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와 감자튀김, 음료로 점심을 먹었는데 꽤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함부르크 본격적인 투어에 앞서서
딸이 우리나라의 올리브영과 비슷한 디엠(dm)에서 사야 할 것이 있다고 해서 가게로 들어갔다. 구성이 올리브영과 비슷하여 꽤 익숙했다. 나도 얼굴에 바르는 크림을 안 가져온 것 같아서 화장품을 하나 샀다. 나중에 캐리어에 들어있던 화장품을 찾긴 했다. 튜브형이라 얼굴이 아니라 핸드크림처럼 보이지만 얼굴에 발랐을 때 향이나 촉촉함은 오래가고 좋았다. 독일 어디를 가도 볼 수 있는 디엠(dm)은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도 괜찮았다. 지인들 선물도 디엠에서 샀다.
함부르크의 첫 관광지는 시청사(Hamburg Rathausmarkt, 1897년)였다.
시청사는 마틴 할러와 빌헬름 하우어가 건축한 높이 112m에 7,840평방미터 규모로 꽤 크고 넓다. 건물이 화려하고 웅장하고 거대하다. 1842년 함부르크 대화재 때 건물이 전소되어 1897 다시 지었다고 한다. 완공까지 44년이 걸렸고 지금의 가치로 8천만 유로(한화 1200억)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청동장식이 탑꼭대기에 있는데 청동 장식은 독일 여행 중 궁궐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다. 독일의 옛 왕들이 좋아했던 것 같다. 시청사도 마치 궁궐처럼 고풍스럽다. 시청사에는 1897년 이래 120년 넘게 공무원들이 공무를 보고 있고 현재는 함부르크 주정부와 주의회의 보금자리이다. 런던의 버킹엄 궁보다 많은 방이 647개 있다고 한다. 시청사가 궁궐처럼 생겨서 옛사람들이 있을 것 같았다. 1층은 주로 관광객이 드나들고 2층부터는 출입이 제한되어 있어서 시청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건물은 네오르네상스(19세기 유럽에서 있었던 15세기 르네상스 건축 양식의 부흥 건축, 19세기 후반 영국과 미국에서 유행) 양식이다. 전면부에는 길게 건물이 있고 가운데는 높은 탑이 있으며 시계와 주깃발이 꽂아있다. 출입문 위 2층 창문 위에는 함부르크의 수호여신 함모니아(Hammonia) 여신상을 모자이크로 새겨 두었고 그 위로 라틴어로 "조상이 지켜온 자유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라!"라는 문구가 황금색으로 적혀있다. 파사드(건물의 중요한 전면)는 카를대제부터 프란츠 2세까지 20여 명의 황제의 동상과 28개 직업군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여행 중에는 겉모습에 압도되어 건축의 세세한 모습까지 관찰하지는 못했다.
패키지여행에서는 가이드가 역사와 규모 등 볼거리를 중심으로 설명하고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우리는 사전 지식 없이 시청사를 방문했다. 자유여행동안 방문했던 대부분의 관광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보가 거의 없었다. 딸이 인터넷을 찾아서 이곳은 어떤 곳이다는 간단한 정보를 읊어주었지만 자세하게는 알지 못했기 때문에 무엇을 먼저 보아야 할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고 보았다. 그저 보이는 대로 보고 느끼는 대로 느끼는 여행이었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보는 관광에서 더 많이 보고 더 충분히 느끼게 되었다.
함부르크 시청사는 관광객은 청사의 현관에 해당하는 1층과 안뜰의 분수를 볼 수 있다.
시청 홀에는 역대 시장의 사진과 시청 안내도가 있으며 지하에 레스토랑과 공연장이 있으나 들어가지는 못했다. 홀은 사암 기둥과 대리석 계단이 있다. 홀이 마치 신전에 들어온 것 같아 엄숙해진다. 출입가능시간(오전 7시~오후 8시)이 정해져 있고, 하루 세 번(오전 11시 15분, 오후 1시 15분, 오후 3시 15분, 투어비 성인 4유로) 가이드가 동반한 내부투어도 가능하다고 한다.
