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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정아줌마 Sep 23. 2024

엄마는 나의 등대입니다.

마지막회.

언니야,
나는 엄마가 내 안 사랑하는 줄 알았디.

"근데, 내가 물어봤거든? 엄마! 내 사랑하나? 그랬더니 하모~사랑하제~하드라"


 이 이야길 하면서 동생은 그렇게 행복해 할 수가 없었다. 나이 오십이 되어도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아이. 유난히도 아빠에게 또 엄마에게 모자란 사랑을 받았음을 나는 안다.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데에는 부모의 사랑이 부족했음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들의 진심은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으니까.

 우리가 어릴 때 우리 부모역시 어렸다. 그들도 미성숙한 성인으로서 미성숙한 부모가 되어 어찌해야할 지 모른채 세 아이를 키웠다. 때론 바라던 아들이 아닌 딸이어서 서운했고, 그들의 삶이 녹록치 않아서 힘들고 지친 감정이 여과없이 세 아이에게 전달되었다. 사랑은 했으나 순화된 언어로 전달되기 보다 밥상으로, 때론 눈물로 그들의 삶의 지치고 힘든 감정이 섞인 채 투박하게 투영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엄마는 딸을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기 쉽다고 한다. 내가 엄마에게 가장 감사한건 딸들이 자신과 다른 개체임을 인정해주셨다는 데에 있다. 부모 교육을 제대로 받아서가 아니라 그건 아마도 엄마 자신이 독립성이 강한 여성이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늘 유쾌하고 긍정적이며 당당하게 살아가는 엄마는 자기가 못다 이룬 꿈을 딸에게 강요하며 대리만족을 얻을 만큼 어리석은 분이 아니었다. 가끔 어릴 때 서운했던 기억이 떠올라 "엄마! 그때 왜 그랬노?"라고 하면 "몰라서 그랬지, 미안하다야." 쿨하긴 또 얼마나 쿨한지, 미안하다는 데 지난 일로 재판갈 것도 아니고 다같이 한바탕 웃고 나면 케케묵은 옛날 감정은 눈녹듯 사라진다.

"니도 살아봐라 나중에 니같은 딸낳고." 이런 말도 분명히 했었다. 하지만, 그보다 늘 미안하다는 말로 인정하는 엄마였다. "그때 우리 둘째 많이 힘들었을기다. 내가 그래서 늘 보면 안쓰럽다." 지금도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늦었지만, 어릴 때 못해 준게 생각나서 더 많이 챙겨주고, 더 많이 걱정하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하는 걸까? 불안정했던 동생의 마음도 이제야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어릴 때는 내가 엄마를 존경하게 될 줄 몰랐다. 아니, 엄마처럼은 안 살거야 그랬다. 게다가 엄마때문에 힘들었다. 미련하게 가족을 지키려 방패막이 되는 것도, 억척같이 살아내는 것도, 저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지냐는 냉소적인 시선으로 엄마를 한심스럽게 봤던 적도 있었다. 그녀의 방패덕에, 그녀의 억척스러움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한다고는 생각조차 못 했던 시절이 있었다. 오십을 앞둔 지금에야 나는 그녀를 엄마가 아닌 또 다른 존재로 인지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나에게 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할 지 알려주는 등대다. 그녀의 실수에서 나는 옳은 방법을 깨우치고, 그녀의 사과에서 나는 진정성을 배운다. 내 아이에게 할 말과 안 할말을 구별하게 되고, 나 역시 실수했을 때는 즉시 사과하는 사람이 되었다.


 망망대해에서 등대를 발견하면 그렇게 반갑고 좋을 수가 없다고, 우리 시아버지가 말했다. 마도로스에게 등대는 단순히 항로을 알려주는 느낌을 넘어 안도감과 옳은 방향으로 잘 왔다는 확신, 그리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안내자이기도 하다. 등대는 칠흙같은 어둠의 바다에서 홀로 자기 일을 해내며 많은 뱃사람들에게 빛이 되는 존재다. 엄마가 자기 자리에서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 준 덕분에 나는 큰 위험없이 오십가까이 살아 내었다. 내 인생 곳곳에 엄마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독심술까지 가졌지만, 내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려 준다. 엄마가 스스로 성숙한 인간이 된 것 처럼 딸들에게도 성숙해질 기회를 주는 거겠지. 모든 걸 대신해줄 수 없음을 엄마는 알고 있을 것이다. 마음이 아파도, 딸들이 알아서 헤쳐나가기를, 그러다 너무 힘들면 꼭 엄마에게 오라고, 새끼들을 다 떠나보낸 둥지를 지금도 지키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당당하고 유쾌한 이여사님~ 자신을 사랑하고, 그 넘치는 사랑으로 딸들을 아직까지 떠나보내지 못하고 마음에 품고 있는 우리 엄마! 엄마가 나의 엄마여서 다행입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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