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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Sep 16. 2024

며느리가 되어 본 딸들

프로와 아마추어

 내일은 추석이다. 친정은 차례도 안 지내고, 제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엄마는 매해 명절마다 제사 있는 집만큼의 음식을 하신다. 제발 하지 마라고 몇 번을 말해보았지만, 모처럼 가족 다 모이는데 먹을 게 있어야 한다며 그 많은 튀김과 전, 그리고 나물, 탕국, 빠지면 안 되는 LA갈비까지 없는 것 없이 구색 맞춰 그걸 혼자 다해왔다. 먹고도 남아서 바리바리 싸 오고 며칠을 꺼내 먹게 되니 제발 좀 양을 줄이든지 시켜 먹든지 하자고 해도 소 귀에 경을 읽어도 그쯤 되면 알아들을 법도 한데 우리 엄마는 양띠라 그럴까? 하하....

 "이번에는 조금만 했다. 먹을 게 없어서 우짜꼬."

분명히 그렇게 말해놓고 가보면 도대체 뭐가 조금인지 양에 대한 개념이 없나 싶을 정도로 갖가지 음식들이 상다리 부러지게 나온다. 직설적 화법의 그녀 아닌가? 눈은 퀭하고 허리야 다리야 앓는 소리는 명절 당일날 필수 코스다.

"딸년들은 남의 집 가서 며느리 한다고 못 오고 나는 며느리 없어서 맨날 혼자 한다!"

우리 엄마 명절 한풀이 필수 코스!

"엄마, 그러니까 제발~~~~ 하지마소. 이제 당일에 음식점 다 문 열고 시켜 먹음 된다."

"일 년 내내 먹는 것도 아닌데 명절음식을 명절에 먹어야지. 됐다 마, 내가 조금씩 하면 된다."


 도와드리고 싶어도 엄마말처럼 나와 막내는 남의 집 며느리라 시간이 안 맞았었다. 동생은 따로 살기도 하고, 연휴라고 쉬는 직종이 아니다 보니 엄마 혼자 하는 게 당연한 일처럼 되어 버렸다. 대신 맛있게 먹고 바리바리 싸들고 오는 걸로 엄마의 고생을 보람과 뿌듯함으로 승화시키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나는 이제 찾아갈 시댁도 없고, 며느리로서 할 일이 없다. 올해 설 명절부터 처음으로 엄마 음식을 돕기 시작했는데, 때마침 오늘 쉬는 날인 동생도 돕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마음만큼은 시장 전집 딸들 저리가라 거룩하고 비장했다. 나는 다년간 해온 거니 능수능란하고, 동생도 처음에는 호기롭게 나섰다가 곧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

튀는 기름이 무서운 사십 대 동생

 제대로 된 며느리 경험이 없다 보니 오징어 튀김의 무서움을 알리가 있나? 기름의 무서움을 온몸으로 느끼고, 완전 무장하고 나타난 동생 모습에 엄마와 나는 웃느라 넘어갈 뻔했다. 딸들이 도와주니 너무 편하다며 좋아하는 엄마를 보니 기분이 좋았다. 편하다는 말은 핑계고 엄마는 딸들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이 좋았을 것이다. 명절만이라도 당일치기 며느리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엄마 혼자 했다면 종일 했을 텐데 아침부터 셋이서 했더니 점심도 되기 전에 다 끝나버렸다. 뒷정리까지 다 하고 셋이 모여 앉았다. 타로 카드를 챙겨가 즉석 타로샵이 열렸고 재미까지 더해져 잊지 못할 하루가 되었다.

 

 엄마가 이해가 안 되고 엄마의 집착이 싫었던 때가 있었다. 엄마의 관심을 잔소리라 받아들이고, 뭐든 반대로만 하려 했던 청개구리였다. 이제야 왜 엄마가 음식을 한가득하는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도 꾸역꾸역 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내일 자식들과 손주들이 와서 맛있게 먹는 걸 보면 엄마는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것이다. 손주들의 생선을 발라주고는 후다닥 주방으로 뛰어가 딸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갈비를 구워내고 있겠지, 당신의 식사는 뒤로 미룬 채 말이다.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님을 알게 되면서 엄마에 대한 미안한 샘은 마를 날이 없다. 어중간하게 철이 들어 버린 딸이 미안한 엄마에게 바치는 사모곡이 되어 버린 이 글들을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며 보게 될 미래의 내가 되길 바라본다. 깨우치는데서 끝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잘하는 딸이 되어야겠다. 조그만 관심이면 되는 것을 어리석게도 비행기라도 태워 드려야 효도라고 생각했다. 물론, 관심에 비행기까지 더해지면 최상급의 효도가 되겠지만 말이다. (비행기는 조금만 기다려 주이소.....)

 엄마의 하루가 어떤지, 요즘은 무얼 하는지, 병원은 정기적으로 다니고 있는지, 입맛은 있는지, 한 발 앞서 좋은 곳에 모시고, 맛있는 걸 함께 나누며 남은 인생은 엄마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만들어 드리고 싶다. 아직은 어설픈 감독이지만, 열 며느리 안 부러운 엄마로 만들어 드리고 싶다.

"엄마, 오늘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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