안뜰의 분수는 그리스 신화 건강의 여신인 히기에이아(Hygieia)를 상징하는 청동 조각이 있다. 분수를 둘러싸고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나 뿔 달린 인물 조각상이 있다. 시청건물이 미음자로 빙둘러 병풍처럼 분수를 보호하고 있다. 분수가 건물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게 여겨지며 건강과 생명의 여신 형상 때문인지 분수가 생명의 근원처럼 보인다. 푸른색의 조각은 샘솟는 분수와도 잘 어울린다. 중세풍 분위기가 물씬 나는 곳이 시청사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궁전이라고 해도 믿어질 것 같다. 아니 궁궐이라고 부르면 더 어울릴 것 같다. 분수를 보고 좌측으로 나오면 출구 쪽에 사자상이 입구를 떡하니 지키고 있다. 제법 위엄 있다.
함부르크 시청사 내외부 모습
함부르크를 끼고도는 엘베강가에서 멋스러운 커피 한 잔의 여유
함부르크 시청사를 나오니 청사를 둘러싸고 강물이 흐르고 있다. 함부르크 중심지를 굽이굽이 에워쌌다.
시청사 근처에는 알스터(Alster) 호수가 있었는데 나중에 박물관 관람 중에 호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도심 한가운데에 강물이 흐르는 모습이 여느 도시와 다르게 여겨져 제법 낭만적이다.
함부르크는 거대 항구도시로 무역이 발달한 도시다. 독일의 최대항구도시이자 세계 항구도시이며 독일 제2의 도시다. 독일에서 1인당 주민소득 1위로 부유한 도시다. 함부르크에 흐르는 엘베강을 따라가면 북해(North Sea)에 이른다. 함부르크는 엘베강과 북해를 중심으로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다음날 항구투어에서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의 전체 모습을 보면서 도시의 거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시청사를 중심으로 강을 따라 걷다 보니 딸이 커피가 고프다고 한다. 햇살이 조금 따가우며 나른하게 느껴진다. 야외에 앉은 사람 중에는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아서 담배연기를 피해 자리를 잡았다. 독일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 여성들의 흡연인구도 상당히 많다. 베를린을 여행할 때 어린아이와 식사하는 가족 중에서 남편과 아내가 식사하는 중에 번갈아가며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금연교육이 우리나라처럼 이루어지지 않은가 보다.
야외 테이블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평소에 잘 마시지도 않는 커피가 진짜 커피가 맛있는 것인지 분위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카페라테가 부드럽고 고소했다. 서울에서는 왜 이런 맛이 안 나는지 모르겠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여행할 때 100년이 넘은 카페에서 마셨던 캐러멜마키아토도 맛있었는데 함부르크 카페라테도 맛있었다. 점원은 부지런히 손님 사이를 오갔고 위트와 미소가 가득했으며 친절했다. 햇살아래 엘베강을 끼고도는 함부르크에서 멋스러운 여유를 커피 한잔에 담는다.
엘베강가에서 멋스러운 커피 한 잔
함부르크 미술관 700여 년 유럽 회화 가득
카페인을 채운 후 정신을 일깨워서 함부르크 미술관으로 향했다. 시청사에서 함부르크 미술관((Hamburger Kunsthalle)으로 가는데 지하철을 타고 이동했다. 거리는 한정거장이었지만 전시 관람을 위해 체력을 남겨두기로 했다.
함부르크 미술관은 독일 최대 규모의 미술관 가운데 하나다. 1869년에 미술관 본관을 개관했고 1921년에는 쿠페살관(Kuppelsaal), 1997년에는 게겐바르트 갤러리 (Galerie der Gegenwart)를 개관했다. 3동의 미술관은 연결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미술관 지도를 보면서 3동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전시를 보며 이동하는 중에 3동이 꽤 크고 넓으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미술관에 대한 정보가 없이 방문한 우리 가족은 관람을 하면서 알아갔다. 시청사와 마찬가지로 우리 스스로 알아가며 찾아가며 보는 관람이었다.
함부르크 미술관은 중앙역과 시청사에서 가까웠고 알스터호수가 근처에 있었다. 미술관은 상설전시와 특별전시가 있었는데 우리는 지하철에서 내리니 특별전시장이 보여서 특별전시를 먼저 보게 되었다. 특별전시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간 것이 아니라 보이니까 먼저 입장하게 된 것이다.
특별전시관 쿠페살관에서는 티켓을 온라인으로 끊어야 했다. 딸이 한참 시간을 들여 결제를 마쳤다. 현장티켓팅은 왜 안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나중에 보니 상설전시장에 안내데스크가 있으며 현장티켓팅도 그곳에서 할 수 있다는 것을 특별전시가 다 끝나고 상설전시장으로 이동했을 때 알았다.
