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니버스 판타지 단편소설 4)
성문으로 트럭들이 들어오더니 마을로 들어갔다. 잠시 후 되돌아 나오는 트럭에는 마을 사람들이 실려 있었다.
청설은 트럭에 실린 여인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춘영아!”
청설은 트럭에 매달렸다.
트럭은 안개 속으로 들어갔다. 덜컹거리는 충격에 청설이 떨어져 바닥에 뒹굴었다. 지나쳐 온 안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더니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트럭은 창고로 들어갔다. 하지만 잡혀간 사람들은 아무도 창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저 창고가 수상해.”
며칠 후 청설은 그 건물 사무실에 앉아있었다. 맞은 편에는 사무직원이 앉아 있다.
“이름?”
“그게....... 기억이.......”
“좋아요. 여기에 지장을 찍으면 바로 채용됩니다. 아직은 작은 회사지만 곧 주식회사로 성장할 가능성이 넘치는 회사지요.”
“주로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별거 없어요. 사냥터 뒷정리만 하면 돼요.”
담당직원은 고용계약서를 내밀어 버벅거리는 청설의 손가락을 쥐고 이곳저곳에 지장을 찍었다.
“그리고 이건 비밀유지 계약서, 이곳에서 본 일들을 밖에 나가서 절대 얘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지장을 찍으면 됩니다.”
청설은 조금 미심쩍은 생각이 들었지만, 고용계약서에 벌써 지장을 찍은 후라 어쩔 수 없이 비밀유지 계약서에도 지문을 남겨주었다.
“마침 자리가 하나 비었군. 따라와.”
담당직원은 인주가 마르기도 전에 ‘하라체’로 말투를 바꾸었다.
청설은 더듬거리며 뒤따랐다.
작업반장에게 인계된 청설은 여러 근로자들과 섞여 궤도열차에 올라타야 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도 없었다. 궤도열차에 앉은 근로자들도 신입을 본체만체 무표정하게 앞만 바라볼 뿐이었다. 불빛이 깜빡이는 터널을 지나 도착한 곳에 1조 조장이 내리며 소리친다.
“1조 하차!”
하니 대여섯 명의 근로자들이 내렸다.
“거기 신입, 내려!”
조장의 외침에 근로자들의 시선이 청설에게 쏠렸다. 청설은 엉거주춤 일어나 내렸다.
근로자들을 따라가 출근 도장을 찍고 우주복 같은 작업복을 지급 받았다. 그리고 조장을 따라 철제계단을 올라가 작은 초소 안에서 대기했다. 초소 밖에는 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담당자가 말한 사냥터인 모양이었다.
청설은 창문에 붙어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건너편 벽이 움찔하더니 구르르 소리를 내며 열리는 것이 아닌가? 동굴 같은 것의 문이 열리자 안에 있던 짐승들이 몰려나왔다. 삵과 오소리, 토끼 등의 산짐승들이었다.
슉! 화살이 삵의 발치에 떨어지자 짐승들이 한 순간에 흩어져 몸을 감추었다. 그리고 한 무리의 사냥꾼들이 달려오며 화살을 쏘았다. 고라니 한 마리가 화살에 맞았다. 사냥꾼들이 신이 나서 소리쳤다.
“한 놈 맞은 것 같은데?”
“이쪽이야!”
수풀 속에서 화살에 맞은 노루가 발견되었다. 숨을 헐떡이느라 노루의 몸이 들썩였다. 사냥꾼들은 노루의 몸에 발을 올려놓고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고통스러워하는 노루를 그냥 두고 떠나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팔소리가 들리자 살아남은 짐승들이 돌아왔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데 피를 흘리며 절뚝거리는 사슴도 있었다.
청설은 속이 메스꺼웠다.
“뭐하나?”
조장이 청설의 어깨를 쳤다. 다른 조원들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죽어가는 노루를 들것에 실었다.
“신참은 핏자국 지워.”
조장의 지시에 청설은 삽으로 흙을 퍼서 피가 흥건한 바닥을 덮어야 했다. 청설은 헛구역질을 했다.
