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판타지 단편소설 3)
박수 오공은 컴컴한 토굴 속에 앉아 있다.
앞에는 석관이 있고 그 위에는 붉은 비단이 놓여 있었다.
오공은 비단을 쓰다듬으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 환생포를 찾기 위해 김회장의 비위를 맞추며 견뎌왔던가?
지나온 기억들을 회상하며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구렁이와의 내기에서 져서 비록 손가락 만 한 지네로 줄었지만, 이무기 지네 오공은 질기게 살아남았다. 다시 오른쪽 땅으로 건너가려 했지만 사당에 의해 통로가 막혀있었다. 사당을 없애려 해도 사당에서 뻗쳐 나오는 기운 때문에 오공은 사당 근처에도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환생포를 찾으려 왼쪽땅을 다 뒤졌지만,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누군가의 관속에 환생포가 들어갔고 한 헌병장교로 환생한 것을 알아냈다.
그래서 사당 근처의 일본인을 병들게 했다.
그랬더니 헌병경찰 쇼오류가 사당으로 지팡이를 짚고 왔다.
“구렁이에게 제사 지내는 사당이라니 불태워라. 쿨럭쿨럭.”
구렁이 사당이 소각되자 쇼오류의 병이 나았다.
오공은 그 환생자가 쇼오류라는 것을 알아냈다. 게다가 쇼오류가 사당의 잿더미 속에서 ‘구렁이 구슬’을 발견하기까지 했다.
오공은 그에게 접근하기 위해 순사보조로 들어갔지만,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광복이 되고 쇼오류가 오공을 통해 신분세탁을 하여 김승룡이 되자 오공이 주도권을 잡았다.
“그 구슬이 무엇인지 아오? 지상계는 천계를 기준으로 왼쪽땅과 오른쪽 나뉘어있다오. 천계에서 죄를 지으면 왼쪽 땅에 짐승의 모습으로 유배되지.”
오공은 어느덧 ‘하게체’로 말끝을 바꾸었다.
“그들이 짐승의 몸으로 오백 년을 살아내면 인간의 모습을 취할 수 있는 요정이 되고, 또 오백년을 수련하면 용이 되어 승천하거나 산신이 될 수 있지. 그대가 찾아낸 그 구슬로 왼쪽 땅의 문을 열 수가 있거든.”
그 말에 김승룡이 눈을 반짝였다.
“오호라, 이 구슬로 왼쪽 땅의 요정들을 잡아오면 돈이 되겠군.”
하며 일어서는 김승룡에게 오공이 한 마디 던졌다.
“문을 열려면 주문을 외워야 하지.”
그렇게 해서 오공은 김승룡과 동업자가 되었다.
김승룡은 점점 사업체를 키워 그룹의 총수가 되었지만, 점점 오공을 하수인으로 대했다. 오공은 환생포를 찾기 위해 온갖 수모를 참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오공은 김회장에게 맞은 이마를 문지르며 그동안 수집한 자료를 들여다보았다.
김회장이 전생베개를 베고 꿈에서 본 이가 이완용이다. 이완용의 무덤은 훼손을 염려하여 장소를 비밀에 부쳤다. 1979년에 이완용의 후손들이 무덤을 이장 할 때, 시신은 부패했는데 시신을 덮은 붉은 비단 명정이 손상되지 않고 발견되었다. 그것을 역사학자 이병도가 가져가 불에 태웠다고 하는데, 불에 태우는 걸 본 사람은 없다고 한다.
그 붉은 비단이 오공의 손에 들려져 있는 것이다.
오공은 정성스레 목욕을 하고 석관으로 다가갔다. 뚜껑 위에 놓인 붉은 비단을 몸에 두르고 석관에 누웠다. 그리고 석관 뚜껑을 닫았다.
석관 틈으로 한순간 섬광이 지나갔다. 그리고 석관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그때 토굴로 들어오는 노인이 있었다. 지칠 대로 지친 노인은 관을 어루만지며 속삭였다.
“지네 오공, 오백년 묵은 지네가 기어이 환생포를 쓰고 용이 되었구나. 용이 이깟 석관 하나 부수지 못해 그리 발버둥인가?”
청설의 놀림에 석관 안이 더 소란스러웠다.
“발톱이 붉은 비단에 걸려서 어쩌누? 그래서 수의는 삼베로 하는 건데........ 환생포는 신물이라 용의 발톱 따위에 찢기는 것이 아닌 것을........ 용한 술사가 그걸 모르다니 쯔쯧.”
청설은 석관에 걸터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청설의 이마로 그동안 걸어온 삶의 기억들이 너울너울 드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