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별이를 처음 데려왔을 때. 만약에 한별이가 나중에 나이가 많이 들어서 우리 곁을 떠나야 할 때가 온다면 한별이가 너무 힘들지 않게 우리가 먼저 편하게 보내주자고 남편과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때는 그 순간이 아주 멀리 있고 우리는 한별이와 오래오래 함께 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기에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모든 감각이 떨어진 한별이를 마주하자 그렇게 약속했던 사실이 무색하게 우리는 아무 생각도 선택도 할 수 없었다.
시각, 청각, 후각이 모두 꺼져버린 불씨처럼 미미하게 남아있는 한별이는 깨어있는 시간에는 하루종일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그러다 넘어지고 다치고 다시 일어서고 돌다가 넘어지고 그러다 지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몸을 말아 잠을 청했다. 그 모습을 하루종일 보고 있자면 나까지 생각이 멈춰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료와 약을 잘 먹기는 하는데 입 앞에 사료그릇을 들이밀어주고 몸을 붙잡아 주지 않으면 똑바로 서서 먹지도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한별이를 데리고 나와 목줄을 한 채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다가 대변을 싸는 날이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혼자 있다가 대변을 보면 밟고 빙글빙글 돌기를 반복해서 온몸에 대변을 칠갑하는 날이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퇴근 후 대변을 온몸에 묻힌 한별이를 샤워시키고 밥을 겨우 먹이고 산책시키고 앉아서 한별이를 마주하고 있으면 하루가 금방 갔다. 샤워를 너무 자주 시켜서 인지 스테로이드 때문인지 건조하고 얇아진 피부에도 문제가 생겼다. 눈 위에서 시작한 딱지는 얼굴의 1/4을 뒤덮었다. 딱지는 아물면 떨어지고 다시 생기기를 반복하면서 털이 없는 부분은 점점 커져갔다.
그렇게 두 달이 흘렀을까. 처방받은 약이 일주일 남았을 때. 문득 아침에 일어나 한별이를 바라봤는데 한별이가 정말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초점 없는 눈으로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모르고 빙글빙글 돌다가 불안하게 멈춰서 있는 한별이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아침저녁으로 하는 의미 없는 산책. 퇴근 후 마주하는 똥파티. 웃지 않는 너의 얼굴과 흔들리지 않는 꼬리를 보면서 어쩌면 나는 진작부터 한별이와의 헤어짐을 예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비참한 현실 앞에서 나와 남편은 서로 어떤 말도 꺼내지 못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다 내가 먼저 남편에게 힘겹게 말을 꺼냈다.
"여보... 우리.. 이제 그만 한별이... 보내줄까?"
"당신이 제일 힘들 텐데. 당신이 보내줄 수 있을 때 천천히 보내줘도 돼."
나에게 한별이가 어떤 의미인지 어떤 존재인지 남편이 제일 잘 알기에. 비참한 현실 앞에서 차마 나에게 먼저 이야기 꺼내지 못하고 있던 남편은 고맙게도 나를 배려하며 말해주었다. 본인도 한별이를 많이 아끼고 사랑하기에 힘들 텐데 그 힘든 순간에 나를 최우선으로 배려해 주고 있었다.
잔디밭을 토끼같이 뛰어다니던 내 사랑 내 강아지 박한별은 내 곁에 온 지 4년 3개월 만에 하루종일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강아지가 되어버렸다. 되돌릴 수 없는 현실 앞에서 가장 괴로운 건 나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한별이가 아닐까. 정말 숨이 끊어질 때까지 붙잡고 늘어지지 말고 어서 훨훨 날아갈 수 있게 손을 놓아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한 달에 들어가는 수십만 원의 약값과 나의 자유시간이 없어져도 정말 괜찮았는데 행복하지 않은 한별이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은 너무 힘이 들었다.
한별이가 없이 행복할 자신은 없지만 행복하지 않은 한별이를 계속 바라볼 자신도 없었다. 우리는 함께할 때 행복했지만 이제는 한별이가 행복하지 않았다. 내가 한별이를 잃고 힘들어하는 게 고통스러워하는 한별이를 지켜보는 것보다야 나아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한별이를 보내주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