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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희 Nov 27. 2024

8. 시험관을 해보자

 내 하루의 대부분을 한별이를 케어하는데 시간을 보낸 지 몇 개월째. 어느 날 문득 포기했던 임신을 다시 노력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루하루 보내다가 갑자기 한별이가 내 곁을 떠났을 때 내가 내 정신을 붙잡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은 한별이만큼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나마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한별이가 아픈데 이런 생각을 가진다는 게 어떻게 보면 정말 이기적일 수도 있는데 한별이의 그리움을 다른 강아지로 대체하는 것 보다야 나은 선택지처럼 보였다. 


 물론 한별이를 떠나서 나와 남편의 생물학적 나이도 이제는 너무 많아져 버렸기에 정말 더 이상 늦기 전에 시험관을 한번 시도해 보자고 생각했다. 2년 전에 인공수정 4차를 마지막으로 임신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살았는데 횟수로 결혼한 지 7년. 임신을 준비한 지 5년째 되는 해였다. 이만큼 노력해 봤으면 이제는 정말 마지막으로 시험관이라는 걸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



"여보, 우리 더 나이 먹어서 후회하기 전에... 시험관 한번 해보는 거 어때?"

"그래. 여보가 해보고 싶으면 한번 해보자."



 긴 고민 끝에 남편에게 조심스럽게 의견을 물었는데 생각보다 단숨에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사실 우리 부부는 인위적인걸 싫어하고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기길 바랐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서 우리의 생각도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아이가 없는 삶을 바라는 건 아니기에 최대한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험관을 준비하면서 한별이에 대해 쏟는 힘든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싶었다. 처참한 현실 앞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 내가 싫었다. 희박하지만 희망을 품고 긍정적으로 살아가야 그 기운이 한별이에게도 전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힘들게 마음을 먹고 난임병원에 방문했다. 선생님에게 시험관에 대한 짧은 설명을 들었고 오랜만에 방문했기에 기본적인 검사와 남편의 정자검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생리가 터지길 기다렸다가 생리 이틀차에 병원에 방문해서 과배란을 위한 주사처방을 받았다. 생각보다 전체적인 과정이 난자채취를 한다는 것 빼고는 인공수정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인공수정을 몇 번 해봤다는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 몰랐다.  



 그렇게 시간에 맞춰 배주사를 맞고 한별이를 케어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까. 다시 난임병원을 방문해서 난포가 잘 자랐는지 확인을 했고 난자채취 날짜를 정할 수 있었다. 난자채취날에는 정자와 수정을 시켜야 하기에 남편과 함께 방문하라는 안내를 받고 병원을 나왔다. 하루종일 과배란으로 빵빵해진 아랫배 때문에 불편하게 일하고 퇴근 후 오늘 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해주기 위해 남편과 마주 앉았다. 그런데 어딘가 경직되고 불편해 보이는 남편의 표정에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보다 남편의 이야기를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오늘 병원 다녀와서 할 얘기 있는데... 여보 무슨 일 있어?"

"여보.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 놀라지 말고 들어. 회사에 안 좋은 일이 생겨서 소송을 해야 해. 변호사도 선임해야 하고.. 그래서 내가 지금 경황이 없어. 우리 시험관 하기로 한 거.... 정말 미안한데 조금만 뒤로 미루면 안 될까?"



 하루에 몇 개씩 내 배에 주사를 맞으면서 과배란을 충분히 다 시켜놓았고 이제 채취만 해서 수정만 하면 되었다. 시험관을 마음먹기까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고 충분히 고민하고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에 남편에게 이렇게 안 좋은 일이 생겨버린 것인지. 정말 하늘이 있다면 이건 너무하지 않냐고 왜 그러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온다더니. 점점 기력을 잃는 한별이와 코앞에서 포기해야 하는 시험관. 멘털이 무너지는 남편 앞에서 나는 그 어떤 것도 선뜻 선택하지 못하고 무기력해지고 말았다. 힘든 일상 속에서 시험관이라는 과제를 향해 열심히 노를 저어 가고 있었는데 함께 노를 젓던 남편이 노를 놓쳐버렸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소송이라는 게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단기간에 결정 나는 사항도 아니고 적어도 1년 그 이상의 시간을 쏟아야 하고 정신적, 심리적으로 힘든 싸움이라는 것쯤은 안다.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남편과 나 그리고 한별이에게 최선의 선택일까. 각자 열심히 버티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는데 한꺼번에 모든 것이 다 힘들어진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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