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를 채우는 법 ― 만족의 철학

by 남상석

왜 우리는 피곤해도 아침마다 일어나 출근할까? 아이스크림 하나에 울던 아이, 합격자 발표에 잠 못 이루던 어른. 우리의 모든 움직임에는 이유가 있다. 보이지 않는 동기, 바로 욕구 때문이다.

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Abraham Maslow)는 사람의 행동을 이끄는 힘을 ‘필요(needs)’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는 인간이 여러 단계의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차례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생리적 필요, 안전, 애정과 소속감, 존중, 자아실현,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기 초월이 그것이다. 욕구란 이 필요를 채우고자 하는 마음이다. 결국 “나는 왜 일어나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이 욕구의 사다리를 이해해야 한다.

욕구는 단계적으로 자란다.

가장 아래에는 생리적 욕구가 있다. 배고픔과 목마름, 잠의 필요처럼 삶을 유지하는 기본적 힘이다. 이것이 채워져야 다른 욕구가 싹튼다. 그다음은 안전의 욕구이다. 오늘과 내일이 위협받지 않을 때 사람은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그 위에는 애정과 소속감의 욕구가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감각, 누군가의 관심과 돌봄을 느낄 때 우리는 살아 있음을 체감한다. 이후에 오는 존중의 욕구는 사회 속에서 한 인격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바람이다. 존중은 자존감을 세워 준다.

그 다음은 자기실현의 욕구다. 배우고 도전하며 잠재력을 펼치고 싶은 마음, 자신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다. 마지막 단계는 자기 초월(self-transcendence)이다. 개인을 넘어 사회와 인류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 “나”를 넘어 “우리”를 향한 사랑이다.

매슬로는 욕구가 하위 단계에서 상위 단계로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배고픔이 해결되고 안전이 보장될 때 공부할 마음이 생기고, 자기 존중이 채워질 때 사회봉사에 눈을 뜬다. 가장 높은 단계인 자기 초월은 자기실현을 경험한 뒤에야 가능하다.

다산의 “원욕(願欲)”

조선의 사상가 다산 정약용은 인간의 욕구를 ‘원욕(願欲)’, 즉 바라는 마음이라 불렀다. 그는 “백성이 이(利)를 좇는 것은 물이 아래로 흐름과 같고, 해(害)를 피하는 것은 불이 습기를 피하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다. 욕구란 억눌러야 할 악이 아니라, 물과 불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뜻이다. 욕구는 생명의 본능이자 자연의 질서와 닮아 있다.

욕구는 본능을 넘어선다

여기서 분명해진다. 인간에게는 단순한 배고픔 같은 생리적 욕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순한 육체가 아니라, 사랑과 소속감, 존중과 봉사를 갈망하는 영적 존재다. 욕구(desire)는 단순한 생존 신호가 아니다. 삶을 성장시키는 에너지다.

매슬로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단순히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될 수 있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이 말처럼 욕구라는 단어 자체는 부정적이지 않다. “필요”라는 말이 중립적인 것과 같다. 문제는 욕구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채우느냐다.

욕구는 어떻게 채워야 할까?

욕구를 채우는 방식은 곧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잘못 채우면 파괴가 되고, 바르게 채우면 성장으로 이어진다.

영화 ‘대부(The Godfather)’에서 마이클 코를레오네는 처음에는 가족 사업을 멀리하려 했다. 그러나 권력과 유산을 지키려는 욕망에 이끌려 결국 폭력의 세계로 들어간다. 영화는 야망과 탐욕이 어떻게 사람을 도덕적 타락으로 몰아가는지를 보여 준다.

일상의 예도 있다.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말 대신 울거나 소리 지름으로 표현한다. 의사소통을 배우지 못하면 욕구는 폭력이나 문제 행동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말로 욕구를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어른도 다르지 않다. 정당하게 일해서 번 돈으로 원하는 것을 사고, 휴가를 가야 한다. 배우지 못했다면 지금이라도 시작하면 된다.

욕구와 욕심의 차이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욕구(欲求)”는 가치중립적이다. 그러나 “욕심(慾心)”은 다르다. 욕구가 방향을 잃고 자기만을 위해 과도하게 커지면 욕심이 된다. 욕구는 나와 공동체를 살리는 힘이지만, 욕심은 결국 나도 해치고 남도 해친다.

결론적으로, 욕구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삶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욕구는 성장을 이끄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고, 파괴로 이어지는 욕심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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