딸이 온라인 티켓팅을 하느라 애를 먹는 동안 독일어와 영어에 약한 엄마아빠는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30여분을 헤맨 끝에 티켓팅을 했다. 입장료는 성인 16유로 학생은 8유로였다. 독일에서는 미술관이나 박물관마다 학생 할인이 있었다. 예약할 때는 학생증을 제시해야 한다.
백팩과 크로스백은 전시실로 가지고 갈 수 없어서 보관함에 맡겼다. 독일 전시관에는 배낭이나 크로스백을 가지고 입장할 수 없다. 동전이 없다고 하니 기념주화를 직원이 빌려주었다. 관람이 끝나고 보관물품을 찾고 기념주화를 돌려주려고 하니 전시관 직원은 친절하게도 우리에게 기념주화를 선물했다. 독일전시관 보관함은 보통 1~2유로 하는데 가능하면 잔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전시실 보관함을 이용한 후에는 동전은 돌려받을 수 있으니 동전도 잘 챙겨가면 된다.
특별전시는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s, 1757~1827, 영국 시인이자 화가, 판화가)의 유니버숨(Universum, 유니버설)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림 감상을 하면서 조금씩 알아갔다. 포스터의 그림은 천지창조를 연상케 하며 신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손을 내미는 것 같은 모습이다. 블레이크는 신과의 대화와 혹은 종교적 비판, 사람들의 소망 열망을 그린 작가라 여겨졌다. 안내에 의하면 부패한 종교와 교회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한 작가였다고 한다. 색보다는 선을 강조해서 딱딱하고 곧은 선을 즐겨 그렸다고 한다.
블레이크 이외의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감상했다. 그림을 감상하는 법을 잘 모르지만 그냥 보이는 대로 느끼고 느끼는 대로 감상한다. 가끔은 작가는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무슨 생각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을까? 작가의 삶과 당시 작가의 상황은 어땠을까?라는 물음을 던져보기도 한다.
특별전시관에는 삼성관이 있어서 반가웠다. 함부르크에서는 1997년 하펜시티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도심재생사업에 삼성이 참여했다고 한다. 고 이건희 회장의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꿔라'어록이 영어로 쓰여있는데 반가웠다. 이외에 여러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특별전을 보고 나서 상시전시관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건너편 건물로 이동했다. 이동 중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한 남자가 “차이니즈?”한다. 딸이 그 말을 듣고 동양인 비하발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의미를 모르는 나는 별생각 없이 “코리언.”했다.
상시전시관에는 중세부터 현대까지 700여 년에 걸친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14세기 북독일 회화, 16~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이탈리아 회화, 19세기 프랑스와 독일 회화, 근현대 미술등 다양하다. 중세 신화적 소재, 근세 귀족풍 그림, 근대의 피카소, 르느와르, 마네, 모네 그림도 있다. 수백 명 화가의 작품이 있다.
우리 가족은 그림을 잘 모르고 별로 좋아하지 않은데 3시간이나 관람했다. 언제 이곳에 와 보겠나 하는 마음도 있었고 보다 보니 관람할 것도 많아서 관람시간이 꽤 길어졌다. 많은 작품과 다양한 화풍의 그림이 많아서 지루한 줄도 모르고 관람했다.
자유여행이니 우리 마음대로 시간을 늘리고 줄일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남편은 여행 와서 화장실을 못 갔는데 전시 중에 세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전날 먹은 유산균과 요거트 덕분이었다. 미술관에서 신호가 와서 다행이라며 안도하였다. 자유여행이라 부담 없었다며 서로를 보며 웃었다.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오니 많은 사람들이 전시관 입장하였고 바깥으로는 길게 줄을 섰다. 저녁 6시면 마감시간이 아닐까 여겨졌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보니 저녁 6시 이후에는 입장료가 무료라고 한다.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전시장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미술관 관람시간은 화요일~일요일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마감시간 확인 필요)였다. 우리나라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비하면 꽤 긴 시간 관람이 가능하다. 미술관에서의 저녁이 있는 삶이라니 좋은 것 같다. 무료 관람시간을 미리 알아봐서 방문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우리 여행객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쿠페살관 삼성 전시물
윌리엄 블레이크스 작품 설명 부스터
특별전시관 작품들
함부르크 상설전시관
모네와 르느와르 작품
함부르크 외곽 시골 전원주택 숙소, 장보기, 슈니첼 먹기 등느리게 즐기기
함부르크 투어를 하고 보니 딸이 동선을 잘 짰다는 것이 느껴졌다. 함부르크 중앙역을 출발해서 햄버거를 먹고 시청사를 보고 미술관을 관람하고 다시 중앙역으로 돌아왔다. 아침 일찍 프랑크푸르트를 출발하여 미술관까지 걸어서 다닌 시간이 꽤 많아서인지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나니 꽤 피곤했다. 미술관을 나온 시간은 6시가 넘었다.
