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도착해서 기본적인 검사를 하고 혹시 몰라 엑스레이 촬영도 진행했다. 너무 익숙하지만 이제는 그만 오고 싶은 동물병원 대기실에 앉아 한별이의 이름이 불리길 기다렸다. 불안한 마음에 하루 만에 더 작아진 한별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불린 진료실에서 검사 결과를 들을 수 있었다. 기본적인 검사를 다 해봤는데 스테로이드를 고용량 복용하고 있어서 전체적인 수치가 다 높다. 하지만 그 수치들이 밥을 안 먹게 하는 건 아니다. 지금으로서 가장 의심스러운 건 췌장염인데 정확한 원인을 알려면 정밀 피검사를 한번 더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비용을 떠나서 한별이가 밥을 먹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밥을 안 먹어서 기운이 없는 것도 마음이 아팠지만 밥을 안 먹으면 스테로이드를 복용할 수가 없어서 정말 위급한 상황이 언제라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은 힘들더라도 억지로 약이라도 꼭 먹여야 한다는 처방을 내리셨다. 병원에서 한별이가 좋아할 만한 습식사료와 간식을 몇 개 집어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간절한 마음으로 습식사료에 약을 섞어서 내밀었지만 여전히 한별이는 입도 대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남편이 한별이를 잡고 약을 물에 타서 바늘 없는 주사기에 담아 입에 억지로 넣는 방법을 선택했다.
스테로이드라도 먹지 않으면 정말 지금 당장 발작을 하다가 심장이 멎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얼떨결에 입안에 약을 밀어 넣어 삼켜버린 한별이는 성이 났는지 다 삼켜버린 약을 컥컥거리다 이내 왕왕 짖어댔다. 마치 우리에게 뭐 하는 짓이냐고 화를 내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이틀을 굶었을까. 속이 타들어가던 우리는 정밀 피검사 결과로도 정확한 원인을 알기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이대로는 정말 안될 것 같아서 남편과 반차를 내고 다시 한번 큰 병원을 찾았다. 여러 가지 검사 끝에 다시 한번 큰 원인을 모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식욕촉진재를 먹여보자는 것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식욕촉진재를 처방받아 왔고 한별이에게 다시 한번 억지로 약을 복용시켰다. 이제는 눈치가 빨라져서 남편이 잡으려고만 하면 억지로 먹이지 말라고 짖어대는 한별이었다.
한별이가 물도 밥도 안 먹고 주사기로 약만 먹은 지 사일째 되던 날. 갑자기 한별이가 물을 조금 먹기 시작했다. 반가운 모습에 신이 난 나는 바로 습식사료에 약을 섞어서 쓰윽 내밀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한별이가 밥을 먹기 시작했다. 식욕촉진제가 작용을 시작한 것인지 아니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밥을 안 먹던 한별이는 어느 날 갑자기 다시 먹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은 환호성을 지르며 반가워했지만 이게 과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니까 답답한 마음은 여전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무언갈 서서 하고 있으면 한별이가 조용히 내 곁에 다가와 촉촉한 코를 내 몸에 톡톡 대었다. 마치 나 여기 있다고 나랑 놀자고 나 좀 봐달라는 듯이. 한별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나에게 코로 톡톡 인사를 했다. 처음엔 갑자기 다리에 무언가 차가운 촉감이 들어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그런 상황이 반복되니 한별이가 나에게 다가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과 청각 후각이 모두 예전 같지 않기에 그런 방식으로 나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마치 매일매일이 언제 멈출지 모르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그저 오늘하루 한별이가 밥을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만이 우리의 중요한 안부가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