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0시가 넘어서 도착한 남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남편과 나는 상의 끝에 오늘은 일단 시간이 늦었기에 내일까지 호전이 없으면 큰 병원을 가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에 잠자리에 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흘렀을까. 12시가 넘어가는 시간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한별이 보호자시죠? 지금 한별이가 너무 위독해요. 지금 당장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낮에 담당선생님에게 응급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경고를 받았지만 정말 응급전화를 받고 나니 정신이 번쩍 났다. 지금 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한별이를 영영 붙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와 남편은 의식이 없이 미세발작을 하고 있는 한별이를 받아 안고 집과 30분 거리에 있는 큰 병원으로 향했다. 한별이 귓가에 힘내라고. 엄마가 여기 있다고. 끝없이 속삭였지만 한별이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정신없이 상급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한별이를 접수하고 응급처치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담당선생님과의 면담을 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뵙네요. 그래도 한별이 일 년 버텼는데.. 이렇게 뵈어서 속상하네요. 일단 응급처치로 발작은 멈췄는데 또 하는지를 지켜봐야 해서 오늘은 입원을 해야 하고 저희가 옆에서 계속 지켜볼 거니까. 너무 걱정 말고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세요. 연락드릴게요!"
그랬다. 나와 남편은 한별이 곁에서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곁에 있어줄 수도 없다는 게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보다 나를 더욱더 작게 만들었다. 왜 우리 한별이는 아파야만 했을까. 수많은 강아지 중에 하필 우리 한별이여야만 했을까. 아직 4살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아파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 혹시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우리 한별이가 이렇게 아프게 되어버린 건 아닐까.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끝없는 질문으로 내가 나를 옥죄었다. 그렇게라도 이유를 찾지 않으면 납득이 되지 않는 처참한 현실이었다.
다음날 나와 남편은 퇴근 후 한별이를 보러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발작은 멈췄고 오른쪽 눈에 미세발작이 보이지만 이 정도면 괜찮다고. 안정을 취했지만 하루만 더 지켜보고 괜찮으면 퇴원을 하자고. 다만 24시간 이상 발작을 했기 때문에 그 후유증으로 시력을 잃었고 걷는 것도 쉽지 않다고. 시력반응을 해 봤는데 왼쪽 눈에만 10% 정도 시력이 있는 거 같다고. 시력이 돌아올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내가 시력을 잃은 것도 아닌데 눈앞이 깜깜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별이와 눈을 마주치고 같이 웃고 산책하고 뛰어다니던 그 모든 순간을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5분 정도 허락된 면회시간에 유리창 너머로 마주친 한별이는 낯선 모습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눈앞에 있는 우리에게 반응하지 않았고 무기력하고 힘든 표정이었다. 내가 너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해줄 텐데. 한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갑자기 보이지 않는 현실이 얼마나 무서울까. 나와 남편을 얼마나 찾고 있을까. 손을 뻗어서 안심시켜 주고 안아주고 싶었지만 그 간단한 위로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처참한 현실에 할 말을 잃은 우리 부부는 아무 말 없이 둘이서만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찾은 병원에서 이상이 없어 퇴원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추가약을 더 처방받았고 원래 다니던 병원에 자료를 보내드릴 테니 이대로 약을 처방해서 받으라는 조언을 들었다. 그렇게 퇴원하는 한별이를 꼬박 이틀 만에야 안아보았다. 그런데 한별이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채취를 맡아도 그 어떤 반가움도 기쁨도 보이지 않았다. 이전에 했던 교감과 감정표현이라는 걸 모두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한별이가 좋아하던 쿠션에 한별이를 넣어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별다른 움직임 없이 다시 몸을 웅크리고 이내 잠이 들었다.
우리 부부와 한별이는 지금 어느 정도 시기에 와 있는 것일까. 이별의 문턱이 있다면 설마 지금 이 순간일까. 그 문턱을 넘기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내가 노력한다면 그 문턱을 넘기지 않을 수 있는 걸까. 수많은 생각으로 잠들지 못하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