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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쌤 Jan 08. 2022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2022년 부장교사(보직교사) 인선이 금요일에 발표되었다. 

작년에 학교를 옮겨 10년 만에 처음으로 부장교사(부서를 책임지는 부서장 역할을 하는 교사)를 하지 않고 담임을 했었다. 올해는 인사이동과 스스로 부장교사를 희망하지 않는 경우들이 발생해서 다시 부장교사를 맡게 되었다. 

무려 학생생활인권부장이다. 요즘에는 인권이라는 말을 넣지만 예전에 학생부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1. 과거 학생부에 근무했을 때의 기억들

아침부터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순응하지 않는 아이들과 기싸움을 벌이며 화가 나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쉬는 시간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지도해 달라고 데려오고 학교 주변에서 아이들의 흡연을 지도해 달라는 민원전화가 걸려와 교무실에 조용한 시간이 많지 않았다.

자녀의 징계 문제로 흥분한 학부모가 앞뒤 안 가리고 들어와서 소리치며 난동을 부렸다.

원래 불면증이 있었는데 더욱 심해져 일상을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머리숱이 많은 편이었는데 원형탈모가 와서 치료를 받았다. 


다른 부서로 옮기면서 다시는 학생부에 근무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2. 그렇지만 어쩔 수 없었다. 

부장교사를 맡을 수 있는 자원들이 부족하여 교육경력이 높은 내가 피해 갈 수가 없었다.

이제 경력이 높아 다른 부장교사들이 나보다 어린 경우도 많아 어디 부서로 가기도 쉽지 않았다. 교무부장(기업의 계획실장과 비슷하다) 후보로도 언급이 되었으나 여러가지 복잡한 상황으로 결국 학생부장으로 낙첨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장이 콕 집어서 학생부를 맡으라고 하였다. (학교민주주의가 많이 자리 잡기는 했지만 아직도 교장은 학교에서 제왕적 권력을 가지고 있다.)



3. 현재 학생부의 상황은?

인원 4명 중 2명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고 한 명은 다른 부서 부장교사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나의 발령 동기이며 초임지에서 같이 근무했던 전임 학생부장은 5년이나 학생부에 있었다며 치를 떨며 담임만 맡겠다고 나갔다. 

학생부가 완전히 해체되었다. 새롭게 구성되어야 하지만 만들어 놓은 학생지도의 틀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하여 해왔던 것들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4. 학생부에서 해야만 하는 일들은?

매일 아침 아침 등교시간에 맞추어 학교 밖 주변 신도시 지역을 순찰하여 학생들의 흡연을 사전 차단하고 민원 발생을 막아야 한다. (순찰구역이 도보로 6~7km이다.)

매일 점심시간마다 학교 식당 앞에서 학생들이 교복을 잘 착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고 지도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아이들이 식사를 했으면 학생부 선생님들도 부지런히 식사를 하고 교내 순찰을 통해 흡연을 예방 및 적발해야 한다.(점심시간의 여유가 거의 없다.)

매일 하교시간에 다시 학교 밖 주변 신도시 지역을 순찰하여 학생들의 흡연을 사전 차단해야 한다. 

그 외에 학생부에 하는 학교폭력 업무, 학생 선도를 위한 생활교육윈원회 운영, 교권보호위원회 운영, 학생회 운영 등을 해야 한다. 



5. 예전과 달라진 점은?

예전에 학생부에 있을 때는 학생들에게 기합이나 벌을 주고, 과도하지 않은 체벌도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지금은 학생인권조례에 의거하여 절대 체벌, 벌 등을 주면 안 되며 징계 대상이 될 수 있고 민사소송에 걸려도 교육청에서 지원하지 않는다. 



6. 그러면 어떻게 지도해야 하나?

전임 학생부장은 계속해서 잔소리를 해서 아이들이 듣기 싫어서라도 규칙을 지키게 하라고 조언에 주었다. 그리고 방과 후에 남겨서 지도를 하면 효과는 더 높아진다고 말했다.(방과 후에 남는 것을 아이들이 가장 싫어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남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도망을 가서 생활교육위원회를 통해 징계를 올린다고 해도 큰 효과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선택지가 별로 없었지만 어쨌든 내 선택으로 학생부장을 맡게 되었으니 별 수 없이 감당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이제 학교에서도 선임급이 되어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도 어려운 처지가 되었다. 그냥 묵묵히 참고 아이들 때문에 스트레스받고 힘들어하는 부서원들 격려하면서 때로는 술 한잔 사주면서 버터야 할 듯하다. 그게 선배교사의 역할이니까... 


피할 수가 없으니 즐기려고 한다. 그리고 항상 긍정의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

운동부족으로 살이 많이 쪘는데 날마다 교내외 순찰을 몇 킬로씩 하게 되면 아마 살이 쭉 빠져서 예전의 날씬한 몸매로 돌아가지 않을까 한다. 

귀찮아서 피트니스센터에서 근력운동을 하는 것을 게을리했었는데 이제 필요성을 느껴 좀 더 집중해서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다.(아무래도 벌크 업되면 아이들에게 말발이 먹힌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로 원형탈모가 왔었지만 이제는 자연적으로 탈모 증상이 있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예전에는 학부모들보다 나이가 어렸지만 이제는 같거나 내가 더 많으니까 좀 여유로움이 있다.


그리고 날마다 아이들과 좌충우돌하는 일들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브런치에 적어 브런치 북을 만들어 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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