지옥 같은 사냥터에서 벗어나 장비와 작업복을 반납하는 동안 시간이 더디게도 지나갔다. 퇴근 도장을 찍고 나오니 누군가 청설의 어깨를 툭 쳤다.
“저녁 먹으러 가세.”
그제야 말을 거는 동료들이었다. 그들은 청설을 데리고 허름한 뒷골목 식당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국밥이 앞에 놓이자 청설은 구역질이 났다. 핏자국을 치우고 나서 고기 국밥이라니........
“노루 고기는 아니니 겁내지 말고 먹어.”
하며 동료가 술을 따라주었다.
“아무 말 말고 한잔하게. 처음엔 다 정신이 없어. 한 잔 마시고 푹 자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돼있어.”
하고는 청설의 말을 듣지 않겠다는 듯 다른 동료와 얘기를 나눴다.
청설은 막걸리 한 잔을 마셨더니 사냥터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한 잔 더 주세요.”
청설이 잔을 내밀자 동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잔을 채워주었다.
“그래, 이렇게 적응해 가면 되는 거야.”
“도대체 여긴 어딥니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겁니까?”
청설의 질문은 식은 김처럼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그저 뜨거운 국밥을 입에 퍼 넣고 술 한 잔으로 고달픈 기억을 지우고 있었다.
청설은 술의 기운을 이기지 못 하고 쓰러졌다.
다음날 아침 청설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궤도열차에 몸을 실었다. 종일 죽어가는 짐승들을 보다가 사체를 처리하고 해가 지면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처럼 허름한 주점에서 맨밥과 술로 하루의 고단함을 지워갔다.
어느 날 청설은 다른 초소로 배치된다는 연락을 받았다. 동료들은 승급된 거냐며 축하해 주었다. 동료들의 인사를 받으며 도착한 곳에서는 좀 더 무거운 장비를 지급 받았다.
칸막이 문이 열리자 늑대들이 달려 나왔다. 늑대는 우두머리를 따라 달렸다.
구르릉 땅을 차는 소리가 요란했다. 이번에는 사냥꾼들이 지프차를 타고 총을 쏘며 달려오는 것이었다.
늑대들은 조직적으로 사냥꾼들을 유인하고 따돌렸다. 결국 지프차는 모래더미에 빠져 헛바퀴만 돌리게 되었다. 늑대들은 바위 위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켜보던 청설도 주먹을 쥐고 흔들며 환호했다.
늑대의 비웃음에 화가 난 사냥꾼은 주머니 하나를 차 밖으로 던졌다. 바닥에 금화가 쏟아졌다. 금화가 모래 속으로 스며들더니 저쪽에서 새로운 지프차가 배달되었다. 바퀴가 두 배나 두꺼워 모래밭이나 자갈길도 거침없이 달릴 수 있는 차였다.
잔뜩 세워졌던 늑대의 고개가 숙여졌다. 총알이 발아래 바위에 떨어지자 늑대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팔소리가 울리자 살아남은 늑대들이 동굴로 돌아왔다. 청설은 비통한 마음으로 전망대 계단을 내려갔다. 늑대의 사체를 찾아가는 걸음이 무겁기만 했다.
다음날 청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 두려웠다. 하지만 계약에 묶인 몸인지라 발목에 맷돌을 매단 것처럼 무거운 몸으로 궤도열차에 몸을 실었다. 사냥을 지켜봐야 하는 허름한 전망대가 감옥 같았다.
이번 사냥꾼들은 그물을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땅에 난 여우굴을 찾아내더니 덜 마른 풀을 태워 연기를 피웠다. 잠시 후 여우구멍에서 여우들이 뛰쳐나왔다. 사냥꾼들은 그물을 던져 여우들을 잡아 자루에 담았다.
청설은 발버둥치는 여우 한 마리를 눈여겨보았다. 여우의 목에 목걸이가 감겨 있었다. 청설이 벌떡 일어났다. 그 목걸이는 청설이 춘영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춘영의 목걸이가 왜 여우의 목에?”
