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혼이 깨어 있을 때의 빛

by 남상석

임마누엘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 마음을 늘 새로운 경탄과 경외로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머리 위의 별이 총총한 하늘, 그리고 내 안의 도덕법이다.”

그가 말한 도덕법은 바로 “양심(conscience)”이다. 양심은 사람의 내면에 자리한 나침반이다.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는 이 내면의 빛을 존중하는 사회적 약속이다.

개인을 지키는 양심

양심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게 하고, 잘못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며, 진실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끈다. 우리는 이 작은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 자신을 지키고,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세운다.

시민들의 양심

양심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의 질서를 세운다. 시민들의 양심이 모여 자유와 정의 같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탱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경제를 가능하게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뜻을 따르지만, 다수의 결정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나치 독일의 사례처럼, 다수가 선택한 길이 오히려 소수를 억압하거나 불의를 정당화한 경우도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런 역사의 교훈을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양심에 반하는 것은 아무리 다수의 동의가 있더라도 옳지 않다.”

그의 말은 사회적 합의보다 더 근본적인 판단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를 일깨운다.

양심과 신앙

양심은 신앙의 뿌리이기도 하다. 우리는 양심으로 신을 인식하고, 신앙을 고백하며, 삶 속에서 그것을 실천한다. 그래서 신앙과 양심은 함께 보호받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항상 신과 사람 앞에서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쓴다.”

그가 말한 ‘깨끗한 양심’은 신앙의 중심에 선 평화였다. 베드로 또한 “선한 양심을 가지라”라고 말하며 그 의미를 잇는다. 이 두 사람의 말은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깨끗한 양심은 신앙의 밭이요, 내면의 평화를 키우는 토양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양심은 인간이 신과 홀로 만나는 가장 은밀한 성소다.”

이 말처럼 양심은 도덕 판단의 차원을 넘어, 혼이 신과 마주하는 가장 깊은 자리이다.

양심과 교육

양심은 타고나는 본성이 아니라 길러지는 능력이다. 어릴 때부터의 교육과 경험이 쌓여 양심의 방향을 정한다. 이기심이나 죄책감, 교만 같은 내적 충동을 이겨내고 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힘은 결국 ‘선한 양심’에서 나온다. 그래서 인성 교육이란 곧 양심을 깨우는 일이고, 신앙 교육 역시 그 뿌리를 양심에 두어야 한다.

양심과 경제

양심의 작동은 경제의 영역에서도 드러난다. 첨단 기술로 운영되는 아마존의 무인 매장은 수많은 센서와 카메라로 소비자의 행동을 감시하며 자동으로 결제한다. 반면 한국의 ‘양심 가게’들은 주인의 부재 속에서도 손님이 스스로 값을 치르고, 놀랍게도 대부분 정직하게 운영된다. 이 차이는 분명하다. 기술이 질서를 만든다기보다, 신뢰가 질서를 지탱한다. 그리고 그 신뢰의 근원은 양심이다.

양심은 사람을 바르게 세우고, 사회를 단단히 엮으며, 경제의 투명성을 높인다. 무엇보다 양심이 살아 있을 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가 숨 쉬고, 혼은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결국 양심은 혼이 깨어 있을 때 비추는 빛이다. 그 빛이 꺼지면, 아무리 밝은 세상에서도 우리는 길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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