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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by 박성희

수원에서 둘째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변한 게 있다면 할 일이 조금 많아졌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나 혼자 살 때는 일주일에 한 번 하던 빨래를 한 번 더 해야 했고, 대충 식사를 챙겨 먹던 나와 달리 아침부터 꼭 밥과 국을 드셔야 하는 동생님을 위해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밥과 국을 해야 했다.


엄마처럼 솜씨가 좋지는 않지만, 기본적인 미역국, 콩나물국, 된장찌개, 김치찌개 등등은 할 줄 알기에 잘하는 것 몇 개를 돌려가며 매일 국과 반찬을 준비해 놔야만 했다. 가끔은 너무 귀찮고 힘들 때도 있지만. 내가 왜 이것을 해야 하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너무 대충 해서 간이 안 맞을 때도 있고 빨래도 엉망으로 해서 동생이 싫은 티를 몇 번 낸 적은 있지만 고맙게도 동생은 잘 적응하며 지내줬다.


큰 월급을 받아오는 것도 아니었고 집안 형편이 좋은 것도 아니었기에 외식이나 배달음식을 자주 사주지는 못해도 내가 늘 꼭 이것만은 해줘야지 했던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음식점에 동생들 데려가기!

나는 처음 수원에 올라왔을 때 친구들이 OOO피자, OO치킨, OO백 레스토랑 등등 이런 누구나 아는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한 번도 못 가본 것이 가장 부끄럽고 창피했다. 친구들의 대화에 낄 수 없었고 그런 곳에 가게 되면 뷔페인지 여기는 무슨 음식이 유명한지 등등 아는 것이 너무 없어서 항상 물어보거나 알아보고 가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이랬지만 동생들에게 이런 수모(?)는 당하지 않게 하리라 하는 나만의 작은 포부가 있었다.

그래서 가끔 막내가 방학 때 수원에 놀러 오거나 엄마랑 같이 수원에 올 일이 생기면 나는 무조건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데리고 갔다. 나의 깊은 뜻을 알 리 없는 동생들은 왜 맨날 이런 거 먹냐고 툴툴거릴 때도 있었지만 나는 혼자 뿌듯해했다. 내 돈 쓰는 데 나만 좋으면 된 거 아닌가. 나는 지금 절대 내가 먹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는 변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항상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둘째도 시간이 흘러 입시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왔다. 나는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었지만, 치위생과를 선택했다. 하지만 동생들만큼은 자신이 하고 싶은 과를 갔으면 했다. 그래서 내가 동생에게 물었다.



“무슨 과를 가고 싶어?”

“음.... 나는 화학과를 가고 싶어!”



수원에 올라와서 힘들었지만, 적응도 잘했고 성적도 꽤 괜찮았기에 가능성은 충분했다. 문제는 엄마였다. 나만 희생하면 되었지, 동생들까지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능한 사람은 만들고 싶지 않다고 엄마는 완강했다. 엄마는 한여름에 태어난 용띠였다. 으 생각만 해도 무섭다. 고집이 얼마나 강한지 뭐 하나 엄마 맘대로 할 수 없는 건 없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지만 우리 엄마 이기는 사람은 못 봤다. 졌다 졌어.


내가 치위생과를 갔기 때문에 동생들도 전문직이(둘째는 치기공사, 막내는 물리치료사) 돼버린 건 아닌가 하고 미안할 때가 있다. 한 번은 술에 취해 동생들에게 나 때문에 전문직으로 가게 해서 미안하다고 진심으로 사과한 적도 있다. 동생들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우리가 인생을 누나 때문에 정하진 않는다고 매정하게 말하긴 했지만, 혹시 다음 생이 있다면 이대로 동생들도 엄마도 똑같이 태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금보다 조금만 더 행복하게 살아보고 싶다.


아 그때는 내가 막내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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