게다가 그 여우는 청설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창고 문이 열리며 두 사내가 들어섰다.
“여기가 실사 게임장이라는 곳인가?”
“그렇습니다, 최사장님. 손맛 하난 장담 드리지요.”
오공은 최사장이라는 사내를 소파에 앉혔다.
“여긴 아무나 받아주지 않고 회원들의 추천으로만 가입할 수 있지요. 가입비가 있긴 한데, 최사장님께는 특별히 비회원 가격으로 사파리 체험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그래 주면 좋지.”
“그러면 여기 무기 목록을 보시지요. 게임비를 결제하면 기본 무기로 활과 화살이 제공됩니다. 하지만, 화살은 비거리가 약해 대부분 사냥총을 대여한답니다. 좀 즐기려면 지프차도 대여한답니다.”
오공의 설명에 최사장은 관심을 보이며 무기를 골랐다.
“이 아이템들은 왜 이리 비싼가?”
“기능별로 가격 차이가 납니다. 짐승의 이빨을 막는 갑옷과 화살을 막는 갑옷은 가격대가 높지요.”
“화살을 막는 갑옷이라니? 동물 사냥 아니었나?”
“단계가 높아지면 필요한 거니까 지금은 대여 안 해도 됩니다. 일단은 사냥총과 지프차만 대여하는 걸로 하시지요.”
오공의 설명에 최사장은 현금가방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만족한 표정의 오공은 최사장을 데리고 무기고로 갔다. 직원이 서류에 결재 표시된 물건들을 내어 주었다.
칼, 사냥총, 지프차 그리고 갑옷까지 내어놓았다.
“이 갑옷은 뭔가? 위험한 게임인가?”
최사장이 겁을 먹고 물었다.
“위험하긴요. 가시덤불에 걸릴 수 있으니 미연에 방지하는 거지요. 최사장님은 운이 좋으십니다. 오늘은 사냥대회 특별전 기획으로 vvip회원들만 초대하여 구미호 사냥을 하는 겁니다. 이건 구미호의 요기를 제압할 막대기랍니다.”
“구미호 사냥이라....... 입맛 당기는데, 다음에는 선녀탕 사냥 특별전을 기획해 보게.”
“그거 좋은 아이템이군요.”
오공은 비열한 웃음을 흘리며 최사장을 철문 안으로 안내해 갔다.
창고 안에는 지프차들이 대기해 있고 벌써 다른 사냥꾼들이 탑승해 있었다. 하지만 서로 아는 체는 하지 않았다.
오공이 한 쪽 벽의 휘장을 걷으니 주먹 만 한 구슬이 대리석 상자에 담겨 있었다. 오공이 구슬을 쓰다듬으니 구슬에서 빛이 뻗쳐 나왔다. 그 빛은 벽을 뚫을 듯이 비추었다.
과연 벽이 빛에 의해 녹은 듯 다른 공간이 보였다. 그 공간으로 지프차들이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트럭 한 대가 뒤따라 들어갔다.
해가 지자 지프차들이 돌아왔다. 마지막으로 들어온 트럭에는 여우 수십 마리가 실려 있었다.
최사장은 만족한 얼굴로 지프차에서 내렸다. 오공이 다가가 최사장이 들고 있는 전표를 확인했다.
“여우를 세 마리나 생포하셨네요. 사무실에 이 전표를 보이면 값을 쳐 줄 겁니다.”
“그래? 사냥물을 용역업체에 팔아넘기니 꿩 먹고 알 먹는 놀이 아닌가?”
최사장은 오공의 손을 덥석 잡았다.
“내가 이곳에 투자를 하겠네. 아니 게임장을 인수하겠네.”
“그러면 사장님을 만나러 갈까요?”
오공은 최사장은 사장실로 데려갔다.
‘대표 김승룡’ 이라는 명패가 놓인 책상에 앉은 사장은 여우구슬로 만든 주판을 굴리고 있었다.
오공이 물었다.
“수컷이 딸려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섬으로 보내버려.”
김사장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고는 밝은 표정으로 최사장을 응대했다.
“이 사파리를 인수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