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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희 Nov 13. 2024

6. 밥 먹자 한별아.

  퇴근하고 돌아오면 한별이가 항상 현관까지 마중을 나왔다. 조그만 다리로 내 무릎까지 펄쩍펄쩍 뛰면서 이러다 얇은 다리가 부러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만큼 뛰어대고 내 주변을 뱅글뱅글 어지럽도록 돌았다. 얇고 가느다란 꼬리는 어찌나 방정맞은지 사방으로 흔들다 못해 팽팽 돌아 저대로 날아오르는 건 아닌가 싶었다. 헤헤거리며 활짝 웃는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잠시 외출했다가도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런데 한별이가 크게 아프고 난 뒤 마중을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떨어진 시력은 조금 회복했지만 예전처럼 나를 정확히 바라본다는 느낌은 여전히 없었고 청력과 방향감각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내가 현관에서 들어왔는데 안방문을 보고 짖어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런 격한 마중이 없어도 한별이가 내 곁에 있다는 게 싫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매일 잠이 부족하고 나의 개인적인 시간이 자꾸만 줄어들어도 거실 자기 집 소파에 앉아 잠만 자고 있는 한별이를 1초만 바라볼 수 있다면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한별이가 사라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더 많이 생각했다. 이렇게 내 하루의 모든 일과에 한별이가 있는데 그런 한별이가 사라진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무엇으로 행복을 느끼고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이 긴 세월을 외롭지 않게 덜 슬프게 살아갈 수 있을까. 겉으로는 한별이가 얼마나 힘들까. 얼마나 괴로울까를 말하면서도 그 밑바닥에는 오롯이 나만 걱정하는 내가 있었다. 일단 내가 한별이가 없으면 보고 싶어서 그리워서 죽을 거 같으니까. 한별이가 없는 나는 잘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더 처참한 현실을 외면하고 이 정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도닥였다. 


 그렇게 세 달이 흘렀을까. 우리는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더 많이 여행 다니고 캠핑도 다니면서 추억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조금이라도 좋은 기억을 한별이에게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런 우리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별이는 아주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빗질과 양치를 시켜줘도 싫다는 내색 없이 내 손길을 거부한 적이 없었던 한별이가 몸이 아프고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인지 예민해졌다. 잘하던 세수와 양치도 안 하려고 입질을 했고 3개월에 한 번씩 하던 미용도 잘하는 아이는 아니었지만 완전히 손길을 거부하는 강아지가 되어버렸다. 





 갑자기 예민해져 버린 한별이를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관리하고 싶어서 좋아하는 간식으로 달래 보았지만 자기가 하기 싫으면 싫다고 확실히 표현하고 조금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힘이 들면 그럴까 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면역력도 낮은데 더 아프게 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계속 시도하려고 하면 내 손가락을 깨물어 피가 나는 날도 더러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사료를 주고 돌아서서 설거지를 했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한별이가 사료를 씹어대는 까드득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벌써 다 먹었나 싶어 별생각 없이 슬쩍 뒤를 돌아봤는데 사료에 냄새만 맡더니 한입도 대지 않은 채 자기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스테로이드를 먹으면서 식욕도 엄청나게 늘어났기에 밥을 안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한별이였다. 그런데 갑자기 밥을 안 먹는 모습을 보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하던 설거지를 내팽개치고 밥그릇을 얼굴 앞에 들이밀어 보고 좋아하는 간식도 꺼내서 뿌려보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한별이는 밥도 물도 먹지 않았다. 일단은 우리가 출근해야 해서 없는 동안 먹을 수도 있으니까 사료를 곁에 두고 출근을 했는데 퇴근 후 돌아와 바라본 한별이의 밥그릇은 아침에 준 그대로였다. 걱정되는 마음에 기름기 없는 소고기도 구워서 먹여보고 닭을 삶아서 육수에 사료를 말아보고 별짓을 다 해보았지만 냄새 한 번 맡아보고 이내 한별이는 다시 쿠션으로 돌아가버렸다. 


 그렇게 좋아하던 밥까지 안 먹으면 정말 이제 그만 나를 보내달라고 나에게 애원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너무 미어졌다. 내가 유일하게 해 줄 수 있는 게 정확한 시간에 약을 먹이고 한별이를 보살피는 것이었는데 사료를 먹지 않으면 약을 못 먹으니까 한별이는 정말 위험했다. 다시 연이은 발작은 하게 될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또다시 나는 한별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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