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정.

 그냥 늘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 뿐이다.

모두는 각자의 어떠한 사정을 갖고 살아가고 있음을 알기에.

나 역시 그런 인간 중 한 사람으로서 그저 '어떤 사정'을 갖고 있는 것이기에.

남들이 속속들이 알지 못하는 그런 어떤 사정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기에.

받고 싶지 않은 이의 이름이 휴대폰 화면 한가득을 채우며 벨이 울린다.

그런 이의 이름을 보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던 사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끄럽게 울리던 벨소리는 이내 뚝 끊겼다.

영영 안 볼 사이는 아니기에, 사람 인연이라는 것이 실 오라기 끊어내듯 그렇게 잘라낼 수 없음을 알기에.

언제고 다시 연락을 해야겠지만... 

오늘 그 전화를 받으며 반가운 척,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하고 싶지도,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가끔은 그런 진심이 아닌 내 모습이 싫을 때가 있어서, 굳이 지금은 그런 식으로 나를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네가 어떤 모습으로 사는지 궁금하지 않다. 너의 삶이 어떤 모양으로 흘러가는지, 그 사람을 만나 네가 얼마나 좋은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지 않다. 

난 오늘도 내가 처한 상황만으로 충분히 벅찼기에. 내 감정만으로 이미 내 에너지는 고갈되었기에.

한참만에 연락해서 안부로 위장한 너의 인사는 결국 너의 자랑이었으니깐. 늘 그랬으니깐.

뭘 그렇게 자랑하고 싶은 건지. 뭘 그렇게 알리고 싶은 건지. 그렇게 하면 너의 마음이 조금 더 나아지는지.

모두들 각자가 다른 일상을 살아간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더욱 각자가 처한 상황에 대해 알 수 없으므로 함부로 말할 수 없다.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자랑이 될 수도 있고, 나의 고민거리가 누군가에게는 짐이 될 수 있음을 안다.

삶의 시간들이 점점 쌓여가면서 가능한 말을 줄였다. 좋은 감정들만 남기고 싶었다.

긁어 부스럼이 될 만한 행동들은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좋은 감정만 나누다 가기에도 시간은 충분히 짧으니깐.

내 기분에 따라 상대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도 않고, 나 역시 상대 기분에 따라 내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왜 난 여전히 관계가 힘들까. 

다 초월하고 마음 편히 살고 싶은데, 내 일상도 그렇게 편하게 흘러가지가 않는다.

그래서 난 오늘도 조용히 일기장을 펼쳐 들었다. 한바탕 적어내고 나면 마음이 나아질까 해서.

진심으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만 남기고 싶은 욕심만 자꾸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