가 부러진 채로 차가운 땅바닥에서 몇 시간을 그렇게 있었던 모양이었다. 인적도 드문 곳이라 거의  4시간가까이 혼자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마침 지나가던 분이 119를 불러주셔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셨다. 그 덕에 애정하던 담배를 완전 끊으시긴 했지만,  치료가 끝날 동안 엄마는 아빠 병실에서 새우잠을 자고 출근했고, 낮에 내가 두 녀석을 유치원 보내고 아빠 병원에 가는 날이 한 달 정도 반복되었다.


 최근에도 있었다. 아빠는 특정 항생제에 알레르기가 있다. 잘못 먹으면 아나필락시스를 일으켜 응급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그는 분명히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그 약을 감기약으로 처방받아먹고 밤에 기도가 막혀 응급실을 찾았고, 3일 뒤 또 그 약을 먹고 응급실을 찾았다. 치매냐고? 시시콜콜한 거 까지 다 기억하는 기억력 만렙인 분이다. 조심성이 없고, 긴장감이 없을 뿐이다. 일생이 헐랭이다. 그런 아빠 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가슴 쓸어내리고 살았을지. 우리에게  말하지 않은 스토리는 또 얼마나 있을지.  우리 엄마 한탄 에피소드 중에 단연코 1등인 스토리는, "이 날 평생"으로 시작해서 4~50년 그들의 역사가 30분 정도로 압축되고 모든 원망이 "문디 나그네!"로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아빠의 애칭은 문디 나그네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엄마의 마음이 그 한 단어에 함축되어 있을 것이고, 수많은 미움과 또 안타까움, 그리고 연민의 감정들이 그 안에 복합적으로 녹아 있을 것이다.

"요새 너거 아빠가 옛날이랑 다르디. 혼자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하고, 내 어디 갔다 와도 암말도 안 한다. 마이 바낐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랬다. 우리 엄마는 그렇게 그를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었다. 작은 일 하나에도 감사함을 억지로 부여하며, 능력 없고 힘없는 남편이지만 남편이라는 울타리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자기 암시를 매일 하면서 말이다.


  엄마, 아빠는 보험을 많이 들어두었다. 젊을 때부터 딸들에게 아파서 부담 주지 말자는 점에선 두 분이 합의점이 맞았던 모양이다. 알아서 건강검진 때가 되면 나란히 검진을 받으시고,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들러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신다. 옛날엔 건강염려증이라고 병원에 그만 돈보태주라고 잔소리도 했었다. 그런데, 친구들의 엄마가 암으로 한 두 분씩 소천하시고, 그게 얼마나 나에게 감사한 일인지 이제는 너무나 간절하게 깨닫고 있다. 사고뭉치 아빠와 그를 지키는 수호천사 엄마. 엄마는 아빠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에게 수호천사다. 하나님이 모두의 곁에 머물 수 없어서 엄마를 보내주었다고 하지 않나? 모성애에 등급을 매기는 게 잘못되었다고 나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베스트 오브 베스트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상급의 엄마를 보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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