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님, 숨을 쉬세요. 숨!]
우선 주 3회, 3개월 등록을 했다. '그래, 우선은 한 번 경험이나 해보자!'라는 생각이었다.
친구는 퇴사를 했고, 내가 하는 일은 시간이 유동적이라 우리는 주로 오전 10시부를 갔다.
오전부가 사람도 적당했고 하루의 시작을 운동으로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아침 운동으로 조금 과격하지 않나 싶었지만, 그런 건 기우였다. 아침부터 땀을 쫙쫙 빼고 나니 하루가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인생 처음으로 강도 높은 운동을 하고 나니 한동안은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줄넘기를 시작으로 서킷 트레이닝을 하며 몸에 열을 올렸다. 다치지 않게 스트레칭을 하며 팔, 다리도 충분히 늘려주었다. 비장한 눈빛 장착도 필수! 글러브를 착용하기 전에 먼저 스트랩을 정성스럽게 감아주었다. 감은 스트랩이 운동하는 동안 풀리면 큰일 나기라도 하는 듯. 꼼꼼하게 한 바퀴 한 바퀴. 실뜨기하듯 손등과 손가락 사이사이를 지나 손목까지 감아올렸다.
'잽- 잽- 원투, 원투'
관장님의 구령에 맞춰 큼지막한 글러브를 착용하고 왼손과 오른손을 번갈아 앞으로 뻗고 있자니, 거울 속 내 모습이 너무 웃겨서 입꼬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이름도 생소한 발차기 미트와 손미트. 미트가 무엇인고. 고기인가. 생각하다가 눈앞으로 날아든 숙련자의 잽에 동공이 확장됐다. 정신을 차리자.
킥복싱을 하다 보면 체력뿐만 아니라 머리도 좋아질 것이라 장담한다. 왜냐? 동작 순서와 이름 외우기가 꽤나 어려웠다. 한 번 시범을 보여주셔도 스스로 하려면 잽이 먼저였는지, 훅이 뭐였는지, 왼발이 먼저 나가는지, 오른발 모양은 어떻게 했더라...? 도대체 어퍼랑 훅은 왜 헷갈리는지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관장님이 옆에서 자세를 봐줘도 헷갈리는 건 매한가지... 내가 가야 할 복서의 길은 멀고도 험해 보였다.
이미 다닌 지 오래된 관원분들의 자연스러운 섀도우 복싱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발차기가 부러울 뿐이었다.
서킷 트레이닝으로 너덜너덜 해진 몸을 바닥에 붙인 채 그들의 자태를 입 벌리고 구경했다.
가만 보니 러닝도 그렇고 복싱도 그렇고 자세에 리듬이 있다. 몸에 힘을 줄때와 뺄 때를 잘 익히고 나면 자세도 더 가벼워지고 내 마음도 더 가벼워지는 것 같다. 몇 번의 수업으로 도파민이 사악 돈다. 재밌다.
맨발로 샌드백을 찰 때 나는 소리가 경쾌해서 스트레스 해소가 절로 되었다. 한동안은 발차기 요령을 잘 알지 못해 발등 통증에 시달렸다. 관장님의 1대 1 가르침을 받고, 발등과 발목으로 이어지는 쪽으로 넓게 샌드백을 차야 아프지 않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꼬박 2개월이 걸린 것 같다. 단순한 동작 하나도 익숙해지고 아프지 않게 운동하기까지 인내심도 필요했다. 그리고 맷집은 맞아야 늘었다. 처음에는 아팠던 동작도 익숙해지니 아프지 않았다. 멋있는 다른 이들을 보면서 마음만 앞서니 될 것도 더 안된다. 나는 나대로, 이제 배우는 입장이니깐, '하나하나 천천히'의 마음을 가질 필요가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도 열정이 타올라 친구와 발차기를 더 하다가 가기도 했다. 온몸에는 땀이 한 바가지 흐르고, 발등은 어느새 빨개져 있었지만, 그런 나의 발등을 보는 게 뿌듯했다.
해보고 싶던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와 함께 하고 있으니 더없이 행복한 오전 운동시간.
마치 같이 고등학교를 다니며 기다리던 체육 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관장님을 잘 만났다는 것도 운동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요인 중에 하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장소와 사람을 잘 만나는 일이 운동에도 적용되다니. 나는 운이 참 좋다고 긍정 회로를 돌렸다.
몸은 엄청 힘든데, 운동을 마치고 나면 기분이 너무 좋았다. 근데...! 이게 무슨 일인지?!!
덩달아 몸무게도 늘었다...? 말이 안 된다며 고개를 젓고 있는데, 체육관 밴드에 올라온 글이 보였다.
"운동에 적응하는 단계에서 인체가 운동에 대비해 체액과 영양소등을 비축하는 과정 초기에만 나타나는 현상"
오호라, 고강도에 운동이 태어나서 처음인지라 나의 몸도 많이 놀랐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돌아보니 이 현상뿐만 아니라 힘들어서 운동 끝나면 많이 먹기도 먹었다....ㅎ 어쩌면 그게 이유였을지도 모르지만, 친구와 "우리 몸이 킥복싱에 적응 중인가 봐"라며 안심을 했다.
그날은 양심상 친구와 복싱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샐러드 가게에서 건강한 점심을 먹어주었다.
덧붙이기)
복싱을 시작했을 당시 새로운 일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힘든 상태였다. 평소의 나라면 복싱 무료 체험만 해보고 말았을 텐데, 용기 내서 3개월 등록한 그때의 나 자신에게 칭찬해주고 싶다. 마음이 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 아닐까. 덕분에 힘든 상황으로부터 매몰되지 않고 건강하게 걸어 나와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운동 하나가 있다는 사실이 때로는 삶에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