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합은 늘 꽃가게에서만 존재하던 꽃이었다. 유독 향이 강한 백합은 다른 모든 꽃들의 향을 흡수한다. 백합향에 쉬이 취하지만 선뜻 손에 집어 들기는 어려운 꽃이다. 꽃가게에만 존재하던 백합을 길거리 화단에서 만나니 하얀 옷을 입은 천사가 내려앉은 것 같다.
어릴 때 들었는데 가장 아름답게 죽는 방법은 백합을 방안 가득 놓고 자는 것이라는 자극적인 말이 있었다.
백합은 향이 얼마나 강한지 한송이만 피어도 한 공간을 가득 채운다. 그래서인지 백합은 은근히 환상적인 혹은 몽환적인 느낌이 있다.
백합은 아이 키보다 더 크게 자란다. 꽃집에 절단되어 화병에만 놓인 백합을 보다가 이렇게 크게 자란 백합을 보는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지난 회차에 썼던 참나리꽃도 백합과에 속한다. 참나리꽃과 닮았는데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흰 백합은 그리스 신전에나 있을 법한 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 산천에서는 나리꽃 같은 주황빛 백합과 가 주를 이루고 흰 백합은 자주 보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백합은 여러해살이풀로 속명의 Lilium은 라틴어 ‘li(희다)’과 ‘lium(꽃)’의 합성어다. 원산지는 지중해 동부인데 세계각지에서 자란다. 주로 서늘한 그늘에서 잘 자란다. 품종은 80여 종에 이르며 주로 북반구 온대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키는 1~1.5미터까지 자란다. 꽃잎이라 알고 있는 화피(꽃받침과 꽃부리를 통틀어 이르는 말)는 6조각으로 갈라진다. 화피에는 하얀 점이 콕콕 박혀있다. 꽃 길이는 15~18cm로 꽤 크다. 큰 나팔모양을 하고 있다. 꽃잎 끝 부분에서 약간 뒤로 젖혀진다. 아마 꽃집에서 파는 꽃 중에서 크기로 보면 둘째 가라 서러울 정도다. 수술은 6개이고 꽃가루를 만드는 꽃밥은 주황색으로 수술머리에 모자를 쓴 지팡이처럼 달린다.
꽃잎은 줄기에 마주나기로 자라며 참나리와 마찬가지로 바소모양으로 길이 10~18cm다. 잎맥이 세로로 예닐곱 개가 있으며 잎표면은 반질반질하다. 엽병(잎자루)이 없어서 잎몸과 줄기가 바로 연결되어 있다.
화단에 백합은 줄기의 아래쪽은 직경이 2~3cm로 튼튼해 보였지만 키가 훌쩍 자라서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듯하다. 지지대를 세우고 묵어주지 않아서 쓰러지기도 하고 곁에 다른 나무를 의지하여 서있기도 하다.
꽃이 지고 난 후의 백합은 꽃대만 남았다. 꽃대만 남은 백합이 그 여운을 이기지 못하고 하늘을 향한 듯하다.
백합꽃의 크기와 화려함에 반하고 그 향기에 취하다가 줄기와 잎을 보는 것도 새삼 즐겁다. 꽃집의 백합은 꽃꽂이로 작은 화병에 담겨 있어서 향기와 꽃만 보이는데 화단에 핀 백합은 뿌리를 제외한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으니 꽃을 즐기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다.
백합은 진한 향기 덕분에 예로부터 에센셜 오일로 많이 사용해 왔다. 오일에 절인 꽃잎은 습진을 치료하며 사업용 향수를 제조할 때 쓰이기도 한다. 구근은 양파모양을 하고 있으며 요리로 먹는다. 백합 구근을 먹어본 적은 없다. 점액성분은 화장품으로 이용하거나 화상, 뾰루지, 여드름에 바르는 연고에 사용하기도 한다.
백합은 약제로 사용하는데 스테로이드 사포닌, 알칼로이드, 페놀성 화합물을 합유하고 있다. 진해, 거담, 진정, 최면, 항피로. 노화억제, 항산화, 항종양, 면역력 증강, 혈당강하 등의 작용이 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 들어 있다. 지금부터 백합을 찾아 먹어야 하나 할 정도다.
종자는 삭과로 길이가 6~9cm로 긴 타원형이며 수명은 보통 3년이다. 꽃이 진 자리에 종자는 눈에 띄지 않는다. 나중에 다시 찾아봐야겠다.
백합 키우는 방법은 구근을 10~12월에 심으면 봄에 잎이 나고 6~8월에는 꽃을 볼 수 있다. 배수가 잘되고 충분한 햇빛을 보도록 하며 중성이나 약산성 토양에서 잘 자란다.
백합 꽃말은 순결, 순수한 사랑, 변함없는 사랑이다. 꽃말은 전설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백합꽃의 전설의 여러 가지가 있다.
에덴동상에서 추방된 이브가 자신의 죄와 낙원을 잃고 한탄하며 울었을 때 이브의 눈물이 땅에 떨어져서 백합꽃으로 변했다고 한다.
기독교에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예수 탄생을 알리기 위해 마리아의 순수함과 하느님의 상징으로 하얀 백합을 들고 있다고 하여 백합을 '성모의 꽃'이라 이르기도 한다.
독일에서는 아이리스라는 예쁜 소년가 어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성주가 소녀를 데려갔다. 이리스는 성모마리아 앞에 기도를 하였고 그 순간 아리스는 사라지고 백합으로 피었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와 인간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헤라클레스를 헤라가 죽이려다 자신의 아들로 받아들이고 품었다고 한다. 헤라는 주걱으로 가슴에서 젖을 떨어뜨렸으며 헤라의 젖이 땅에 떨어져 백합으로 변했다고 한다.
흰 백합은 서양전설이 많은 것을 보면 어쨌든 서양꽃인 것 같다. 서양에서 백합은 오랫동안 종교의식, 결혼식, 장례식등 두루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중요한 행사에 꽃꽂이용으로 많이 활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중요행사나 꽃집에서만 볼 수 있던 꽃을 동네 상점 화단에서 만나니 어느 여인네의 향기가 오래도록 온몸에 남은 것 마냥 곱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