함부르크 중앙역 짐 보관함에서 캐리어를 찾아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갈아탔다. 전날 보지 못했던 지하철 티켓머신도 확인했다. 버스를 타고 30여분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함부르크에서 묵을 숙소는 시외곽에 있었다. 딸은 불편하면 택시를 타자고 했으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자유여행의 묘미를 맘껏 누려보고 싶은 엄마아빠는 버스를 타자고 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작은 시골마을에 온 것 같았다. 2차선 도로가에는 울창한 가로수가 서있고, 5층 남짓 층 낮은 연립주택들이 작은 단지를 이루고 있었다. 그 사이를 지나가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상수리 열매가 우리나라 것보다는 약간 큰 것들이 떨어져 있고 수국도 피어 있었다. 작은 민들레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함부르크 시내 화단에서 보았던 분홍과 하얀 바늘꽃도 생각나면서 친숙하게 여겨졌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곳에 자리한 숙소는 마음에 들었다. 플라타너스가 많고 나무와 정원이 잘 가꾸어진 거리와 집들이 많아서 아침저녁으로 새소리를 듣는 상쾌함이 있었다. 숙소 실내도 예쁘고 주변 환경도 깨끗하고 조용한 시골마을이었다. 독일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잠깐이라도 살아본느낌이었다. 아쉬움은 숙소가 3층이고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방이 두 개였는데 하나는 지붕이 사선으로 침대 위로 내려와 누웠을 때 다락방 같은 느낌이었으며 약간 압박감이 느껴져 남편과 자리를 바꿔서 누우니 괜찮았다.
짐을 내려놓고 10여분 걸어서 마트 알디(ALDI)로 가서 장을 봤다. 독일에서 유명한 마트 중에 하나다. 빵, 물, 과일, 요거트, 음료 등을 샀다. 마트에서 장을 볼 때는 다음날 일정을 감안하고 저녁거리나 아침거리를 준비했다. 특히 물은 음식점에서는 비싸기 때문에 마트에서 구입하는 것이 좋다. 바게트 빵을 자르는 기계도 신기했다. 물을 먹고 남은 빈병은 반환기에 넣고 1유로를 환전받았다. '요거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으니 딸이 '엄마도 할래?' 한다. 우리나라는 주민센터에서 빈 물병을 수거하고 휴대폰에 포인트로 적립하는 모습을 보았으나 직접 해보지는 않았다. 독일에서는 모든 마트에 빈병과 물병 반환기가 있다. 한 병에 0.25유로로 포인트를 받아서 사용하거나 현금으로 바로 돌려주니 좋다. 우리나라도 이런 제도를 도입하면 좋겠다.
저녁은 딸이 미리 예약해 둔 식당에서 슈니첼을 먹기로 했다. 마트와 식당을 오가는 길은 인적이 드물어서 시골길을 산책하는 기분이었다. 식당가는 길은 마트 가는 길과 달랐는데 해외 영화에서 많이 보던 풍경이었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긴 가로수가 나란히 서있고 길게 늘어선 주택들이 있으며 주인공들이 거리를 오가며 서로의 집 앞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잠시 외국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또다시 했다.
슈니첼(Schnitzel)은 고기망치로 얇게 두드려 편 고기를 말하는데 송아지고기, 양고기, 닭고기, 쇠고기, 돼지고기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 우리나라 돈가스와 비슷한데 튀김옷을 입히기도 하고 입히지 않기도 한다. 맛은 우리나라 돈가스가 더 맛있다.
저녁에 먹은 슈니첼은 튀김옷을 입히지 않았는데 돼지고기를 지진듯한 느낌이었다. 원래 생각했던 돈가스 느낌의 슈니첼이 아니어서 아쉬웠다. 나중에 베를린에서는 튀김옷을 입힌 슈니첼을 먹었는데 맛있었다. 식당에서는 슈니첼과 샐러드, 감자튀김도 양이 많았고 풍성하게 식탁을 차려줬다. 샐러드를 따로 시키려고 했더니 샐러드와 감자튀김이 함께 나온다며 점원이 알려줬다.
