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람은 필요한 만큼 가져도 만족하지 못할까? 아무리 채워도 허전한 마음, 우리는 그것을 욕심이라 부른다. 국어사전은 욕심을 “분수에 넘치게 무엇을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라 정의한다. 옛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메운다.”
더 가져도 만족이 없고, 더 누려도 목마르다. 욕심은 한 번 불이 붙으면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불길과 같다.
자연에서도 욕심의 본능은 파괴를 낳는다. 사자 수컷은 이미 충분한 영역을 차지하고도 더 많은 암컷과 새끼를 거느리기 위해 다른 수컷을 공격한다. 그 과정에서 무리가 흩어지고 새끼들이 희생되기도 한다. 생존을 넘어서는 과도한 탐욕이 결국 생명의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다. 자연뿐 아니라, 우리 전통 이야기 속에서도 욕심은 늘 파멸을 부른다. 놀부가 형 흥부의 복을 시기하며 더 큰 부를 탐하다가 화를 자초한 이야기는 그 대표적 사례다.
현대 사회의 욕심욕심은 시대를 넘어 반복된다. 1980년대 미국의 투자자 이반 보에스키는 UC 버클리 졸업식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욕심은 옳고 건강하다. 당신들은 욕심을 부리면서 자신에 대해 좋은 기분을 가져야 한다.”
이 발언은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이렇게 각색되었다.
“욕심은 좋은 것이다. 욕심은 옳다. 욕심은 작동한다.”
당시 사람들은 그 말에 열광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보에스키는 내부자 거래 혐의로 구속되었고, 그의 명예와 삶은 무너졌다. 욕심은 잠시 성공을 주는 듯했지만, 결국 그를 삼켜버렸다.
이 이야기는 결코 한 시대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는다. 2022년 한국의 루나·테라 사태가 그랬다. 단기간의 고수익을 약속하며 사람들을 끌어들였지만, 불안한 구조는 오래 버티지 못했고, 폭락과 함께 수많은 투자자들이 절망 속으로 떨어졌다. ‘새로운 기회의 땅’이라 믿었던 약속은 한순간에 허상이 되었고, 그 끝에는 상실과 침묵만이 남았다. 욕심은 언제나 비슷한 형태로 돌아오지만, 남기는 흔적은 늘 같다.
많은 이들이 자본주의를 “욕심을 정당화하는 체제”로 오해하지만, 그 근본정신은 탐욕이 아니라 신뢰와 책임이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장은 단순히 부를 분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를 바꾼다.”
그의 말처럼 시장은 단순한 거래의 장이 아니라, 인간이 가치와 의미를 주고받는 공간이다. 윤리적 소비와 사회적 기업의 움직임은 이를 잘 보여준다.
아름다운 가게: 기증받은 물품을 판매해 수익을 나누고, 환경 보호와 나눔 문화를 확산시키는 한국의 대표적 사회적 기업
그라민은행: 방글라데시에서 무하마드 유누스가 시작한 소액대출 금융 모델, 빈곤층 자립을 돕는 사회혁신의 상징
페어트레이드 운동: 제3세계 농민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보장하여, 소비가 곧 연대와 신뢰가 되도록 하는 국제적 협동 운동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자본주의의 힘을 욕심에서 찾지 않는다. 그는 “사피엔스(Sapiens, 2014)”에서 자본주의가 성장한 동력은 탐욕이 아니라 신뢰라고 강조한다.
“자본주의의 힘은 탐욕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그가 든 구체적 사례는 모두 집단적 신뢰가 있어야 작동하는 것들이다.
종이돈과 디지털 화폐: 그 자체로는 종잇조각과 숫자에 불과하지만, 모두가 믿기에 가치를 갖는다.
은행과 신용 제도: 미래에 대한 약속과 신뢰가 무너지면 금융 시스템 전체가 붕괴한다.
글로벌 브랜드(코카콜라, 구글 등): 수십억 명이 그 가치와 이미지를 믿기 때문에 세계적 영향력을 유지한다.
샌델과 하라리의 통찰은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 자본주의는 개인의 욕심을 정당화하는 장치가 아니라, 가치와 신뢰라는 공동체적 토대 위에서만 건강하게 작동할 수 있는 체제라는 것이다.
욕심(greed)과 욕구(desire)는 닮았지만 다르다. 욕구는 생을 움직이는 자연스러운 에너지지만, 욕심은 그 에너지가 통제를 잃은 상태다. 욕구는 성장을 낳지만, 욕심은 균형을 무너뜨린다. 욕심은 사회의 가치를 왜곡하고 신뢰를 허문다. 그러나 제자리를 지킨 욕구는 사람과 공동체를 살아 있게 한다.
앞서 본 샌델과 하라리의 지적은 이를 잘 보여준다. 욕심은 사회의 가치를 왜곡하고 신뢰를 허물지만, 제자리를 지킨 욕구는 공동선과 신뢰를 세우는 힘이 된다.
오늘 우리의 내일을 만드는 힘은 욕심이 아니라, 가치와 신뢰를 지키는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