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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희 Dec 20. 2023

나만의 숙취해소 특급비법

17.

 한 점에 한 잔을 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약속을 잡는 것에서부터 시작을 한다. 맛있는 안주를 고르고 골라 먹고 싶은 술을 먹으며 근황을 묻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진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따라오는 숙취의 유무에 따라 그 전날밤의 술자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술을 먹는다는 건 그다음 날의 컨디션까지 한 덩어리라고 표현해야 하지 않을까. 적당한 음주와 좋은 분위기 다음날의 컨디션까지 완벽해야 한 점에 한 잔에 진정한 마침표를 찍었다고 할 수 있다. 흥에 너무 취해 술과의 신경전에서 밀려나게 되면 다음날 숙취에 완전히 녹다운되어 버린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렇게나 술을 좋아하는데 숙취가 있냐고? 그렇다. 애석하게도 나는 숙취가 있다 못해 정말 심한 편에 속한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가장 부러움을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숙취가 없는 사람이다. 내가 자주 느끼는 숙취는 두통, 매스꺼움, 구토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두통은 정말 머리가 깨질듯한 통증에 누워있어도 앉아있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그 순간에는 정말 죽을 것만 같다. 술을 많이 먹은 다음날 두통만 없을 수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겠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다.


 처음 술을 마시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숙취가 심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술을 사랑하기에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십 년 넘게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는 시도와 도전 끝에 나는 나만의 숙취 없이 즐겁게 술을 마시는 방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물론 상황에 따라 이 방법을 매번 지키지는 못해서 숙취를 만나기도 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오늘 여기서 이 얄팍한 노하우만이라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첫 번째. 술을 마실 때는 꼭 국물이 있는 안주 혹은 물과 함께 마신다.

  내가 술을 먹고 숙취가 심한 술은 80%가 소주다. 쓰디쓴 소주를 그냥 계속 마시다 보면 내가 정말 소주가 가득 들어간 병 속에 들어앉아있는 기분마저 든다. 이럴 때 나는 소주를 희석시켜 주는 느낌으로 마실 것을 계속 마신다. 음료수나 물 혹은 어묵국물이라도 소주 한잔을 마실 때 그 두 배정도를 마셔주면 덜 취하는 기분이 들고 술자리를 오래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음날 숙취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두 번째. 술을 섞어 마시지 않는다.

 어렸을 때 멋모르고 소주, 맥주, 막걸리, 와인을 섞어 마시고 다음날 죽음의 숙취를 경험 한 후로는 절대 술을 이거 먹다가 저거 먹다가 하지 않는다. 그날 막걸리로 시작했으면 마지막까지 막걸리여야만 하고 소주로 시작했으면 끝까지 소주로 끝나야만 한다. 마치 내 위장이 하나만 허락해 주는 느낌이랄까. 술은 정말로 한놈만 패야 한다.


세 번째. 좋은 안주와 먹는다.

 내가 맛있는 안주를 좋아하기에 하는 핑계 섞인 말이 아니라. 정말 신선하고 맛있는 안주와 술을 마시면 숙취가 없다. 안주가 맛있기에 자연스레 천천히 한 점씩 음미하면서 먹게 되고 술도 안 취한다. 한 점에 한 잔이 탄생한 이유도 결국은 숙취가 없기 위해 발악한 나의 노력 속에 탄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건 정말 확실한 진리다. 맛있고 좋은 안주는 다음날 숙취가 없다.


네 번째. 좋은 사람과 천천히 즐기며 마신다.

 술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하면서 마셔야 한다. 나쁜 기분으로 안 좋은 이야기를 하며 마시면 술도 더 빨리 취하고 기분마저 좋지 않다. 우리가 술을 마시는 이유가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먹는 것이 아닌가. 좋은 이야기만 하고 즐기면서 마시기에도 바쁜데 나쁜 이야기까지 끄집어 오지 말자. 좋은 사람과 좋은 기분으로 마시는 술은 달고 숙취 또한 없다.


 이외에도 누구나 알고 있는 숙취해소제 미리 먹고 마시기, 잠 많이 자기, 속 안 좋을 땐 다 게워내기, 이온음료 많이 마시기, 등등 정말 괴로울 땐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보아야 한다. 그 죽음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정도로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니까.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까지 술을 마시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랴. 숙취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 행복한 시간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가 즐겨 먹는 해장음식은 무엇일까? 나에게 있어 국가대표 격인 해장음식으로는 라면, 짬뽕, 뼈해장국, 콩나물국밥등이 있다. 대부분 얼큰한 국물을 가지고 있으며 고춧가루가 팍팍 들어가야 자극적이면서 놀란 위장을 내려주기에 충분하다. 간혹 햄버거나 피자 같은 느끼한 음식이 당길 때도 있다. 그날의 해장음식은 그때그때마다 다른 게 생각난다. 매스꺼운 속에서 먹고 싶은 음식이 생각날 리 거의 없지만 딱 한 가지가 생각난다면 그 음식이 오늘 나의 해장음식이 될 것이다. 무엇이든 많이 먹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면서 알코올을 빼낸다면 숙취에 도움이 된다.


 숙취에 관한 이야기만 했는데도 머리가 아파오는 기분이 드는 건 그동안 내가 느꼈던 수많은 숙취의 역사를 돌아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다. 한 점에 한 잔을 쓰면서 숙취와 해장음식에 대해 꼭 한 번은 이야기하고 싶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숙취가 있을 때까지 술을 많이 마시라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숙취 없이 즐겁게 술을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숙취가 심해서 슬프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다행이기도 하다. 숙취가 없었다면 내가 얼마나 간을 혹사시켰을지 상상만으로도 깜깜하다. 어쩌면 신이 나에게 숙취를 준 이유가 다분하지 않을까. 정말 세상은 공평하다니까.


자. 그럼 오늘 숙취의 노하우도 배워갔으니 이번 주말에는 어떤 걸 마셔볼까?




https://headla.it/articles/8fNl9mqj5VLCZYEAuOPfOg==?uid=fafdf5a0a74c4bcd905e6b4169c91f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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