딸은 점원이 하는 독일어를 알아들었다. 독일어를 배운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딸이 신통하기도 했다. "그러게. 독일어수업이 도움이 된 것 같아. 알아듣는 것도 있고 못 알아들어서 눈치로 알아채기도 해."라고 말한다. 딸이 없었더라면 우리 부부의 독일 자유여행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새삼 다시 여행에서 언어는 중요하다고 여긴다. "자유여행을 하려면 언어가 필수야."
시골이라서 식당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직원은 상냥하고 친절했다. 그러나 슈니첼은 입맛에 맞지 않았고, 게다가 점심에 먹은 햄버거와 커피가 꺼지지 않아서 많이 먹지 못했다. 가족들 모두 조금밖에 먹지 못했다. 맥주는 시원하고 맛있었다. "맥주는 역시 독일 맥주가 맛있다."를 연발했다.
독일 식당에서는 우리나라처럼 '여기요', '이모'라고 직원을 부르지 않는다. 직원을 부르는 벨도 없었고 키오스크도 없었다. 직원에게 주문할 때는 직원이 먼저 알아서 오거나 손님이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직원을 계속 쳐다보고 있다가 눈이 마주칠 때 주문할 수 있다. 언제 눈이 마주쳐서 우리에게 직원이 올지를 살피며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결제할 때도 마찬가지다. 벨이나 키오스크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것도 없어서 조금 불편하기는 했다. 왜 기계를 도입하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생각해 보건대 손님보다는 직원을 더 생각해서 그런 건지 독일 문화려니 했다. 성질 급하거나 시간이 없는 사람은 식당에 가면 안 된다. 빨리 나오는 패스트푸드점으로 가야 한다.
저녁 9시가 넘어서 어스름해지기 시작했다. 9시 반 음식점을 나섰을 때는 날이 어두워졌다. 플라타너스가 우거진 가로수길 사이로 주택들이 늘어서 있으며 2차선 도로가 주택 앞에는 주차된 차들이 많았다. 오가는 사람은 없었으며 도로에 차도 없는 한가롭고 어두운 거리였다. 주광색 가로등은 거리를 밝게 밝혀주지 못했고 몇몇 작은 앞마당이 있는 집에서 흘러나온 불빛이 우리가 걷는 거리를 비춰줬다. 우리는 유럽에서 많이 사용하는 주광색 불빛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광색 불빛은 너무 어두운 것 같다."며, "밝은 백색 형광등을 주로 사용하는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주광색이 침침하고 어둡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서양사람들이 주광색을 많이 쓰는 이유는 홍채가 불빛에 약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일리가 있어 보인다.
낮게 내려앉은 어둠과 짙게 우거진 가로수, 화려하지 않은 주택의 주광색 불빛 덕에 걸어가는 거리가 은은했다. 어두워진 독일 시골 밤길을 걷는 맛은 조금은 긴장되었지만 딸과 남편이 있으니 조금은 느리고 여유롭게 걸으며 잔잔한 시골 길을 즐길 수 있었다.
지하철 티켓 자판기와 빈병 반환기
함부르크 시외에 있는 전원 숙소
숙소에서 바라본 마을 모습
바게트빵 자르는 기계
숙소 근처 거리
슈니첼 식당 내부와 차림표, 어스름 해질무렵
슈니첼
독일 여행을 시작하고 하루 만에 자유여행의 깊은 매력에 빠졌다.
기차표가 없어서 시골역에서 내리고, 기차표를 온라인으로 끊느라 애를 먹고, 게이트가 없는 지하철을 타고, 태그가 없는 버스를 갈아탔다. 온라인 티켓팅을 하느라 진땀 흘리고, 야외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고, 독일 시골 주택을 체험하고, 마트에서 빈병을 반환하고, 물품을 구입하고, 독일 맥주와 슈니첼을 맛보고, 독일 시골 밤거리를 걸어보고...
독일 여행에 대한 기대가 없었는데 느리게 걷고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지니 좋았다. 우리 식대로 보고 감상하는 여행 인지라 작고 사소한 느낌도 깊이가 있었다. 뭔가 잘 안되어 마음 졸이는 순간에도 여행의 묘미로 여겨졌다. 커피 한잔에도 감동하고 작은 미소에도 기쁘고 설레었다. 약간 더운듯한 햇살에도 청량감을 느끼고, 그늘에 서면 시원한 바람도 여유를 선사했으며, 도도히 흐르는 강물은 깊은 감성이 우러나게 했다. 다름과 낯섦이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즐겁고 신선하며 멋스러움을 갖게 했다.