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힘자랑하기 좋아하는 두 사내가 있었다. 두 사내는 천하제일의 영웅을 가려내는 시합을 했다. 첫 번째 시합은 무거운 돌을 들어 올리는 것이었는데 둘 다 똑같은 바위를 들어 올렸다. 두 번째 시합은 돌을 멀리 던지기였다. 이번에도 두 사내는 똑같은 거리만큼 돌을 던졌다. 결론이 나지 않자 돌을 들고 물속으로 들어가 누가 늦게 나오나를 시합하기로 했다.
이 소문이 퍼지자 사내의 아내들은 닭이 울지 않기를 바라며 닭의 목을 꼭 누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침이 밝았고, 닭은 아침을 알리는 외침을 울었다. 두 부인은 닭의 울음을 듣고 놀라서 그만 죽고 말았다.
뒤늦게 두 사내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내를 장사 지내주었는데, 그 자리에 달개비 꽃이 피었다.
시골에서 자랄 때는 너무나 흔해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밭 주변 언저리나 개울가에 수없이 피었다. 밭에는 조금만 돌보지 않아도 지천으로 피어 있던 꽃이다. 하찮게 여길 정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닭의장풀이라고 해서 그저 채소와 곡식을 괴롭히던 풀일 뿐이었다.
그런데 도시에서 만난 달개비꽃은 어찌 된 일인지 한번 눈에 들어오니 자꾸 관심이 간다. 시골에서 만날 때는 그저 잡초에 불과했다면 도시에서 만나니 희귀한 꽃이 되었다. '닭의장풀'보다는 '달개비꽃'이라는 이름이 훨씬 잘 어울리는 도시꽃 같다. 달개비꽃이 이렇게 예뻤나?
달개비꽃은 생김새가 독특하다. 두 개의 파란색 꽃잎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다. 엄밀히 말하면 헛꽃잎이다. 실제 꽃잎은 파란색 꽃잎 아래 연한 흰색으로 4장이 있다. 하얀 면사포를 쓰고 있는 듯하다. 작고 연한 색이라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쪽빛 꽃잎은 어찌 보면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나는 듯하다.
쪽빛 꽃잎 가운데 부분에서
노란색 헛수술(곤충을 유인하기 위한 수술로 꽃가루는 묻어 있지 않다) 4개가 있고, 아래 갈색 머리를 하고 있다. 길이는 4~5cm정도로 수술 대여섯 개(수술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와 암술이 자리하고 있다.
그 모습이 여느 꽃과는 사뭇 다르다.
고개를 당당히 치켜뜨고 너무나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어사화를 쓴 것 같다. 벌들은 얼굴을 활짝 열고 있는 꽃에게 쉴 새 없이 날아든다.
또 몇몇 꽃들은 푸른색 꽃잎이 나비 날개를 접듯이 하나로 접어서 얼굴을 가리고 수술과 암술을 치마폭에 감싸듯 하고 있다. 얼굴을 보려고 애써도 보여주지 않는다.
달개비꽃은 아침에는 꽃잎을 활짝 열고 저녁때는 시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서양에서 ‘dayflower’라고 부른다.
꽃을 사진에 담으니 파란색 꽃잎의 색깔은 푸른 하늘을 닮기도 하고 바다빛을 닮기도 했다. 작은 꽃잎 속에 하늘과 바다를 담았으니 작은 꽃에 어떤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떤 분은 꽃모양을 보고 '쪽빛나비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고 했다. 또, 이를 김춘수(1922~2004년) 년) 시인은 마지막 시집(현대문학, 2004)에서 「달개비꽃」을 이렇게 표현했다.
울고 가는 저 기러기는
알리라,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
울지 않는 저 콩새는 알리라,
누가 보냈을까,
한밤에 숨어서 앙금앙금
눈 뜨는,
달개비 잎은 길이가 7~8cm 되며, 윤이 난다. 잎이 무성하고 줄기 마디에서 마주 보며 자란다.
줄기는 마디마디에서 새로운 줄기가 나온다. 달개비 줄기는 대나무처럼 마디에서 자란다. 줄기 아랫부분은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기도 하는데 땅을 기면서 마디에서 뿌리를 내린다. 자라는 속도가 빨라서 개울가나 밭에 자라기 시작하면 금방 온통 달개비로 가득 찬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달개비는 농촌에서는 귀찮은 존재였다.
뿌리째 뽑아서 한쪽에 밀쳐두면 잎이 마른다. 얼마 후 마디에서 뿌리가 자라며 다시 달개비가 자란다. 농가에서는 정말 귀찮은 풀이다. 몇 개 보이는가 싶다가도 전방이 금방달개비 천지가 된다.
달개비는 한해살이풀로서 어린잎은 나물로 먹었으며, 남색으로 물들이는 염료의 원료로도 사용했다고 한다(직접 먹거나 염료로 사용해 본 적은 없다). 식물전체는 항산화제 성분이 있으며, 한방에서는 약제로 열을 내리고 당뇨병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한때는 당뇨병에 특효라고 과장되게 알려져서 달개비가 수난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달개비를 도시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파트와 학교의 담벼락 사이로 삐죽 고개를 내민 달개비꽃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공원의 화단에도 달개비꽃이 무성하다. 그동안은 관심이 없어서 보지 못한 것인지 눈에 띄지 않은 것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달개비꽃과 자주 만나게 되는 출근길 혹은 산책길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